그날 병호의 근무는 열두시부터였다. 그야말로 한밤중 근무라 병호는 부사수인 정 일병과 함께 초소까지 가는 동안 내내 투덜거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초소가 상당히 높고 외진 곳에 있는지라 장교들도 올라오기가 귀찮은지 순찰이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병호는 초소의 전임근무자들이 돌아가자마자 총을 벽에 기대어 세워 두고 방탄모를 벗었다.
“아 씨. 졸려 죽겠는데 좀 쉬자. 누구 오나 잘 봐.”
“예 알겠습니다.”
정 일병의 대답을 들으며 병호는 초소 바닥 구석진 곳에 퍼질러 앉았다. 상병이 꺾인 이후로 주변 동태를 감시해 가면서도 꾸벅꾸벅 졸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힌 병호였다. 그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병호의 눈이 떠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며 재빨리 총과 방탄모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주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래쪽을 슬쩍 살펴보았지만 순찰로를 따라 누군가가 올라오는 기미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젠장. 뭐냐?”
병호는 짜증을 내며 정 일병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초소 안에 혼자뿐이라는 걸.
병호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야, 어디 간 거야?’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 일병의 탈영이었다. 사수가 자고 있는 사이에 부사수가 완전무장한 채로 탈영해 총기난사 사건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대대 정신교육 시간이었던가, 그때는 귓등으로 흘려듣던 이야기가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졸던 사수가 어떻게 되었다더라? 군 교도소에 처박혔다던가?’
밤공기가 시원한데도 불구하고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뜬금없이 담배가 엄청나게 당겼다. 병호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정 일병의 이름을 불렀다.
“야, 정명훈이!”
처음에는 낮게, 그리고 조금 더 크게 연달아 세 번이나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방은 여전히 고요했다. 병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팔 진짜 탈영한 건 아니겠지. 탈영이면 난 어쩌라고!’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지. 무슨 뜬금없는 탈영이냐. 그냥 일 보러 간 거일 수도 있잖아.’
병호는 초소 창밖으로 몸을 쭉 내밀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적막했다. 흔한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구름이라도 꼈는지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아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누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멀리 부대 쪽의 불빛과, 초소로 오는 길에 간간이 달린 전등만이 간신히 보이는 정도였다. 병호는 잠시 망설이다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철모를 다시 쓰고 양손으로 총을 쥔 후 천천히 초소 옆을 돌아 나왔다. 초소 뒤쪽에는 가파른 경사가 십여 미터쯤 이어지고 그 아래에는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데, 근무 중에 볼일이 급할 때면 종종 내려가는 곳이었다. 정 일병이 볼일을 보러 갔다면 분명 그곳일 것이다.
‘제발 있어라. 제발......’
병호는 속으로 기도하듯 중얼거리며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려갔다. 흙이 푸슬푸슬하니 메말라 있어서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쭉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조심스럽게 끝까지 내려가자 어렴풋하게나마 나무들이 보였다. 그리고 나무들 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 같아서 반가움에 눈물마저 왈칵 날 정도였다. 병호는 고함을 쳤다.
“야 정명훈! 뭐하는 거냐!”
그림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머뭇머뭇 이쪽을 돌아보는 듯했다. 병호는 성큼성큼 몇 걸음 걸어가 얼굴을 확인했다. 생각대로 정 일병이었다. 근무 설 때의 모습 그대로였고 총은 오른쪽 어깨에 매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이상했다. 놀란 듯, 혹은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밀려오는 안도감과, 뒤이어 따라온 짜증에 울컥한 병호에게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야 이 새끼야! 너 보초서다 말고 왜 여기 와서 처박혀 있는 거야?”
냅다 욕부터 퍼부었지만 정 일병은 멍하니 병호만 쳐다보고 있었다. 병호도 뭔가 이상했는지 삿대질을 멈추고 물었다.
“야, 야 인마. 너 왜 그래?”
“박 상병님 왜 거기 계십니까?”
“뭔 소리야?”
“저보다 먼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뒤에서......”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 없어져서 한참 찾았잖아!”
“아니 그게 말입니다. 분명 박 상병님께서 먼저 내려가시고 저는 따라 내려왔는데 안 계셔서 이상하다 하던 차에......”
“그러니까 누가 내려왔다는 거야! 난 계속 위에 있었잖아!”
열이 오른 병호가 고함을 꽥 지르자, 정 일병의 얼굴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허옇게 질려갔다. 정 일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아까 박 상병님께서 밑에 같이 오줌 누러 가자고 하셔서 제가 둘 다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까 혼자 다녀오시라고 했는데, 그래도 계속 같이 가자고 하셔서 박 상병님께서 앞에 내려가시고 제가 따라서 내려왔는데, 내려왔더니 박 상병님이 그 사이에 사라지셔서 어떻게 된 건가 찾던 차에 뒤에서 또 내려오셔서......”
“무, 무슨 헛소리야!”
소리치면서도 병호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은 분명 위쪽 초소에서 졸고 있었는데 정 일병은 대체 누구와 이야기하고 누구와 같이 여기까지 내려왔단 말인가? 또 먼저 내려왔다는 그 사람은 이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여름인데도 갑자기 주변 공기가 차갑게 느껴져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일단 올라가서 이야기하자. 네 말마따나 초소를 비워놓으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병호는 한시바삐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가 앞장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자 정 일병도 급히 뒤를 따라왔다. 병호는 올라가면서도 틈틈이 뒤를 돌아봐 정 일병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했다.
‘저 새끼가 귀신에라도 홀렸나?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나마 무슨 큰일이 생기지는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병호는 허겁지겁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뒤따라온 정 일병과 함께 초소로 들어갔다. 아까부터 담배가 피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야, 다시 이야기 좀 해 봐. 누가 너랑 같이 나갔다고?”
병호가 노려보자 정 일병이 찔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박 상병님과 같이 나갔지 말입니다.”
“하지만 난 여기서 졸고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벌떡 일어나서 갑자기 같이 가자고 했단 말이야?”
정 일병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까 박 상병님이 아닌 것 같기도......”
“응? 왜 또 말이 바뀌냐?”
“그러니까 제가 밖을 보고 있는데 박 상병님이 뒤에서 같이 소변보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시고는 바로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보니 박 상병님이 나가시는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를 비우면 안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박 상병님께서 짜증을 내며 빨리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목소리가 지금 생각해 보니 박 상병님하고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달랐다고?”
정 일병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밖에 나갔더니 박 상병님께서......”
“나 아니라니까!”
“아, 예. 그, 박 상병님처럼 보이는 사람이 이미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급하게 뒤따라 내려갔는데, 분명 몇 미터 앞에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어디 가셨나 하고 찾던 차에 박 상병님께서 뒤에서 오셨지 말입니다.”
“뭐야, 그럼 그 사람 얼굴은 못 본 거냐?”
“......예. 뒷모습만 봤습니다. 목소리하고......”
뭐야 이거. 병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그 남자가 자기가 아니란 점만은 확실했다. 설령 자신에게 몽유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 일병보다 먼저 나갔다면 초소 안에서 눈을 떴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면 그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귀신, 이라는 낱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병호는 억지로 그 말을 집어삼켰다. 대신 병호는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말을 꺼냈다.
“야, 혹시 누가 순찰 나왔던 거 아냐? 네가 못 보던 사이에 와서 놀래킨 거 아니냐고.”
정 일병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초조해진 병호는 다시 상대를 채근했다.
“응? 오늘 당직사령이 우리 중대장이던데 혹시 그 아저씨 왔다 간 거 아니었어?”
그러나 정 일병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같이 가자.”
평소와는 달리 낮고 쉬어터진 목소리였다. 정 일병이 고개를 들자 병호는 흠칫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섬뜩하게도 정 일병의 눈은 하얗게 뒤집혀져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설프게 다물린 입가에서는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입이 다시 벌어지더니, 아까보다 훨씬 더 쉬어터진 목소리가 목을 쥐어짜내듯 흘러나왔다.
“같이 가자!”
정 일병이 어색하게 팔을 내밀더니 한 걸음 내딛었다. 병호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이 초소 벽에 부딪히면서 숨이 턱 막혔다. 그때껏 손에 쥐고 있었던 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같이 가!”
정 일병은 절규하듯 자신의 것의 아닌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더니 뜻밖에도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끌어내려 양손으로 쥐었다. 총구의 방향은, 자신의 머리였다. 정 일병의 입가가 마치 웃는 것처럼 살짝 올라갔다.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덜덜 떨고 있던 병호의 눈에도 그 웃음이 분명히 보였다. 미소와 함께 정 일병은 입 속에 총구를 쑤셔 넣더니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정 일병의 머리가 뒤로 홱 젖혀졌다. 놀란 병호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물론 탄창의 첫 탄알은 공포탄이다. 입속을 엉망진창으로 다쳤겠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야, 정명훈. 너 장난치는 거지?”
병호는 장난처럼 웃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억지로 끌어올린 입술 양끝이 덜덜 떨렸다. 웃음소리를 내려 했지만 나오는 건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뿐이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쏘지 마, 쏘지 마!’
뒤로 젖혀졌던 정 일병의 머리가 천천히 원위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병호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총구를 다시 입에 문 정 일병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크게 함박웃음 짓는 모습을.
그는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쾅!
아까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좁은 초소 안을 뒤흔들었다. 정 일병의 뒤통수 쪽으로 피가 분출하듯 뿜어져 나오더니 사방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곧 정 일병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손에서 총이 떨어지더니, 몸이 앞으로 쿵 쓰러졌다. 병호의 눈앞에 쓰러진 정 일병의 머리가 보였다. 뒤통수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빨건 피와 허연 뇌수가 검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뒤섞여 있었다.
“히, 히엑......!”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병호는 그대로 졸도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