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렇게 제가 여기에서 9년 전부터 시달리고 있는 후회와 공포의 기억을 써보겠습니다.
실제로 뭔가에 홀린 건 아니지만, 이렇게 글이나마 써두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 같아서..
9년 전의 체험, 제가 보험 회사에 입사한 지 3년 차가 되던 해의 일입니다.
저는 계장이었고, 4명의 부하가 있는데 그 중 3명(I군 T군 Y씨)이랑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이 이야기와 관계없어서 생략하겠습니다.
그날도 우리는 4명이서 단골 술집에서 먹은 뒤 각자 계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I군이 사과 한 개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 보기에 너덜너덜한 나무 상자를 꺼내 보였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장치가 있는 상자였는데 예전에 유행했던 루빅 큐브 같은 상자였습니다.
그의 아버지에게 받은 것인데 옛날 물건 같았습니다. 듣기로는 전쟁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안 열어 보셨고, 어차피 종전 후에 불탄 자리에서 주운 거라서 저에게 물려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자를 2대에 거쳐서 아직도 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상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영문을 모를 오한을 느꼈습니다.
제가 영감이 있는 편인지, 때때로 상반신과 하반신의 균형이 안 잡힌 사람이나
다리가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을 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저와 T군과 Y씨가 돌아가며 그 나무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지만 열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상자를 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가게를 나와서 택시를 잡기까지 5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어서 아무래도 무리였습니다.
그 날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I군이 상자를 들고 Y씨와 T군을 점심시간에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그 순간, 사이가 나빠질 걸 각오하고 그들에게 충고했습니다.
[그 상자는 열지 않는 편이 좋아.]
I군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저희 형도 그런 말을 했는데요..]라고 말하면서
득의양양하게 [조만간 열어 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일이 끝난 뒤 4명이서 회사 근처 공원에서 Y씨의
모친이 싸준 간식과 된장국을 먹으며 벚꽃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T군이 [이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라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서
유난히 굵기가 굵은 벚꽃 나무를 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은 잘 나왔습니다만, 뭔가 이상했습니다.
밤이니까 불필요한 빛이 섞일 일도 없고, 탁 트인 장소라서 플래시가 반사되어
변색될 걱정도 없었는데 이상한 빨간빛이 사진에 전체적으로 찍혀 있었습니다.
T군은 [이럴 수도 있죠!]라며 한번 더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또 똑같은 사진이 찍혔습니다.
T군은 [넓은 범위에서 찍으니까 쓸데없는 것이 찍히나 봐요. 필름은 많으니까 한 명씩 찍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선 저, Y씨, I군, T군의 차례로 찍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먼저 찍었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다음으로 Y씨, 마찬가지. 문제는 그다음인 I군입니다.
맨 처음 찍은 사진보다 붉은빛이 더 강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I군의 주위에 붉은빛과 노란색에 가까운 얇은 비닐 같은 것이 찍혔습니다.
기분 나빴지만, I군은 다시 한 번 찍도록 T군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찍힌 사진을 보고 T군은 [뭐야, 이상하다!]라고 말하며
우리 쪽으로 달려와서 그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에 찍힌 건 꽤 기분 나쁜 것이었습니다.
I군의 손과 얼굴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무수히 많은 노란 손이 I군의 몸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I군의 몸을 감싸고 있는 노란 손이 얽힌 부분에는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I군은 이것을 보여주며 한가지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오늘 점심 간 후에 인쇄 실에서 복사하다가 잠깐 나무 상자를 만졌는데 어쩌다 보니 상자를 열었어요.
상자 안에서 너덜너덜한 봉투가 나왔는데 거기에 "천황폐하를 위해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하자!"라고 적혀 있었어요.
봉투를 열어 보니, 많은 양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나와서 소각로에 버렸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절에 가져갔고,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공양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절의 주지승이 한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당신들이 한 일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당신들이 가지고 온 그 사진을 공양하더라도
영혼의 노여움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혹시 그 나무 상자를 가지고 공양한다면
상자 안의 영혼들의 노여움이 가라앉을 지도... 그러니 꼭 갖고 오세요.]
I군은 알겠다며 상자를 찾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살아있는 I군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줄이야..
다음 날 아침, I군이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몸이 반으로 절단되었고 하반신은 불타는 차의 타이어에
휘말린 채로 함께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상반신은 사고지점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즉사했습니다.
그날 저와 T군과 Y씨는 그의 어머니에게 나무 상자를 양도받았고 그것을 절의 주지승에게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절의 주지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상자는 원한 그 자체입니다. 이제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됐습니다.
이 영혼들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힘듭니다. 공양해 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I군이 그런 일이 있은 지 겨우 한나절 만에 그렇게 된 것을 보고,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양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우리가 상자의 공포를 잊어갈 무렵, Y씨가 화재로 죽었습니다.
발화의 원인은 난로의 불완전연소였답니다.
(불완전연소: 산소의 공급이 불충분하고 불완전한 연소가 이루어지며, 배기가스 중에 가연물이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저와 T군은 다른 회사로 전근 가길 희망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땅을 벗어나면 영혼들도 우리를 쫓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저나 T군 중에서 어느 한쪽이 홀려있을 가능성도 있어서 서로 다른 곳으로 전근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9년이 지났습니다. 악몽 같은 9년이었습니다.
T군은 전근 후, 2년 만에 결혼.
그 후,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나 보름 만에 폐렴으로 죽었고
두 번째 아이도 유산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유산으로 T의 아내도 뇌에 종양이 생겼고 마침내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점차 쇠약해져서 마지막에는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결혼 6년 차가 되던 가을에 죽었다고 합니다.
T군도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겠지요. 결국, 이듬해 봄에 회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현재에 이릅니다.
요즘 들어 꿈에서 먼저 간 3명이 자주 나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앓고 있는 심장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저를 제외한 3명이 이미 죽은 것이.. 아, 저도 이제 얼마 못 살지도 모르겠네요.
이 길고 읽기 어려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은
저에게 씌인 영혼을 달래주도록 손을 모으고 간단하게 독경 부탁합니다.
[南無妙法蓮華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