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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새벽녘 밤을 밝히는 시 - 서른 네 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690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7
조회수 : 114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9/28 11:18:47
출처 : http://blog.naver.com/angel0698/220122691817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KIXRc



1.gif

문정희, 비망록




남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2.gif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 피워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때는

가만히

네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3.gif

백은하, 풀밭




몸이 힘든 건 참아도

마음이 힘든 건 참지 말라 하더라

 

머리로 참아야 하는 건 견뎌도

가슴에서 우는 건 누르지 말라 하더라

 

착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때로 독이라고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독이 된다 하더라

 

오히려 정직한 편이 당장은 힘들어도

서로에게 유익이라 하더라

 

가슴에 깊은 호수가 생기기 전에

끝도 볼 수 없는 우물이 생기기 전에

마음에 비가 오거든 그대로

감추지 말고 투닥투닥, 첨벙첨벙,

시끄럽도록 내버려두고

희로애락 비켜가려 하지 말고

제발 웃는 척 좀 그만 해라, 하더라

 

너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니

화내는 것도 우는 것도 짜증내는 것도 아름다우니

제발 착한 척 좀 그만 해라, 하더라







4.gif

유희경, 꿈속에서


잠든 것들이 거리로 나갔다

긴 소매들은 소매를 접었다

 

입김이 남아 있는 창문

불이 꺼지지 않는 들판

날아오르는 바람과

걸어 다니는 발자국들

 

가슴만 한 신음을 낳고

누군가 밤새 울었다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안겨 있는 나를 보았다

하얗게 빛이 났다

나머지는 어두웠으므로

 

비명 같은 내가

빈 종이 되었다







5.gif

김이강, 서울, 또는 잠시




채식주의자처럼

맨발일 때가 좋지

 

광화문에서 내렸고

서대문까지 걸었다

이렇게 문을 사이로 걸어도

성의 윤곽은 알 수 없는 일

한 언어를 터득하기 위해

사람들이 살다가 죽을까

 

당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목구멍에 침묵을 걸었는데

그런 건 위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나는

상한 맛이 나는 영화였다

 

인사동을 돌아서 천변으로 걸었다

오래전엔 여기 어디쯤에서

술에 취한 김수영이 밤거리를 건넜을까

조금 더 걸어가면

이상이 차렸다던 이상한 다방이 있을 것이다

 

극장에서부터 우연히 앞서 걷던 여학생 둘이서 열띤 토론을 한다

이 영화는 던져놓은 미끼를 회수하지 않았어. 정말이라니까.

급하게 판을 접었지, . 급하게 접었다니까. 제작비가 부족했을까.

그게 스타일일 거야. , 그런가. 그렇다니까. 신경증일 수도 있어. 일종의,

, 그런가.

 

안녕, 아가씨들

당신들의 치아 사이로 바람이 조율되고 있구나

 

퇴근 행렬이 길어진다

남산으로 가서 돈가스를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친구의 집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멸종해버릴 것이다

 

내 신발이 엄청나게 자라고 있다

돈가스를 먹지 못했다

자전거도 없는데 내 친구의 집은 너무 멀기 때문에

 

걸었던 길들을 접어서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걸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일

당신의 윤곽이란 이런 것일까

 

신발이 필요해

당신에겐 정말로 신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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