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코스모스
머리칼
분홍 스웨터
그리고 거기 목놓아 서 있던 미소
잔물결처럼
기울어지는 저녁 군산 길
생각하면 몸이 아파온다
노을은 왜 붉었을까
왜 마음은 흔들렸을까
울음 울 듯 웃으며
사랑했던
너도 그날은 아팠었는지
하재연, 밤의 케이블카
열일곱 살의 재채기 이후,
나는 만화 속의 내래이션이 되었다
대사들이 마블링처럼 떠다니는
이 세계에서 어디를 펼쳐도
우리는 모두 사라진 무늬들
왼눈과 오른눈을 깜박이면서
아름답게 보는 법을 나는 배웠다
맨발이 까맣게 되도록 춤을 추다
잠에서 깨면,
여기는 만질 수 없는 풍경
휘발된 햇빛을 들이마시면
나는 평면적을 잘 자라난다
이상한 정거장들의 표지판을
채 읽지 못하고
돌아왔다
강항, 다리
다리는
만리를 간단다
만리를 가도록 시키는 것은
마음이란다
정숙자, 짝사랑
능금 같은 달이 뜰 때에
출렁출렁 타고 오는
그리움
사랑이 절망으로
절망이 운명으로 부딪히는
가슴
빨갛게 익으며 마르는 사랑
또옥 따내지 못하는
슬픔
김남조, 평행선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까 두려워 하고
멀어지면 멀어질까 두려워 하고
나는 그를 부르며
그는 나를 부르며
스스로 부르며 가야만 합니까
나는 아직 하나가 되어 본 적 없지만
둘이 되어 본 적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