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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奇談 - 두번째 기이한 이야기 (3)
게시물ID : panic_61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곰
추천 : 16
조회수 : 139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12/11 11:38:18
  “총소리가 났으니 부대에 비상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초소로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발견한 거지요. 저는 기절해 있었고, 정 일병은 아시다시피...... 죽었습니다.”

  병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여기저기서 조사를 받았는데 제가 졸았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했습니다. 그냥 경계를 서던 중에 갑자기 정 일병이 나가기에 뒤를 따라갔다고만 말했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지요. 하지만 당연하다고나 할까......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더군요.”
 
  병호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을 끝내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해원은 굳은 얼굴로 박 상병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다시 무어라고 웅얼거렸다. 병호는 점차 당혹스러워하면서 나와 해원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고개만 가로저었다.
 
  잠시 후 해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병호도 따라하듯 거의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해원은 무슨 의미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다가 말했다.
 
  “병호 씨, 뭔가 가지고 계시죠? 종교적인 물건이나 아니면 부적 같은 것 말입니다.”
 
  “네? 그런 거 없는데요.”
 
  병호는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해원은 그저 덤덤하게 말했다.
 
  “아니요.. 가지고 계신 게 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불교 쪽인 것 같은데요.”
 
  “에? 아니 저는 절에도 안 다니는데..... 아!” 
 
  당황해하며 고개만 갸웃거리던 병호가 갑자기 탄성을 내뱉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황급히 안을 뒤졌다. 손가락 끝에 잡혀 딸려나온 것은 붉고 푸른 색색가지 실 몇 가닥이었다.
 
  “이거 제가 군대 가기 전에 할머니께서 절에서 받아오셨다고 하더라고요. 부처님 모실 때 몸에 두른 줄이라고 하던데요.”
 
  해원은 실을 잠시 살펴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께서 받아오셨다고요? 그럼 병호 씨는 할머니께 효도하셔야겠네요.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병호 씨가 그 사람처럼 되지 않고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순전히 할머니 덕분입니다.”
 
  “할머니 덕분이요? 이게 무슨 효과라도 있는 건가요?”
 
  “네. 있습니다. 그거 앞으로 절대 몸에서 떼어놓고 다니지 마세요. 목숨이 달린 일이니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해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누차 강조하자 병호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해원은 얼굴을 슬쩍 누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요. 어려운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곤란하지만 나중에 상세하게 다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네요.”
 
  예전에는 오히려 말없이 조용조용한 편이었는데, 몇 년 사이에 성격이 바뀌기라도 했는지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볼만했다. 병호는 멍하니 해원의 말을 듣다, 해원이 일어나자 엉겁결에 따라 일어나며 해원에게 엉거주춤 인사를 했다. 그런 그에게 작별을 고하며 우리는 피엑스를 나섰다.
 
 
 
 
  “야, 뭔가 알겠어? 아무래도 정 일병이라는 애가 귀신에 씐 것 같지? 그렇지?”
 
  호들갑을 떠는 나를 보며 해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신나는 일이 생긴 것처럼 그러고 있냐. 사람이 죽은 일인데.”
 
  “어, 그야 뭐... 그렇긴 하지만.”
 
  나는 머쓱해져서 뒷덜미만 벅벅 긁었다. 그런 나를 보고 해원은 피식 웃더니 다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네 말이 맞긴 해. 빙의된 게 분명해. 그것도 사람을 죽게 하다니, 지독한 녀석이네.”
 
   해원과 단둘이 이야기할 때면 으레 오곤 하는 창고 옆이었다. 나는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해원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다 심각하게 말했다.
 
  “원순아. 너 혹시 그 일이 벌어진 초소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냐?”
 
  “아니, 전혀. 기껏해야 짬타이거나 가끔 나온다고 하던걸.”
 
  “그럼 요 근래에 정 일병 말고 다른 사람이 사망한 일은 없었냐?”
 
  “전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가 모를 리 없지.”
 
  내 대답에 해원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럼 확실히 이상한 일이야. 정 일병에게 빙의한 영은 십중팔구 지독한 원한이 있는 원한령(怨恨靈)일 거다. 멀쩡한 사람을 꾀어내서 자살하게 만들 정도면 절대 어설픈 부유령(浮游靈) 따위가 아냐. 그리고 하필 초소에서 그런 일을 당했고 동일한 장소에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지박령(地搏靈)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데 그런 영이 죽치고 있는 곳에서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돼. 아마도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무슨 일이라고?”
 
  내가 되뇌자 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기가 있었을 거야.”
 
  그러더니 해원은 아까처럼 다시 혼자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병호 앞에서야 모든 걸 다 아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해원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쭈뼛이 서서 애먼 담배나 태우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해원이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고는 내게 말했다.

   “야, 같이 가자.”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해원이었다. 나는 황급히 담배를 비벼 끄고 녀석을 따라갔다.
 
  “야, 어디 가는 건데?”
 
  “행보관에게.”
 
  “응? 행보관은 왜? 그보다 나는 싫은데......”
 
  “네가 같이 가야 해. 옆에서 좀 거들어 줘.”
 
 
 
 
  그래서 뜻하지 않게 행보관과 면담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평소라면 내무실에 앉아 여자 아이돌의 춤을 보고 있을 귀중한 휴식 시간에. 행보관은 사시사철 항상 유지하고 있는 약간 찌푸린 표정으로 나와 해원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갑자기 뭔 일이야? 주원순이 너 사고 쳤냐? 신병 때린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졸지에 억울한 누명을 쓸 뻔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온 나는 연신 눈을 굴려 해원의 얼굴만 보았다. 하지만 해원은 가만히 행보관만 보고 있었다. 보릿자루를 꿔다 놓은 것만 같은 해원의 반응에 행보관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져 갔다.
 
  “나 쳐다보려고 왔냐? 왔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앙?”
 
  행보관의 말투에 짜증이 만연했다. 그 때 해원이 간신히 입을 열더니 느닷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행보관님. 아버님이 입원하셔서 근심이 많으시겠습니다.”
 
  “어? 야, 뭐라고?”
 
  행보관 얼굴의 짜증이 순식간에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해원이 말을 이었다.
 
  “장에 탈이 나신 것 같은데 큰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다음 주에는 퇴원하시겠고 곧 쾌차하실 겁니다.” 
 
  “야,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부대 와서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놀란 기색이 역력한 행보관이 다그치듯 해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해원이 내게 슬쩍 눈짓했다. 거들어 달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어, 행보관님. 사실 해원이가, 아니 그러니까 이해원 이병이 말입니다.”
 
  행보관의 시선이 슝 하고 날아와 내게 꽂혔다. 나는 재빨리 입술을 핥고 말을 이었다.
 
  “그 신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귀신을 봅니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행보관과 마주 앉은 해원은 무려 행보관이 직접 타다 준 커피를 홀짝이면서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냈다. 이번에 액땜 한번 했으니 아버님은 당분간 별 일 없으실 거다, 지금 타시는 차가 기운이 괜찮은 것 같으니 오래 타시라, 새 집을 산다고 하시는데 그곳은 터가 좋지 않으니 그만두는 게 좋다, 내후년이 되기 전에 운수가 트여서 좋은 일이 있으실 것 같다 등등. 나는 옆에 앉아서 때때로 맞장구를 치며 추임새를 넣었지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십 분쯤 지나자 대체 누가 행보관이고 누가 병사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고, 해원이 여러 가지를 기가 막히게 맞추자 행보관은 아예 해원에게 아양이라도 떨 기세였다. 그 때였다. 해원이 말을 꺼낸 것은.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어? 그래 뭔데?”
 
  해원은 행보관에게 살짝 상체를 기울였다.
 
  “최근에 초소에서 사고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붕붕 떠 있던 행보관의 얼굴에 삽시간에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비록 옆 중대 일이었지만, 그 사건 때문에 사단 감찰반에다 국방부 조사단까지 내려와 대대 전체를 온통 헤집고 갔으니 그도 그럴 만했다. 다행히 폭력이나 내부 부조리가 아닌 단순 자살로 결정난 모양이지만, 워낙 일이 커진 대다 언론까지 휩쓸고 지나간 바람에 대대장이 별 달기는 글러버렸다며 병장들이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터였다. 그러니만큼 행보관은 사고의 사 자만 꺼내도 치를 떨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해원은 태연한 얼굴로 더욱 엄청난 말을 꺼냈다.
 
  “사실 제가 초소 쪽을 보니 음기가 가득 찬 게, 그대로 놓아두었다가는 또 비슷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비슷한 사고가 또?”
 
  행보관의 얼굴이 근심스럽게 바뀌었다. 하기야 바로 어젯밤에도 누가 자살할 뻔했다는데, 또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다면 윗선부터 줄줄이 사표 쓰고 자진 전역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에 대고 해원이 회심의 낚싯대를 던졌다.
 
  “다만 제가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안심과 걱정이 절반씩. 해원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급변하는 행보관의 표정은 숫제 안쓰러울 정도였다. 해원은 몇 가지 요구사항을 꺼냈다. 행보관은 한참을 생각하다 결심한 듯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중대장님하고 대대장님께 말씀드려 보지.”
 
  그러더니 행보관이 갑자기 내게 화살을 돌려 으름장을 놓았다.
 
  “주원순이, 너 이해원이랑 친한 것 같으니까 둘이 같이 책임지고 일은 꼭 해결해라. 알았지? 제대로 안 하면 앞으로 제대까지 휴가 못 갈 줄 알아.”
 
  내가 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나는 간신히 참았다. 대신 나는 행정보급반을 나오자마자 해원에게 캐물었다.
 
  “너 점 같은 거 못 봤잖아.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점쟁이가 된 거야?”
 
  “아. 그거?”
 
  해원이 씩 웃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대충 넘겨짚은 거지.”
 
  “뭔 소리야?”
 
  “그 양반 아버님이야 수술 전에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 받으셨을 텐데 별 이야기 없었으니 수술만 잘 끝나면 건강하실 테고, 차는 무사고라고 했으니 앞으로도 별 문제 없겠지. 당연하잖아?” 
 
  “새 집은?”
 
  “너도 들었잖아. 분양이 안 되어서 싸게 나온 아파트인데 고민 중이라고. 그런 아파트가 값이 오르겠냐.”
 
  “내후년이 되기 전에 좋은 일이 있다는 건?”
 
  “내후년까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는데 그 사이에 좋은 일 한 번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묻는 말마다 척척 대답이니 기가 막혔다.
 
  “와, 몇 년 안 본 사이에 사기꾼 다 됐네. 너 되게 얌전하고 말 없지 않았냐?”
 
  “하는 일이 하는 일이라.”
 
  해원이 밉지 않게 씩 웃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게 있었다.
 
  “그럼 행보관 아버지가 아프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나도 몰랐는데 누구한테 미리 들었던 거야?”
 
  해원은 다시 한 번 소리 없이 웃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나도 영업비밀이라는 게 있으니까.”
 
  다시 한 번 닦달해 볼게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대신 나는 투덜거렸다.
 
  “하여튼 친구 하나 잘못 둔 턱에 예전처럼 엉뚱한 일에 끼어들어 버렸네. 뭐냐 이게.”
 
  “무슨 소리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보다 네가 앞장서서 먼저 시작한 일이잖아?”
 
  해원의 반격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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