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눈이 멀었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최옥, 너의 의미
흐르는 물 위에도
스쳐가는 바람에게도
너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긴다
한때는 니가 있어
아무도 볼 수 없는 걸
나는 볼 수 있었지
이제는 니가 없어
누구나 볼 수 있는 걸
나는 볼 수가 없다
내 삶보다 더 많이
널 사랑한 적은 없지만
너보다 더 많이
삶을 사랑한 적도 없다
아아, 찰나의 시간 속에
무한을 심을 줄 아는 너
수시로
내 삶을 흔드는
설렁줄 같은 너는, 너는
복효근, 네 속눈썹 밑 천리
그 빛에 부딪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내 마음이
대책 없이 설명할 수도 없이
그 속에 머물러
한 천년만 살고 싶은
혹은 빠져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꺼이
죽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
네 속눈썹 밑
그 깊은 빛 몇 천리
김순아, 사는 법
늘 떠나고 싶었어
해 기울지 않는 어디 달 지지 않는 어디
익명의 섬
하나쯤 있을 것 같았어
두려웠어
언제나 황량한 겨울이
겨울 아침의 쓸쓸한 풍경들이
내 어두운 시간이 힘들고 외로웠어
떠나고자 하는 열망
그건 덫인지 몰라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순환선 같은 삶
어디에 내 안주할 땅 있을까
다시 바라보면 저 쓸쓸한 풍경들도
그 얼마나 가슴 사무치는 일인데
이 세상에 산도 있고 바다도 있지만
마음 밖에 있을 때는 산도 바다도 보이지 않듯
내게 늘 그리움으로 출렁이는 바다도
누군가에겐 절망이며 상처일 수도 있겠지
모든 날이 눈 비 내리고 바람만 불지 않듯
인생이 늘 춥거나 쓸쓸하진 않겠지
언젠가 나도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앉아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마음 가볍게 웃을 날도 오겠지
민병도, 한때 꽃
네가 시드는 건
네 잘못이 아니다
아파하지 말아라
시드니까 꽃이다
누군들
살아 한때 꽃,
아닌 적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