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사이트에서는 전라도 사람은 홍어고, 5.18 민주화운동은 폭동이며, 5.18 희생자의 관은'홍어 택배'다. 그들의 화살은 비단 전라도인에게만 겨누어지지 않아 한국 여성을 '김치x'이라 부르며 비하하고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저주한다.
즉 일베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여겨지는 집단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렇게 약자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일베는 기생충과 공통점이 있다. 기생충 역시 위생시설이 좋지 않은 후진국에서 감염률이 높으니 말이다. 기생충이 악의 화신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도 일베와 공통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일베에 상주하면서 활동하는 이들이 '일.베.충'이라 불리는 건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기생충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일.베.충은 기생충보다 훨씬 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기생충은 숙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드물다. 기생충은 숙주 몰래 숙주가 먹는 걸 조금 빼앗아 먹자는 소박한 목표를 갖고 있다. 숙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얌전히 있는지라 몸 안에 기생충이 있다 해도 별다른 증상이 없다. 게다가 양도 그리 많지 않아 회충이 100마리쯤 있다 해도 밥 한 숟가락 정도면 하루가 행복하다.
물론 못사는 나라라면 밥 한 숟갈이 심각한 문제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럴 정도는 아니잖은가? 이에 반해 일.베.충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홍어 택배'란 표현에 5.18 유족 한 분이 충격을 받고 드러누웠다는 기사에서 보듯 그들이 쓰는 글들은 하나하나가 약자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숙주인 곤충을 물에 빠지게 하는 연가시의 예에서 보듯 기생충도 숙주에게 큰 피해를 끼칠 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연가시가 물에서만 짝짓기를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손의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베.충들이 쓰는 글들은 대체 어떤 이점이 있어서일까? 어쩌면 그들도 그런 비하글을 써야만 짝짓기가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둘째, 기생충은 다른 이에게 전파되기 어렵다. 요충처럼 사람간의 긴밀한 접촉으로 전파되는 기생충이 없는 건 아니지만 회충에 걸린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하고 심지어 부둥켜안는다고 해도 회충에 걸리는 일은 없다. 반면 일.베.충은 전염성이 강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비하글들은 아직 제대로 된 가치관이 세워지지 않은 이들의 사고를 오염시킨다. 이미 국가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5.18이 북한의 사주에 의해 일어났다고 믿는 아이들을 보면 일베의 해악이 회충 수천만 마리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한때 수십억 마리에 달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던 회충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퇴출당했다. 회충이 숙주에게 큰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해도 그들의 혐오스러운 외양이 발전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잘 사는 나라들 얘기일 뿐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가난한 나라 국민들은 여전히 몸에 회충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디시인사이드라는 사이트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던 일.베.충들이 세력을 확장하며 이슈로 떠오른 건 우리 사회가 이들을 걸러 낼만한 위생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베를 "인터넷을 점령해 여론조작을 해온 좌익들을 보다 못해 젊은 애국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만든 공간"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권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국정원장이 일.베.충들을 불러 격려하는 후진적인 사회, 일.베.충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회충에 걸리지 않을 위생시설을 갖추려면 돈만 있으면 되지만 일.베.충이 자랄 수 없는 시설을 갖추려면 돈만 가지고는 안 된다. 일.베.충에 잘 듣는 구충제 개발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