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보름달, 박성우
엄마, 사다리를 내려줘
내가 빠진 우물은 너무 깊은 우물이야
차고 깜깜한 이 우물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황인숙, 밤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자장 자장 자장
밤은 차곡차곡 조용해진다
밤은 너를 잠재우길 바란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자장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도종환, 초록 꽃나무
꽃 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
원태연, 두려워
너를 예로 들어
남을 위로할 때가 올까봐
나도 그런 적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하게 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