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참재물인' 정청래의원님의 복귀방송 '전국구'를 듣다 깜짝 놀랐습니다.
19대 총선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큰 득표차로 이긴 지역구가 박영선의 '구로을'이랍니다...
(2만 1천표 차이)
2등이 바로 정청래의원의 마포 을, 1만 8천 5백표차이였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박영선쪽이 반응이 없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해답이 되네요. 지역기반이 단단합니다 구로 을.......
그래서 좀 찾아봤는데, 2만 1천표가 아니라 2만 3천표 차이로 박영선이 당선됐더군요.
아래는 위키에서 긁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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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을[편집]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에서 민주통합당 박영선 후보가 23,839표차로 당선됨. |
| 기호 | 후보 | 정당 | 득표 | 득표율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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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강요식 | 새누리당 | 31,063 | | |
| 2 | 박영선 | 민주통합당 | 54,902 | | |
| 6 | 심재옥 | 진보신당 | 2,659 | | |
계 | 88,624 | 투표율_5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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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_구로구 을 | 선거인수_159,988명 | 기권수_70,849명 | 투표수_89,139표 | 무효투표수_515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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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만만한 분이 아닙니다.
더 문제인 것은 당시 빌빌거렸던 새누리당 강요식 후보가 이번에도 공천받아 리턴매치를 한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야당지지자들이 웃어야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네요.
게다가 일부에서 정의당 '천호선' 등판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제가 알기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총선 출마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또한, 정의당에서도 부담되는 게 사실이죠. 외계인이 침공했는데 왜 일본과 싸우려 하냐는 비난도 받을 수 있고....
이 글 올리는 이유는...
마치, 시사게시판만 보면.. 당장이라도 박영선의원이 낙선될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역기반 엄청 탄탄하고,
경쟁자는 약하디 약합니다.
제3의 정당에서 무리해서 후보를 내기도 명분이 필요합니다.
박영선의원을 꼭 낙선시키자?? 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다만,
필리버스터중단에서 정청래컷오프까지..... 아니죠 그 전에 '탈당'운운하며 당대표를 뒤흔든 원죄까지.....
더민주의 분열의 핵심인 그녀..
그녀가 낙선하길 바라는 일부의 꿈이 그리 쉽게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TGI네요. 그럼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P.S
마지막으로 그녀가 친노에 앙심을 품게된 이유를 간략히 적은 '시사오늘'기사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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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오늘 2016년 3월 5일 기사 중 발췌 ]
◇박영선, 원내대표로 'MBC 전성시대' 열었지만…'친노'에 밀려 리더십 상처
더민주 박영선 비대위원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MBC 미국 특파원과 뉴스 앵커를 역임하면서
사내 간판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박 위원에 정계 입문을 권유한 사람은
바로 MBC 선배 정동영 전 의원이었다.
박 위원은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 당 대변인으로 변신했다.
18대,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구로구을에 당선돼 정치력을 쌓아갔다.
정계에서도 승승장구하던 박 위원이 2014년 원내대표직에 올랐을 때는
'MBC 전성시대가 시작됐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박 위원의 최측근인 최명길 전 MBC 부국장이
문희상 전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 정무특보로 임명됐고,
MBC 기자 출신인 김성수 대변인 역시 당시 원내대표 정무조정실장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 위원은 당시 새누리당과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나섰지만
당내 의원들과 유가족 모두 협상결과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상돈 영입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오히려 기름에 불붓는 격이었다. 공개 퇴진압박까지 이어졌다.
당시 상임고문이었던 정 전 의원도 박 위원의 질책에 가세했다.
그는 "이상돈 교수 영입은 새누리당 2중대라고 선언하는 꼴"이라면서
"박 원내대표도 거취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은 결국 6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을 내려놔야 했다.
이는 '친노세력의 흔들기'에 따른 결과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비노성향의 박 위원이 핵심 당직을 잡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이 논란이 되자 친노 좌장격인 문재인 전 대표 등이
직접 나서 흐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위원의 정치적 리더십에 큰 흠이 생긴 탓에
당내 주도권 잡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