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안녕하신지요?
- 어느 고대생의 질문에 대한 어느 부족한 젊은이의 대답 -
12월의 한파를 지나며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최근에 그 누구도 묻지 않았던 저에 대한, 아니 우리에 대한 안부를 묻는 한 고대생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들불이 옆으로, 옆으로 번지듯 여러 대학의 학우들께서 그의 안부에 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안부가 시작되었던 고대에는 대자보 릴레이가 담벼락을 돌고 돌 정도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어느 한 학교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은 부족한 젊은이오나, 현 시국을 바라보는 또래들의 열정에 힘입어 이렇게 가상의 담벼락에나마 대자보를 붙입니다.
최근 지하철 타기가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살면서 파업 한두번 쯤은 많이들 겪으셨겠지만 이번에는 한파와 눈이 겹쳐 더 힘든 모양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파업 때문이 아니라 지하철 요금이 너무 비싸서 탈 수 없는 사람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지금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바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일신의 안녕을 버리고 12월의 겨울바람 한가운데로 당당히 나섰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어쩌면 그들은 두번 다시 우리의 발이 되어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파업이 시작된 지 4일 째 되는 오늘까지 파업에 동참한 노조원 7800여명을 직위해제, 다시 말해 해고시켰기 때문입니다. 아, 박근혜씨가 당선되기 이전에 ‘철도 민영화를 사회적 합의 없이는 진행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사실은 굳이 되짚지 않아도 되리라 믿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하나 의원의 대통령 사퇴 발언 사건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국회의원에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권이 있습니다. 그런 국회의원이 대통령 사퇴하란 말 한마디 했다고 국회의원 제명안을 제출합니다.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은 그런 국회의원을 운영위에서 제외시킵니다. 마치 여당의 눈치를 보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현실입니다.
더 올라가면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시국미사가 있었습니다. 한창 거론되었던 박창신 신부님은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6월 민주항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죄로 당시 경찰들로부터 사제관을 급습당해 일방적 폭행을 당하시고 그로 인해 현재에도 발을 절고 계십니다. 다들 박창신 신부님의 강론 전문은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분이 종북몰이를 당할만한 발언을 하셨는지 의문입니다.
조금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밀양 송전탑 문제가 있습니다. 권력층의 쓸 권리를 위해 소시민의 살 권리를 박탈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를 외치다 끝내 자살로 돌아가신 故 유한숙씨를 아시는 분들은 몇 분이나 계신지요. 그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강제 진압된 사건을 아시는 분들은 몇 분이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지금의 한국이 있게 한 사건, 1219 부정선거 사건이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에 의해 퍼뜨려진 트윗 2200만건이 발견되고, 그 밖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활동한 로그가 다량 발견되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그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소시민의 살 권리가 권력층의 쓸 권리보다 못한 시대, 파업하는 노조들은 그 자리에서 해고되는 시대,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사회에서 매장 당하는 시대, 국가정보기관을 동원해 2200만건의 트윗을 퍼뜨린 부정선거를 벌이고도 1년 째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시대,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절대 들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 이 시대, 우리는 과연 언제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부정을 부정하다 말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당했느냐’는 질문을 던져왔으며, 가해자를 질타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침묵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스스로 묻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벌어진 이 일들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고 말줄임표를 던지며 침묵해왔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무수한 정보의 바다 속에 살면서도 그저 자극만을 쫓고 조금이라도 골치아픈 문제는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누르기 때문입니다.
이 안부인사를 처음 시작한 고대생에게는 정보부 경찰이 찾아갔습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권력층이 듣기 싫어하는 말, 다시 말해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겠죠. 이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마치기에 앞서 한 서강대 학생의 대자보에 적혀있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저보다 조금 더 빨리 그의 안부에 회신하신 분이죠. 그의 말을 잠깐 인용해보겠습니다.
' "개기면 죽는다. 개길 힘이 남은 자는 유난종자로 찍힐 뿐이다. 생명보다는 돈이, 그 지긋지긋한 돈이 더 중하다. 찌질한 약자보다 매력적인 강자를 사랑하는게 당연하다." 이깟 말들을 세뇌 당한 채 상식을 잃고 침묵에 젖어버린 우리들이 아니던가요. 세상은 우리의 꿈엔 전혀 관심없는데 세상을 향한 우리의 아우성은 공허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 늙어 쉬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상식을 잃은 우리의 아우성은 공허하고, 그 아우성은 침묵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꿈에 관심이 없다 해서, 우리도 어느샌가 세상에 관심이 없어져 버린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리가 관심이 없다면 과연 누구의 손해일까요...?
우리는... 우리는 언제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힘없는 사람은 죽고, 나라의 핵심 이념인 민주주의는 빨간 옷을 입은 악마들에 의해 희롱당하고 있으며,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모두 종북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는, 저는 과연...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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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페이스북.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평생교육원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어 대자보를 붙일 곳이 없는 외로운 젊은이입니다.
현 시국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대자보를 붙일 담벼락이 마땅히 없어 제 페이스북 담벼락에나마 올려보았습니다.
위에서 보신 내용은 제 페이스북 담벼락에 게시된 내용과 동일합니다.
때문에 시사에 관심 많으신 오유분들께는 굳이 말해도 않아도 되는 내용들이 장황하게 적혀있습니다.
제 지인들 중 시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많은 분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계신 와중에, 저도 한마디 거듭니다.
다들, 안녕들 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