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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소유를 읽고 생각해본 현재 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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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고주망태지롱
추천 : 0
조회수 : 21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2/14 15:11:03
 
잡념이 많은요즘. 법륜스님이나 법정스님 말씀 같은걸 찾아보면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무소유에 대한 리뷰를 쓰기전에 법륜스님 책을 잠깐 인용해보자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풀이하자면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니라."라는 뜻입니다.
 
-방황해도 괜찮아 中-
 
 
 
대단한 미래를 위해 항상 고뇌하고 힘겨워하는 청춘에게 보내는 법륜스님의 조언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지금 현재 행복하는것이 중요하고, 미래의 그 어떤 것보다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말.
 
하나의 생명체로써 불교의 사상은, 알수록 놀랍고 더 알고싶은 매력이 있는 듯 하다.
각설하고, 전부터 읽어보자고 다짐했던 무소유를 펼쳤다.
 
어려운 형편에 작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근근히 학업을 이어가던 법정 스님은 돈에 찌들리던 대학 생활을 스스로 접고 속세를 떠난다.
무작정 오른 길에서 알음알음 효봉스님을 찾게되고 효봉스님은 대번에 불교에 귀의할 귀재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에게 법정이라는 법명을 내린다.
 
효봉스님의 호연지기에 반한 법정은 시자가 되어 마음으로 깊이 스님을 존경하고 따른다.
그리고 효봉스님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무소유 사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어느 날, 효봉스님은 우물가에 설거지하다가 흘린 밥알 몇알과 시래기 줄거리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법정스님을 부른다.
그리고 불자들이 기부한 돈을 허투로 쓸 셈이냐며 나지막히 읊조리고 남아있던 음식 찌꺼기들을 물에 살짝 헹궈 법정스님 앞에서 입에 훌훌 털어 넣는것으로 훈계를 대신한다. 그 모습은 그 어떤 형벌보다도 법정스님의 마음을 울린다. 그 이후 우물가에는 작은 찌거기조차 남지 않았다.
 
또한 향기를 잃고 거품까지 잃은 작은 비눗조각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법정에게
"중이 왜 두 개를 가지겠느냐?" 며 말문을 잃게 만든다.
그 길로 법정스님은 부엌으로 들어가 단 벌의 수저와 꼭 필요한 그릇만을 남긴 채 필요 이상의 것들을 보따리에 싸서 다른 절에 가져다둔다.
효봉스님의 깊고 큰 뜻 만큼이나 즉각 그에 대처하는 법정스님의 자세도 주목할만 했다.
 
법정스님은 효봉스님 슬하를 떠나서도 불자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으며 수행한다.
제대로 된 불교 사전을 만들어보고자 모인 스님들과 함께 불교사전 편찬일에 힘을 쓰고
월간 문예지 <현대 문학>에 무소유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소통 생활도 계속한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바뀌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소설 <무소유> 147p-
 
 
그 중 법정스님이 쓰신 위 구절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무소유를 검색만해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널리 퍼졌지만 이 구절의 읽을수록 빠져드는 쌉쌀한 매력은 변질되지 않았다. 자주 읽어도 변질 되지 않는 큰 뜻이 내포되어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는게 아닐까?
 
실제로 법정스님은 아는 스님께 선물받은 난초 두 분을 기르며 무소유를 더욱 더 실감하게된다.
혹시나 물을 주진 않았는지 날이 추워 얼지는 않을지 애지중지 노심초사 하던 법정스님은 어느 추운날 외출길에 난초 걱정 때문에
가던 길을 되돌아오게되고 그 이후에 더 큰 깨달음을 얻어 지인에게 난초를 선물하게된다.
 
난초의 향과 자태를 즐기기위한 대가는 어떠한 얽매임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거창하지 않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일이라는 공감이 있었기에 더욱 더 이 구절이 와닿았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소설 <무소유> 159p-
 
 
그리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이라는 구전되는 격언 또한 멋드러지게 표현한 이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네, 하고 자리를 털고 떠난다 함은 어떠한 미련도 구차함도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게 이승과의 안녕을 고하는 느낌이 들어서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던 법정스님은 정든 다래헌을 떠나 송관사로 옮기기로한다.
세상의 문제에 귀기울였던 법정스님에게 서울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인혁당사건의 충격 때문이었다.
국가보안법혐의로 23명이 구속됐고 8명은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 후 20시간만에 형이 집행되는 현실에서 법정스님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더 큰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기 전에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 거처를 옮기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인혁당사건은 국제법학자협회가 그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할 만큼이나 악독한 사건이었다.
(* 인민혁명당 사건은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했으며 법원은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다른 독재국가에서도없던 유일무이한 만행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니, 그 무시무시함은 아직까지도 여러사람에게 힐난받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전에 없이 마음에 울화가 치밀었으며, 더 나아진것 없는 요즘 행태 때문에 분통이 터졌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에 무고하게 희생되었던 영혼들, 그리고 그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은 요즘세대의 지성인들은 지금도 옥죄이고있다.
13년 12월 14일, 오늘은 고려대 학생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필두로 모인 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대자보를 읽는 내내 안녕하지 못한 우리의 세태를, 평균 혹은 경쟁에 있어서의 평균 이상의 스펙을 가진 우리 대학생들이 애써 무시하고 있던 아픈 종기를 한방에 긁어 터뜨린 느낌이었다. 더 이상은 안녕하지 않을것임을 다짐하는 그들 앞에서 나까지 잠들어있던 무언가를 깨운 느낌이 들었다.
 
연잎은 모든 빗방울을 머금지 않았다. 자신이 감당할 만큼만 담고 있다가 넘치게 되면 다른 연잎으로 떨어뜨렸다.
-소설 <무소유> 262p-
 
연잎의 무소유처럼 우리의 본연은 이토록 당연하고 숙연하고 조용할지 모른다.
각자의 것에 만족하고 더 욕심을 내지 말 것이며,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은 더욱 안된다.
누구를 위한 공약의 대량 파기인지, 무엇을 위한 파기인지 파헤쳐보면 결국 남는 것은 욕심, 탐욕,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
그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우리들의 목소리. 가능할지 몰라도 꼭 막아야할 것들. 
 
책의 말미에는 작가가 왜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썼는가에 대한 자조적인 성찰이 담겨있었다.
작가는 법정스님의 제자로, 법명까지 하사받은 사람이다.
 
 ‘세상에서 살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이라는 법명과 삼귀오계를 주었다
-소설 <무소유> 310p-
 
작가는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 머물던 시절,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저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법정스님의 소년기, 청년기 등을 상세히 들었다.
때문에 소설 <무소유>는 정말 법정스님의 자취를 더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물들지 않고 내 색깔대로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진다면 힘을 합쳐봐도 좋을 것 같다.
무소유의 인세로 93년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어려운 학생들의 학자금을 대주었던 스님이 남긴 향취처럼
모든 사람들이 내가 가진것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 향취가 오래토록 남아 어떠한 반향을 일으켜
각자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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