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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한민족은 누구인가? (베스트글에 대한 반박문)
게시물ID : science_283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sia
추천 : 4/4
조회수 : 387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2/14 22:05:38
 
한민족은 누구인가?

-susia


조정래 선생은, 최근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민족주의, 인종주의, 국가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많은 분들이 민족주의를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는데, 이는 일부 비뚤어진 배타적, 우월적 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견해일 수는 있지만 민족주의 자체는 인간의 근원적 본성이므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나 자신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태어나면 자신의 유전적 형질을 물려받은 이 존재가 나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자녀의 자녀 역시 타인들보다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나 사촌, 팔촌 등의 친족 역시 타인들보다 소중합니다. 민족주의는 이처럼 자신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형질을 가진 존재들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됩니다. 여기에 더해 같은 민족 구성원들은 언어와 문화 등의 고차원적 동질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누구인지, 어떠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은 정확한 역사 기록과 유전학, 인류학적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오늘 서둘러 기술하는 이유는,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온 한 글 때문입니다. 이 글은 ‘하플로’를 소개하면서 대한민국 구성원들 중 약 40%가 중국계인 O3계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기초적인 오류이면서 심각한 잘못된 해설입니다.

이 오류를 바로잡는 동시에 한민족의 역사와 민족 구성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이 글에서는 하플로가 무엇인지, 우리 민족의 기원과 언어, 문화의 기원은 어디인지, 민족 구성이 현 상태로 자리잡게 된 과정은 어떠한지,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루고, 최근 일베 유저들 중 일부가 주장하는 인종청소론에 대해서도 소개하겠습니다.

1. 하플로란 무엇인가.

남성은 Y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에게 없는 유전자이기 때문에 대를 아무리 거듭해도 형질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간혹 말단에 미세한 변이가 일어나긴 하지만 이는 큰 의미가 없는 변화입니다). 즉, 내 10대조 할아버지와 32촌 형제 등, 아무리 먼 친척이라 해도 동일한 부계 내의 남자들은 모두 동일한 Y유전자를 보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Y유전자는 성염색체이지만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상염색체이기도 합니다. 즉 동일한 부계 내의 남자들은 모두 일정 부분 동일한 형질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자녀에게 미토콘드리아를 물려줄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미토콘드리아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사람들은 한 여성을 외할머니로 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플로그룹이란 바로 이처럼 동일한 유전형질을 가진 사람들을 분류해 놓은 그룹을 뜻합니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인류의 역사를 유전자의 전쟁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각 Y유전자 그룹들은 타 Y유전자 그룹을 정복하고 말살하며 보다 많은 여성들을 차지하여 되도록 많이 번식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벌여온 전쟁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지만 중세에까지만 해도 이러한 시각이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2. 한반도의 민족 구성

가. 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 선생은 매우 열악한 환경 내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조선상고사를 기술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였던 선생이 이 책을 기술한 이유는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 독립운동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목적의식과 별개로 조선상고사는 우리가 보물로 여길만한 탁월한 역사서입니다.

기록의 나라라 불릴만한 조선이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왕조실록을 남겼기 때문에 이 시기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이론은 있을 수 없지만 상고사는, 희대의 엉터리 역사가이자 매국노에 가까운 김부식에 의해 왜곡되어져 사실을 정확히 알기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이를, 사마천의 사기 등 중국의 기록물 등을 토대로 정확히 정리한 것이 조선상고사입니다(최근에 인기 역사학자인 박영규가 백제의 기록들을 사실에 맞게 재해석하였는데 이 역시 매우 의미있는 결과물입니다).

조선 시대의 역사학자들마저도 실소를 금치 못했을만큼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역사서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엉터리입니다. 신채호 선생은 김부식에 대해 경멸과 증오의 감정마저 내비쳤습니다.

여하튼 조선상고사는 훌륭하고 정확한 역사서임에 분명한데, 이 책의 유일한 오류는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며 그 민족이 원래 부여족이었다는 설정이라 할 것입니다.

천재역사가였던 단재 선생이,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앞서 설명된 바와 같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와 같이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 부여족은 누구인가.

부여족은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하여 만주 북부지역으로 이주한 기마민족입니다. 외형적 특징으로는 고두, 단두, 하얀 피부, 짙은 눈썹, 비교적 높은 콧대, 작은 눈 크기, 진한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을 들 수 있습니다. O3a계열에 속하며 외모에서 이러한 유전적 형질이 잘 나타나는 유명인으로는 정치인 이회창, 가수 이민우, 방송인 이휘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고두란, 정수리에서부터 턱까지의 길이가 긴, 말 그대로 기름한 얼굴형을 뜻합니다. 단두란 머리의 형태(ex-짱구인지 여부 등)에 관계없이 이마와 뒤통수 사이의 절대길이가 짧은 것을 뜻합니다.-

인근 지역의 유목민들과 달리 정주문명을 가졌고, 수렵과 농업, 축산업을 병행했으며 특히 잠업에 능했습니다.

단재 선생은 우리 민족을 왜 하필 부여족으로 정의했을까요. 유전학적인 관점에서 우리 민족 모두를 부여족만으로 규정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정의이지만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한 편으로는 옳은 정의이기도 합니다.

(1) 한국어의 기원은 부여어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정설이 되었습니다. 한국어가 중국어(한계언어)와 온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정설이었지만(어순조차 다릅니다) 그 외 주변민족들의 언어, 즉 몽골어나 만주어와도 상이한 독자적인 언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일정한 친족관계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기원은 부여계어이며 이는 신라시대에 일부 변형된 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2) 부여의 문화

아래에서 상세히 설명할 선비족이 고구려의 사서를 모두 불태우는 바람에 부여에 대한 역사 기록은 중국 측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확인되는 부여족의 풍습과 문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여족은 한족은 물론이고 여타 북방계 몽골리안들과 온전히 다른 풍습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상투를 트는 풍습입니다. 이 풍습은 조선시대까지 내려옵니다.

고구려가 중국의 존폐를 위협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간신히 막아낸 일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마천은, “이 때 패배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상투를 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며야만 했을 것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상투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이었습니다.

또한 부여족은 철제무기 제조술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가야의 철기문화는 가야의 지배계층이었던 부여족으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부여족은 병기창을 따로 두지 않고 집집마다 무기를 보관했습니다.

또한 부여족은 다른 북방계 몽골리안들처럼 기마술과 궁술에 능했습니다. 부여족에는 보병이 없었고 군대는 전원 기마병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궁술은 부여족의 대표적인 무예였습니다. 몽골족은 화살을 멀리 쏘는 것이 자랑이었지만 부여족은 긴 사거리와 더불어 정확성까지도 자랑하였습니다. 이러한 속성은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져 조선시대 장병들은 모두가 활쏘기에 능했고 심지어 칼을 활보다 뒷전에 두었습니다. 부여족이 사용한 독자적인, 아름다운 디자인의 복합궁 역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부여족은 음악을 사랑했고 미감이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중국의 사서는 부여인들이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모여서 잔치할 때도 노래를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단옷을 매우 좋아한다고 설명하였는데, 부여계 국가인 고구려의 벽화를 살펴보면 옷차림이 매우 화려함을 알 수 있습니다(그 시대에 과연 존재했을까 싶은 땡땡이 무늬의 바지까지 입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무기를 제작함에 있어서도 높은 미감을 뽐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 한국인들의 하플로그룹 구성

사서를 살펴볼 때 현재 한국인들은 크게 여섯 개의 민족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부계 하플로그룹을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사서에 근거한 분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부여족, 2) 예맥족, 3) 마한의 토착민족, 4) 변한의 토착민족, 5) 진한의 토착민족, 6) 변한의 토착민족

하플로그룹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집니다.

1) O3a 계열,  2) O2b 계열, 3) C3 계열, 4) 기타(최남단 토착민족 등)

이들이 각각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합쳐지게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3. 한국인의 역사와 민족통합

가. 부여족의 연방제 국가 건설

(1) 부여족의 사기극

부여족은 만주 북부에 본거지를 형성한 이후 만주 일대와 한반도의 토착민족들에게 자신들을 ‘천족’이라 소개합니다. 단군신화의 내용을 상기해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부여족의 자신들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발해에 이르기까지 이어집니다.

부여족의 왕은 종교의 수장 역할을 병행하였습니다.

여하튼 부여족은 군사력과 신화를 토대로 만주 일부지역과 한반도에 제정일치의 연방제 국가를 설립합니다. 신조선(부여), 말조선(마한), 불조선(변한)으로 이루어진 고조선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국가 건설 과정에 무력이 크게 사용되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토착민족들은 부여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였고 국가 설립에 협조하였는데 여기에는 신화가 효과를 발휘한 것에 더하여(주몽도 고구려를 건국할 때 적극적으로 신화를 퍼뜨렸습니다) 부여족의 통치술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라가 진한을 통합하자 진한의 백성들이 마한의 통치를 그리워했다는 기록에서 그와 같은 사실이 확인됩니다. 사실, 고대에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은 생각해내기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여하튼 이 당시에는 마한과 변한, 그리고 한반도 북부에 소수의 부여족들이 통치계급으로 존재하였을 뿐 본격적인 민족통합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이 때 소수의 부여족이 일본에도 진출합니다.

또한 환단고기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고조선은 엄청난 군사력을 갖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주변 유목민족들에게 상당히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나. 고구려의 탄생과 예맥족과의 통합

부여의 왕족이 부여의 귀족들과 함께 설립한 고구려는 건국 초기에 한반도 중북부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부여(이 부여는 국가 이름을 뜻합니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이 때 말 수만 마리를 획득하였습니다) 기세를 떨치기 시작하였고 소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때 병합된 민족이 예맥족입니다(예족과 맥족을 나누어 보기도 하지만 그 분류기준은 매우 모호합니다). 예족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널리 거주하고 있었던 민족인데,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동예는 ‘동쪽의 예족 국가’라는 뜻이며 지금의 강원도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예맥족의 외형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유명인으로는 영화배우 원빈, 주진모, 가수 김희철 등이 있습니다.

예맥족과 결합된 부여족 국가인 고구려는 이후 한국사 사상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합니다. 기마병으로만 군대를 구성했던 부여와 달리 각종 병과를 갖추고, 당시 동북아시아 최고의 군사력을 갖고 있던 선비족에게도 밀리지 않으면서 중원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전부터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던 부여족과 예맥족이 서로 무리 없이 통합되었지만, 이후 고구려인들은 타민족과 섞이는 일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점입니다. 고구려인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미천한 민족으로 여긴 주변 북방계 몽골리안들, 즉 거란족, 해족, 습족, 여진족들과의 혼인을 기피했습니다.

고구려인들과 발해인들의 선민사상은 유별난 수준이었습니다. 외국과의 서신에도 반드시 자신들이 천족임을 명시하였고, 조공을 바치기 싫다는 이유로 전투병 100만, 보급병 등 기타 인원 약 300만 명을 동원하여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수나라와 맞서기도 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매년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처럼 고구려의 건국으로 인해 O3a계열(부여족), O2b계열(예맥족)이 통합되게 됩니다.

다. 백제의 탄생과 마한과의 통합

고구려가 탄생한 직후, 오늘날의 서울 지역에 백제가 건국됩니다. 백제의 창업자인 온조는 부여의 귀족이었으며, 이후 백제 왕가는 ‘부여 씨’를 성씨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충의 온 이름은 부여성충입니다.

이 외에도 백제의 지배계급은 부여의 왕족인 ‘해’씨를 비롯하여 부여의 귀족들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마한의 지배계급이었던 구 부여계(ex-진씨)가 합류합니다.

백제는 수십 개의 소국가로 나누어져 있던 마한을 무력으로 정복합니다. 고조선이 건국될 때와 달리 마한의 토착민족들은 상당수가 극렬히 저항하였습니다. 이는 고조선과 백제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이에 온조는 마한의 한 부족을 모조리 살해하기도 했으며 백제는 결국 오늘날의 서울, 경기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일부, 전라북도 지역을 통합하고, 이후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전라남도 지역까지 재패합니다. 이는 백제가 전라남도 지역의 토착민들의 저항에 매우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여하튼 백제의 건국으로 인해 O3a계열(부여족), O2b계열(예맥족과 유사하며 한반도에 1차로 진출한 민족, 부여족 입장에서는 토착민족), 그리고 한반도 최남단의 원주민(하와이, 괌, 일본의 토착민들과 외형이 유사하며 일부는 실제로 폴리네시안 계열로 확인되기도 합니다. 해당 외형을 가진 유명인 중에는 윤구병, 국회의원 김선동 등이 있습니다)들이 한 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계급이 나뉘어졌고 백제와 고구려는 서로 다른 계급간의 혼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북방계와 원주민들의 핏줄이 섞이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라. 신라의 민족 구성

신라의 민족 구성은 고구려, 백제와 매우 상이합니다. 신라의 지배계급은 흉노로 알려진 선비족(거란족)이었습니다. 또한 건국 이후의 상황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신라는 박씨가 설립한 나라입니다. 박씨는 O2b계열로서 한반도의 토착민족입니다. 그런데 이후 왕위를 가져간 석씨는 오늘날의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부터 군대를 이끌고 한반도에 진출한 사실이 신라의 정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왕위를 차지한 김씨는 스스로를 흉노 김일제의 후손으로 소개하고 이를 묘비에까지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경북지역에서는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선비족의 유물(주로 기마와 관련된)이 대거 출토되었습니다.

그리고 석씨와 김씨가 한반도에 진출한 시기는, 고구려에게 대파당한 선비족의 일부 무리가 부여로 이동하여 부여의 왕을 살해하고 계속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신라 지역에 진입한 시기와 일치합니다.

흔히들 신라를 흉노족이 세웠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흉노는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제국의 이름입니다. 흉노는 몽골, 선비, 돌궐, 갈족 등을 모두 아울러 설립된 나라입니다.

여하튼 이 시기에 한반도에 출현한 선비족들의 하플로그룹은, 한반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C3계열입니다. 경주김씨(김해 김씨를 제외한 거의 모든 김씨들이 분파한 동일한 가문입니다. ex- 안동 김씨, 광산 김씨 등), 정씨, 경주 이씨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 선비족들은 백제가 마한을 정복한 것과 달리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받았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피지배계급의 언어까지 사용하였습니다. 박씨들은 김씨가 왕위를 가져간 이후 단 한 차례도 왕위에 앉지 못합니다.

또한 극소수의 이민족이라는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이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종족 번식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일단 이들은 자신들에게 있어 이민족이자 자신들에 비해 압도적인 수의 한반도 토착민족들에게 융화되는 것을 피하고자 성골들끼리 근친을 지속했고, 이에 더하여 자신들의 씨를 광범위하게 퍼트리기 위하여 ‘색공’이라는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지배계급인 선비족이, 여성 토착민들 중 처녀,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아무나 지정하면 해당 여성이 그 날 반드시 잠자리를 같이 해야만 하는 제도였습니다. 또한 화랑제도하의 낭도들은 결혼하기 전 지배계급인 화랑에게 첫날밤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신라 귀족들은 부하의 아내가 임신하면 뱃속의 아이와 친해져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집안에 살게 하면서 성관계를 가졌는데 이를 마복자(뱃속에서 마찰한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부여족의 나라인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엽기적인 제도였습니다.

여하튼 신라가 건국됨으로 인해 선비족(C3계열)과 진한의 토착민족(O2b계열과 그 외 원주민들), 가야의 지배계급이었던 극소수 부여족과 변한의 토착민족이 한 나라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선비족 고유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유명인으로는 영화배우 김민준, 고려의 정치인 정몽주 등을 들 수 있고, 외모에서 선비족과 진한의 토착민 사이의 혼혈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유명인으로는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을 들 수 있습니다.

마. 이후 전개
삼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지배계급들은 그 신분을 유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계층간 혼인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라의 귀족들과 백제 지역의 귀족들 사이의 혼인은 간간히 이루어졌지만 이는 여성이 시집을 가는 풍습으로 인해 하플로그룹 분포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 고장에 정주하는 풍습도 오랜 세월, 하플로그룹의 분포가 유지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여계인 O3a계는 남한 내에서는 수도권, 충청도, 전라북도 북부 지역에 주로 밀집되어 있으며(북한 내의 분포는 알기 어렵습니다) 한국인 남성들 중 약 40%가 이에 해당됩니다. 대표적인 가문으로는 전주 이씨를 들 수 있습니다. 대구, 경북, 강원 지역에는 O3a계가 매우 드뭅니다.

한반도에 1차로 진출한 O2b 계열은 한반도 전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인 남성들 중 약 25%가 이 하플로그룹에 속합니다. 대표적인 가문으로는 김해 김씨, 밀양 박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신라의 왕족, 귀족들(김해 김씨를 제외한 김씨들과 경주 이씨, 정씨 등)이 앞서 설명된 독특한 제도들을 이용하여 1,000년 동안 번성한 결과 오늘날 한국인 남성들 중 약 15%가 C3계열이며, 이들은 인구이동이 활발한 오늘날에도 대구, 경북지역에 밀집되어 있습니다(수도권에는 전국 평균과 유사한 비율로 분포).

4. 우리는 우리 민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이상 설명된 사실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란 개념과 관련하여 많은 의문들을 만들어냅니다.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세 그룹으로 분류되는 상이한 민족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명백히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부계 하플로그룹만 살펴보면, 우리가 서로 잡다하게, 구분하기 어렵게 섞이지 않았고 어느 정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상태로 1,500년 이상을 살아왔습니다. 수많은 전란을 함께 이겨냈고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름을 인지하면서도 한 나라의 국민들로서 모두가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5. 지역주의의 악용

오늘날 대구, 경북 지역이 대한민국 내에서 보이는 위세는 대단합니다. 경북 거주자들 중에도 지역주의를 혐오하는 분들이 많고, 정부와 여당이 상식 밖의 행보를 할 때 이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지만, 대다수의 정서를 살펴보면 소위 ‘우리가 남이가’정서가 모든 걸 덮는 상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정권을 연달아 차지한 거대여당이 TK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새누리당입니다. TK지역은 박정희를 구심점 삼아 지속적으로 정치적 연대의식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오래 전부터 TK출신들이 장악하였으며 여기에 더해 행정부 내의 4대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고위직들의 출신지 1위가 TK입니다.

여담이지만 일간베스트의 등록지는 대구이며 최근 5.18 유족을 모욕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재판관할을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으로 옮겨갔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단지 같은 지역 출신들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호남과 관련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악용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날 망국병이라 불리는 지역주의를 최초로 조장한 사람과 정당이 누구인지는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일간베스트라는 엽기적인 커뮤니티를 통하여 극렬한 주장들까지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 중 하나가 지금까지 본 글에서 설명된 하플로그룹을 이용한 인종주의입니다.

디시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베 유저 한 명의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디시인사이드에서 ‘혁신한국’이라는 닉네임을 검색하시면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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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국내 최대의 민간 친일 세력을 양산하고 민간 최대의 좌익 세력을 양산을 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와 한국전의 발발 원인을 제공하게 했던 전라도에 대한 역사 청산 작업을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전라도가 없었으면 일제시대도 없었고, 한국전쟁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역사의 비극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만들었던 주범들에게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감투를 아무런 역사청산과정도 없이 부여하는건 백번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헌데 이는 전라도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서해안 지역의 한족들, 태생적 화교라고 표현하면 정확할듯 합니다. 아무튼 예식진의 후손들인 이들 중국 한족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백제임을 밝혀야 이 나라의 역사가 부끄러워지지 않을 것이요,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올바른 역사를 정립한 바른 선조로 평가를 해주지 않겠습니까?


서해안 지역의 O3가 북방과 연결이 되어져 있다고 하신다면 그들이 남하를 했을 때에 굳이 서해안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했던 이유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가 파악이 되지 않는다면 이들 한족계 O3는 배를 타고 서해안에 도달해서 동해안으로 이주를 했다라고 가설을 제기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즉, 북방계 한족이 아닌 대륙의 한족들이 배를 타고 서해안에 도달을 해서 정착후에 동해안으로 이주를 했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입니다.



한족계 O3가 중국에서 이주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저같은 경우에는 백제시대에 한족들이 한반도에 엄청난 수가 유입이 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숫자는 한족들이 유입되기 이전에 100만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면 백제시대에 유입이 된 한족들의 숫자는 500만 이상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倭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 한족들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추정을 하는 근거가 단순히 O3가 한반도에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동/서해간" 굉장히 높은 비율로 차이가 나고 있음을 그 근거로 하고 있지요. 서해안 지역의 경우에는 50%가 넘는 비율, 서해안의 경우에는 40%가 채 되지 않는 비율로서 O3그룹의 비율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고 있음의 원인이 무엇이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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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사실 무서운 수준입니다.

본문에서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O3a계열은 부여족 그룹입니다. 그런데 왜 일베 유저인 혁신한국은 O3a계열이 한족(중국인)계열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오늘 오유 베스트에 올라온 글에서도 한국인의 40%가 O3계열이고 O3계열은 중국계라고 특정한 것일까요(매우 황당한 말입니다. 한국인의 40%가 한족이라니..).

이는 부여족과 한족의 하플로그룹 넘버인이 모두 O3로 시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부여족과 한족은 조금도 유사한 점이 없는, 매우 상이한 민족들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 넷상에서 ‘야율초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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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터넷에 나도는, 즉, 중국 한족이 O3의 원류이고, 한국인의 부계 O3은 중국 한족에서 온 것이다는 따위의 엉터리 정보를 믿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엉터리 정보를 누가 무슨 목적으로 퍼뜨리는 지 대강 짐작하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조만간에 밝혀질 것이기에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중국 한족은 불과 2000년 전도 안된 한왕조의 성립과 멸망으로부터 형성된 개념입니다. 현재도 중화민족이라는 황당한 개념으로 중국 내 서로 다른 수십개의 민족을 하나로 합치려는 작업이 오래 시간이 지나면, 마치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 실제 혈연적 관계가 포함한 것처럼 착각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O3의 여러 하위하플로들은 이미 적어도 15,000 년 이전에는 분기되어서, 동아시아 각 민족 속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O3의 하위 하플로들 중에 어떤 것이 한국인의 고유한 것인지, 주변 민족 중 어떤 것과 가까운 것인지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SNP 분류 정밀도로는 가려내기가 어렵고, Y-STR의 수치를 비교를 통해서, 유전적 거리를 측정해야만 합니다. 현재까지, 제가 가진 자료로 한국인의 M134나 M117를 주변 다른 민족과 비교해 보면, 만주족, 몽골족 등 북방몽골로이드의 M134나 M117과는 2,000~3,000년 정도 비교적 가까운 시간대에 분기한 것을 보여 주는 반면, 중국 북방한족이나 다른 남방계 Hmong-mien이나 Tai-kadai계과는 적어도 4,000 년 이전에 분기했음을 보여주는 샘플들이 있고, 어떤 하플로타입은 일본인에게서만 한국인과 가까운 거리를 보여주거나, 다른 민족에게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보여주는 타입이 없는 고유한 타입도 있었습니다. 저도 애초에 한국인의 O3이 중국 한족이나 남방계 민족에 연원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중국 한족을 포함한 남방계인들의 자료를 많이 모아서, 비교했고, 적어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무런 편견없이 이런 작업을 진행했기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통계적인 것이기 때문에, 100% 그렇다고는 할 수 없고, 개 중에는 소수는 중국 한족과 가까운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중국 한족이 사실은 수많은 민족이 합쳐서, 형성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개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들 샘플에 대한 해석도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플로 O3이 동아시아에 출현한 시기는 서주의 화하족이나 진한의 한족의 형성보다 휠씬 이른 시기인 홍산문화시대 고인골에서 O3이 나타납니다. 고구려, 백제의 O3이 이들 동북아시아 토착의 O3이 아니라, 진한시대 귀화 중국인의 후손이라고 보기보다는, 제가 보기에는 비파형동검, 혹은 세형동검을 제작하고 사용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토착 세력의 후손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다른 결정적인 자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더 타당한 견해라고 봅니다. 실제, 같은 O3이라도 많은 하위 하플로로 나뉘고, O3과 같은 오래된 하플로를 하나로 지칭해서, 한국계니 중국계니 하여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님께서 좀 더, 이 분야 자료를 많이 보시고, 세분화된 하위 하플로들을 구분해서 논의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플로 O3이 동아시아에 출현한 시기는 서주의 화하족이나 진한의 한족의 형성보다 휠씬 이른 시기인 홍산문화시대 고인골에서 O3이 나타납니다. 고구려, 백제의 O3이 이들 동북아시아 토착의 O3이 아니라, 진한시대 귀화 중국인의 후손이라고 보기보다는, 제가 보기에는 비파형동검, 혹은 세형동검을 제작하고 사용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토착 세력의 후손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다른 결정적인 자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더 타당한 견해라고 봅니다. 실제, 같은 O3이라도 많은 하위 하플로로 나뉘고, O3과 같은 오래된 하플로를 하나로 지칭해서, 한국계니 중국계니 하여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님께서 좀 더, 이 분야 자료를 많이 보시고, 세분화된 하위 하플로들을 구분해서 논의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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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야율초재가 놓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 차례 설명된 바와 같이 부여계 하플로인 O3a계는 수도권과 충청도, 전라북도 북부 지역에 밀집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베 유저들은 O3계가 전라도에만 존재한다고 설정하고 해당 주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일베 유저들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남성들 중 약 40%, 더구나 전라도만이 아니라 수도권과 충청도에 분포되어 있는 남성들이 모두 학살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여족과 한족이 동류라면, 왜 사마천은 고구려를 막지 못했다면 우리가 상투를 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며 타 문명에 흡수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을까요.

자신들을 부여족의 후예로 명백히 인식한 고구려와 발해는 왜 중국에 제후국으로도 흡수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왜 부여족과 한족은 서로 계통이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했을까요.

사실, 부여족을 나타내는 O3a계 하플로가 한족들의 하플로와 동류라는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어설픈 주장입니다. 알파벳만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주장이죠.

여하튼 일베에는 이러한 주장마저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종족끼리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서로 같은 종족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일부’ 극단적인 지역주의자, 인종주의자들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O3a 계열은 결코 중국인의 핏줄이 아니라 부여족의 핏줄입니다.^^


2013. 12. 14.
su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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