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군대에서 부대내의 귀신이야기(?) 이라 하는 내용들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훈련소때에도 쓰레기 처리장에서 분리수거 하면서 문득 보았던 나뭇기둥이 나중에 알고보니
몇년 전에 한 훈련병이 자살해서 베어내버린 나무였단 사실을 조교에게 듣는다던지...
여튼 저희 부대는 강원도 철원이었습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한참 일직선으로 들어와야 정문이 있었고
부대는 산을 끼고 있어서 깊숙히 들어갈 수록 그야말로 DMZ 급의 숲이었습니다
안전상의 이유인지, 산 언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부대의 끝자락에 탄약고가 위치해있었죠
탄약고 초소는 그보다 더 높은 언저리, 부대 끝자락에 2층 높이로 위치해 있어서
아래로는 탄약고를 내려다 보고, 반대로는 부대 울타리 너머 정글과도 같은 철원의 숲과
비포장의 부대 외곽도로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너머에 민가 두채가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모습을 탄약고 초소에 올라가면 볼 수 있었는데
거리도 있었고, 나무에 가려져서 뭔가 하얀 벽이랑 황토 마당 같은게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닭도 키우고 하기에 평범한 민가구나 했는데, 선임에게 들어보니 그 중 하나는 오래된 무당 집이었습니다.
또 어김없이 새벽 근무를 나가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보통 겨울엔 추위를 견디느라 정신이 없는데, 여름의 뜨뜻찝찝한 밤에 초소에 있다보면
잠도 오고 이런 저런 생각도 납니다.
탄약고 쪽은 이런 밤에도 경계를 위해 조명이 있지만 산쪽, 특히 민가쪽은 칠흑 같은 깜깜함 속에
벌레소리 정도만 들려오죠. 사실 어둠을 틈타 침입하는 당직근무자의 순찰자의 발걸음을 잘 듣는 것이
야매로 근무를 스는 요령 아닙니까.
그런데 그 민가쪽 방향에서 무언가가 숲을 해치고 부대 쪽으로 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자는 선임을 깨우고 저희 둘은 깜깜한 숲속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웠죠
숲속의 잡음 사이로 비포장 도로를 걷는 신발 뒷굽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그 도로를 건너 부대 방향으로 오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소리가 애매하여 확신할 순 없었지만 숲속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걸 선임과 저는 느꼈습니다
그러더니 불빛이 비쳐 나이 든 시골 사람 복장을 한것 같은 사람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우선 불빛이 희미했고 아른아른 거리는 게 한쪽에 촛불을 논 것 같다고 저와 선임은 생각했죠
초소근무의 핵심은 보고이므로 지휘통제실에 보고를 했습니다. 당직병은 졸렸는지 그냥 알았다는 식이었죠
남녀 구분이 잘 가지 않았고, 우리는 아마 근처 무당일 것이다, 누군가가 제사를 올리는 것 아니냐 이런 정도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희미한 모습이 우두커니 가만히 서있다는 것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5분인지 15분인지 시간이 흐르자 미스테리한 느낌은 사라지고 약간 딱하고 슬프다는 생각도 들고, 궁금하기도 할 즈음
다시 한번 눈길을 돌려보니 어느새 2명 3명씩 사람들이 차차 늘어나더군요. 처음의 그 실루엣이 가장 불빛 가까이, 앞에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뒤로 부채꼴 모양으로 또 우두커니 서있기도 했습니다. 좀 해괴하다는 느낌이 들었 던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새벽 서너시 경에 사람들이 숲속 공터에서 촛불 놔두고 서있는 건 무슨 일이었는지... 정말 엑스파일 에피소드 같은 장면이었죠
나중엔 일고여덟명은 족히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는 꾸준히 보고를 했고, 당직실에서도 차차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알려드려야 충분히 흥미롭게 들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지통실에서 외곽도로로 순찰을 나가서야 알게 되었는데, 때는 2010년, 철원군 XXXX부대 뒷편의 마을 주민들은
아프리카 월드컵을 모여서 시청하던 중이었다 합니다...
주민들끼리 도란도란 모여서 분위기 내며 밖에서 티비 가져다가 국대 축구 응원하는 모습이
왜 저의 눈에는 어떤 음산한 분위기를 띈 종교적 모습으로 보였는지... 아직도 모를 일입니다 ㅋㅋ
재미없었다면 죄소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