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 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심재휘, 후회는 아름답다
나태한 천장을 향해 중얼거려보지만
보고 싶다는 말은 이제 관습적입니다
햇빛을 향해 몸을 뒤척이는 창가의 꽃들
그들의 맹목은 또 얼마나 무섭습니까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때늦은 후회밖에 없다 할지라도
후회는 늘 절실하므로 아름다웠습니다
어떤 그리움보다도
나의 후회 속에서 그대는 늘 보고싶었습니다
이정하, 절정
가끔 나는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나는, 너를 떠나보낼 때 너를 가장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별은 내게 있어 사랑의 절정이었다
가장 사랑하던 그 순간, 나는 너를 놓았다
내 사랑이 가장 부풀어 오르던 그 순간이, 나는 외려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잘가라. 나는 이제 그만 살게.
손을 흔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 너를 향한 마음이 절정이었음을
절정이 지난 다음엔 모든 게 다 내리막이었다
내 삶도, 나의 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