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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이기때문에 악행이 부풀려졌다?-헬터 스켈터와 소속의 문제.
게시물ID : phil_77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임오유
추천 : 0
조회수 : 68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2/17 01:18:12
승패의 관점을 가질 경우 결국 어떤 문제에 대한 입장은 소속의 문제로 귀결 됨.

역사가 승자의 논리로 씌여선 안된다는거. 물론 그렇게 하려는 노력은 하겠지만 그건 후대가 용인 하지 않을거임.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음.


과연 한 인간은, 일상적으로 어떤 소속의 일원이자 또 한가정의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국가와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소시민적으로 살아가며 자기 역할을 하는것만으로 충분한가? 

중국은 산아제한을 목적으로 불임 시술하려고 산모 잡으러 다녔슴. 얼마전까지. 그럼 가정이 국가꺼냐?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엄연히 국가는 가족을 관리함. 세금이나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또는 위의 경우처럼 불임시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인가의 일부로서 파악이 됨. 누군가에 의해.
 
한국사회에서 개인이란 가족관계나 학교 직장과 같은 소속에서 벗어나 설명하기가  어려운 구조임. 당장 가족관계 제외하고 민번 떼고 학교 직업 제외하고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고 해보자. 할말이 없슴.
 
집단속에서 움직이는 개인은 그 집단의 문화에 일상과 정체성을 지배받게 됨.



 
70~80년대 국민학생들은 `질서`라는 걸 체육시간에 했슴. 당시 초등학교 여선생들도 얼라들 줄세운다고 걷어차고 그랬슴. 선생도 군사훈련받고 자기가 교육받은거 그대로 한것임. 그 당시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제식훈련인 분열을 하게 했슴. 훈련병 시절, 단상 앞 줄서서 지나가면서 연대장에게 경례하는거 해봤을거임.  이런 행사가 80년대 후반까지 고등학교에서는 교련이라는 과목으로 계속되었슴.



자.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그 당시의 어른들은 무엇을 했을까? 
수동적인 침묵을 했을까 아니면 적극적인 동조를 했을까? 당시는 소위 `서슬퍼런 시대`라고 그랬슴. 오... 그럼 당연히 수동적인 침묵이었을거 같지?


 
얼마전에 사설 해병훈련소에서 고등학생들 굴리다가 바다에 빠뜨려죽였슴. 
이 익사라는 결과 이면에는 부모와 선생들의 군사문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1.동조와 2.침묵. 둘중 어느 것이 있었던거 같음?

30년전에 사람들은 침묵한게 아니야. 동조한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는거.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는거. 
즉, 미시적인 문화는 지금과 30년전이 달라진게 없다는거임.



조선시대와 일제에서부터 해방을 거치고 군사정권을 지나쳐가는 그간의 세월동안에도 여전히 변치않는 것들이 있었슴. 
그게 뭐냐면 개인을 규정하는 소속과 그것이 만든 미시적인 문화들임. 조선시대는 신분제였고, 여기서 유래한 학연, 선후배관계, 지역주의과 같은 공동체주의, 그리고 일제에서 업그레이드 된 전체주의문화, 그리고 70~80년대들어 이식된 군사문화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함.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갑을 관계가 유효한 것도, 갑에서 비롯한 불합리한 명령이 소속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이식되는 것도 개인의 소속이라는 미시적인 영역에서부터 출발함. 흔히 나이든 사람들이 하는 말로, '똑똑한 사람이 알아서 했겠지'같은 말이 있지? 절대 그렇지 않다는거. 
 
`악의 평범성`은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소속에서 비롯한 미시적인 문화에 깃들어 있슴. 단지 소속된 이들은 자신의 소속에서 시킨대로, 모나지 않게 남의 뒤통수만 보고 성실하게 사는거임. 특히 이를 국가에서 수행하는 것은 관료제를 통해서 가능함. 4대강 사업을 하는데 공무원 사회에서는 찍소리 나지 않는 것도(22조 말아먹고 수자원공사 빚더미, 그래놓고선 공기업 민영화하자고 함) 국가 기관의 대선개입같은 사안도 동일한 뿌리를 두고 있슴. 


그리고 그 보상은 소속감임. 소속감은 수동적인 침묵뿐아니라 적극적인 동조가 있기때문에 내면화되고 문화가 유지가 되는거임. 
개개인이 보지 못한 것은 자신의 소속이 규정한 자신의 정체성임. 



이 문제로 유명한거....헬터 스켈터를 찾아봐. 찰스 맨슨인가 하는 사람의 인종주의 종말교를 믿은 사람들의 이야기임. (이 인종주의적인 관점은 19세기 사회진화론의 산물임. 그리고 사회진화론-적자생존, 승자독식의 원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또 흔히 일상으로써 유통되는 개념이란거. 예:'네이버 나의 경쟁력')

'어떻게 찰스맨슨의 집단학살이라는 불합리한 명령을 종말교 사람들은 수긍했을까?' 애네들은 로만폴란스키 마누라를 죽임으로써 유명해짐.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기재에 촛점을 맞춰보자. 이 기재를 밝히기 위한 유명한 실험들이 있슴.
1.스탠퍼드감옥실험-소속의 문제와는 좀 접근방향이 다르고, 위계의 문제 쪽에 가까움.
2.밀그램 복종실험,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no=57439&table=panic 
3.론존스의 독재실험http://www.thewave.tk/  
4.긴것 찾기 실험등등...)
 
소속감은 집단에 소속된 개인들의 현실들을 구성하며 또 불안감을 벗어나게 해줌. 특히 사는 눈높이가 미시적인 사람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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