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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새벽녘 밤을 밝히는 시 - 쉰 여덟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lovestory_697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0
조회수 : 82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25 20:01:24
출처 : http://blog.naver.com/han_1957/140039437385
BGM 출처 : http://bgmstore.net/view/Obia6



1.gif

김사인, 노숙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2.gif

장석남,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3.gif

이병률, 장도열차




이번 어느 가을날

저는 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편지를 띄웠습니다

 

5시 59분에 도착했다가

6시 14분에 발차합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

겨울이 왔고

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

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







4.gif

김정희, 조문객



장대비가 쏟아지자
공터 웅덩이 앞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순식간 빗소리와 나만 남았다
발길이 어떤 힘에 이끌린 듯 웅덩이로 흘러갔다
물을 베고 누운 개
엉겨 붙은 잠 한 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생(生)을 놓지 못하는 미련줄인 듯
저승과 이승의 사잇문을 가로막은 사슬인 듯
놈의 모가지를 죄고 있는 붉은 노끈자락이
서늘했다
 
누가
저 젖은 날개를 말리고 딱딱해진 말들을 녹이고
유서 같은 어둠을 벗겨 불어터진 넋을 어루만져줄 것인가
 
시선을 거두어 돌아오는 길
노끈이 내 발목을 감으며 따라왔다
빗길이 온통 붉었다
그 위에
시구문(屍軀門)을 빠져나온
한 송이






5.gif

반칠환, 웃음의 힘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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