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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奇談 - 네번째 기이한 이야기 (1)
게시물ID : panic_618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곰
추천 : 22
조회수 : 1656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3/12/19 10:24:52
네 번째 기담은 조금 깁니다. 9화 완결이네요.
즐겁게 보시기를 기원합니다.
 
ps)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힘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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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은 벌써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자리에 누우면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신경이 곤두서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 간신히 잠이 들면 당연하다는 듯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이라 해야 할지 가위에 눌렸다고 해야 할지, 어느 순간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그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누워 있는 현경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은 푸른 기운이 도는 흰색이어서 핏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툭 튀어나올 듯한 두 눈만은 핏줄이 돋아 있어 시뻘건 색이었다. 그 여자를 볼 때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여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굳은 몸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현경에게 다가온 여자는 그녀를 가만히 보다가 손을 뻗어온다, 양손의 열 손가락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고, 이윽고 그녀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에 그녀는 항상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온 몸에 맥이 풀리고 식은땀만 줄줄 흘러내렸다. 끔찍한 밤의 연속이었다.
 
  일주일 전부터였다. 함께 자취하던 룸메이트가 방학을 하자마자 한 달 일정으로 배낭여행을 떠나 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방 두 개짜리 빌라에 혼자 남겨졌다. 마음 같아서야 그녀도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지만, 여름 계절학기를 신청해 두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달 이상을 혼자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날부터였다. 그녀가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혼자 잠을 자는 바람에 마음이 뒤숭숭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악몽은 끊이지 않고 매일 계속되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날로 초췌해졌다. 수업을 들을 때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하니 항상 하루 종일 몸이 노곤했다. 함께 계절학기를 듣는 친구들은 그녀가 요즘 아파 보인다면서 걱정하곤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현경은 은정에게 하룻밤 자고 가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은정은 전후사정도 물어보지 않고 시원스레 응낙했다. 그날 저녁, 계절학기를 마치고 두 여학생은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손에는 맥주캔과 수박이 든 비닐봉지까지 든 채였다. 은정과 함께 와서 그런지 평소에는 휑하고 음침해 보이던 거실조차도 오늘만은 밝아 보였다. 현경은 TV를 보면서 슬쩍 은정에게 기대었다.
 
  적당히 술이 들어가고 수다도 충분히 떨었을 무렵, 그녀는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나, 요즘 계속 악몽을 꿔.”
 
  “악몽?”
 
  은정은 반문하더니 곧 픽 하고 웃었다.
 
  “어쩐지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니, 그랬던 거구나?”
 
  “웃지 마. 난 심각해.”
 
  그녀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은정은 여전히 가벼운 말투였다.
 
  “그래. 얼마나 심각하면 그렇게까지 됐겠니. 보아하니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인데, 대체 어떤 꿈이야?”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꿈을 설명했다. 얼굴이 하얀 여자. 여자의 퀭한 눈.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몸. 천천히 다가오는 여자의 손가락.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기까지. 은정은 내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더니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런 꿈을 일주일 내내 꿨다는 거야? 집에 귀신이라도 붙은 거 아닐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현경은 질색을 하며 팔을 내저었다.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이 집에서 살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 않은가. 그러니 아무래도 혼자가 되다 보니 마음이 불안해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은정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뼉을 딱 쳤다.
 
  “오늘 자 보면 알겠지. 어쨌거나 잘됐네. 진짜 귀신이면 나도 볼 수 있을 테고, 네 말대로 혼자라서 신경이 곤두서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면 오늘은 나도 같이 있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을 테고. 그렇지 않아?”
 
  귀신을 보는 게 뭐가 잘됐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은정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마음이 약간은 놓였다. 그러나 무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은정을 보며 어렴풋하게나마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불안감은 한참을 놀다가 마침내 불을 끄고 둘이 나란히 누워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날 밤 그녀는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고 깊이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눈을 뜨면서 그녀는 매우 상쾌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푹 잤더니 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상체를 일으킨 후 늘어져라 하품을 하고는 옆의 고마운 친구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은정은 옆에 누워있지 않았다. 대신 공중에 떠서 앞뒤로 조금씩 흔들거리는 다리 두 개가 보였다.
 
  은정은 천장의 형광등에 목을 매단 채 죽어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리자 의자에 앉아 있던 해원은 눈을 떴다. 따뜻한 초여름 날씨에 자신도 모르게 잠깐 졸았던 모양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보고 있던 만화책은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지만 모르는 번호였다. 아마도 의뢰전화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예, 이해원입니다.”
 
  “아, 여보세요? 저어......”
 
  마흔에서 쉰 사이쯤 될 것 같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었고 주저하는 빛이 역력했다. 해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는 차분한 말투로 남자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냈다. 그리고 간혹 짧게 질문을 던졌다. 세 시간 후에 만날 약속을 잡은 후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들어온 의뢰였다.
 
  시계를 보고 대강 일정을 정한 후 그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색이 반쯤 바랜 얼룩무늬 반바지를 둘둘 말아 빨래통에 벗어던졌다. 곧이어 속옷도 그곳으로 날아갔다. 그는 잠시 서서 맨몸으로 거울을 쳐다보았다. 평범한 팔다리에 평범한 몸. 요즘은 매끈한 근육질 몸매가 유행이라는데, 세간의 유행과는 달리 그의 배에는 복근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나마 불룩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는 칫솔을 찾아 들었다. 치약을 듬뿍 발라 양치질을 한 후 세이빙 폼을 바르고 정성들여 면도를 했다. 최근에 의뢰인을 만날 일이 없어서 너무나 한가한 나머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수염이 꽤 많이 자란 상태였다. 면도기가 슥슥 소리를 내며 몇 차례 턱을 왕복하자 수염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거울을 살펴보던 해원은 만족한 듯 씩 웃었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머리부터 물을 뒤집어쓴 후 머리를 감고 일사천리로 몸까지 씻는 것으로 샤워는 끝이었다. 몸을 닦고 나온 해원은 옷장을 열고 옷을 꺼냈다. 흰색 민무늬 와이셔츠와 검은 색 정장. 양말도 넥타이도 검은색이었다. 일하러 나갈 때 해원은 항상 같은 옷차림이었다. 간혹 그의 친구들이 똑같은 양복만 몇 벌씩 사다 놓는 게 아니냐고 놀리곤 했지만, 그가 정말로 같은 양복을 네 벌이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십중팔구 꽤 놀랄 터였다.
 
  옷을 모두 갖추어 입은 해원은 책상 위에 놓인 펜을 들어 슈트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얇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지갑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집을 나섰다. 우선 밥부터 먹을 시간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뱃속에 햄버거와 튀긴 감자를 밀어 넣은 해원은 스마트폰을 꺼내 지난 기사를 찾아보았다. 주요 일간지 가운데 한 곳, 그리고 인터넷 뉴스 여섯 군데에서 사회면의 짤막한 기사로 의뢰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단순한 자살이라면 요즘 같은 세상에 신문에 날 리가 없었지만, 친구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상황에서 여대생이 목을 매단 나름 엽기적인 사건이라 그런지 기자 한둘이 관심을 가진 모양이었다. 기사는 모두 대동소이하게 짤막하고 간단했지만 대강의 내용은 파악할 수 있었다. 죽은 학생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몸에도 폭행당하거나 저항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경찰은 우선 옆에서 자고 있었던 친구를 주요 참고인으로 조사했지만 곧 무혐의로 풀려난 모양이었다. 그게 닷새 전에 벌어진 일의 대강이었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고 후속 기사도 올라온 것이 없었다.
 
  해원은 기사를 간략하게 메모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현장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겨우 이 정도였다. 일단 의뢰인을 만나 설명을 듣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 살펴본 후에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올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편견이나 주관성이 가능한 한 배제된 상황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하는 일의 특성상, 의뢰인들은 다들 몹시도 거대한 편견과 섣부른 판단, 그리고 객관성의 결여가 뒤섞여 엉망진창이 된 설명을 늘어놓기 마련이었다. 물론 고의야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이야기들은 종종 해원을 엉뚱한 길로 들어서게 하곤 했다.
 
  해원은 버릇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패스트푸드점은 한적했다. 그의 주변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뒤로 힘껏 기지개를 편 후 왼손으로 입을 슬쩍 가리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오랜만의 의뢰인데, 뭔가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네.”
 
  “그러네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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