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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대자보를 거부할 자유에 대한 글
게시물ID : sisa_4673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쳇2
추천 : 2
조회수 : 31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2/19 15:22:40
안녕하세요. 이제야 대화라는 걸 해보는군요. 쉽게 xxx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아이디가 xxx이시니까 성급한 일반화로 그냥 xxx님이라 부르겠습니다. xxx님께서 글에서 댓글로 밝히신 의견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xxx씨께서 플렌카드와 각종 홍보글, 대자보 게시글 때문에 평소 짜증이 많이 나셨다는 점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타인의 대자보나 게시글, 홍보물을 훼손한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건 본인도 잘 알고 계실거에요. 특히나 그러한 감정들이 특정한 정치적 지향을 담은 게시글에만 향한다는 점을요.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게시자가 게시 후에 자진 철거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남은 행태는 충분히, 반성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잠시 옛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제가 2012년에 총학생회장을 하기 전에, 2010년 총학생회에서 집행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학내가 넘쳐나는 홍보물 때문에 너무 지저분하니 게시판을 철거하고 LED판을 세우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예산을 학교에서 지불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를 가지고 당시 학생 대표자들이 많은 논의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대표자가 아니라 집행부라서 회의를 속기만 하고 의사결정권은 없었습니다.)

그 때, 결과적으로 학교의 제안을 거부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지금 당장 넘쳐나는 홍보물들이 지저분하고 뵈기 싫고, 만일 LED판으로 바꾸면 학교도 이쁘고 학생회도 덕지덕지 유인물 붙이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컴터 앞에서 타자기 몇 번 치면 편하고 그러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표자들은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학교와 입장이 맞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입을 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존재들, 가령 지금과 같이 청소노동자들, 성소수자들, 소수의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입을 열고자 한다면?

학교에서 LED판을 통제한다면, 그 때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이것이 결국은 학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항들에 침묵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듣기 싫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권리를 넘어 듣기 싫은 사람의 말을 침묵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xxx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왜 내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가 파시즘이냐고 질문을 합니까? 내 앞길 가기도 힘든데..”라고요.. 파시즘이 바로 그렇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내 앞길 가기 힘들어 모두가 민주주의를 외면했을 때 파시즘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파시즘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바로 이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힘들어 하며 사는 사회적 소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그것이 흑인을 의미했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이 노예를 의미했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이 여성을 의미했었고, 과거에는 그것이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노동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종교의 자유를 주창하는자, 사상의 자유를 의미하는자, 권력을 비판하는 자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xxx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플래카드나 대자보만 해놓고 가버리면, 완전히 싸논 X같은 느낌입니다. (그런 대자보를 찢어버린것도, 기분나쁜사람이 소통하는 한 방법이닙니까?)저기 욕먹은 정치인들이 선거테이프를 사람들도 안세워놓고, 계속 스피커로 켜봐요. 지나가는 사람이 발로 차던지, 전원을 끄던지 그렇잖겠습니까?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런 대자보를 내가 다니는 학교에다가 설치한거는 무슨주의원칙이라면 표현을 말하는겁니까? 앞에 내가 보기싫은 표현이 있어서 찢어버린것도 나의 의사를 표현안거 아니겠어요? (뭐 대통령선거때 그랬다가면 구치소가겠지만) 사회적소수자의 외침을 허용치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욕 먹는 정치인과 인기있는 정치인이 똑같은 발언의 기회를 가지는 것, 그 말의 무게가 똑같이 한 표에 해당하고, 그들이 똑같이 발언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표현과 보기 싫은 표현이 동등하게 지면에 실리게 하는 것, 자신이 듣고 싶은 말과 자신이 듣기 싫은 말이 동등하게 발언기회를 얻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동등하게 발언의 자유가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집단과 자신이 싫어하는 집단이 동등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지난 수천년간 인류가 피를 흘리면서 얻어온 타인과 함께 살 수 있게 만드는 공존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 합니다.

그 권리 속에는 자신이 듣기 싫은 발언은 자신이 듣지 않을 권리는 있으나, 그 발언을 중단시킬 권리는 없습니다. 그 권리 속에는 자신이 읽기 싫은 대자보는 읽지 않을 권리가 있으나 자신이 읽기 싫은 대자보를 철거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 권리 속에는 자신이 보기 싫은 표현은 보지 않을 권리가 있으나, 자신이 보기 싫은 표현을 제거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할 때, 민주주의는 한 순간 중우주의로도 변하고, 파시즘으로도 변하고, 전체주의로도 변합니다. 그것 자체가 사회적 소수자의 외침을 허용하지 않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자리에서 발언을 하고, 설명을 하고, 사정을 하고, 대화를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유인물이 있고, 신문이 있고, 언론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집회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고 합니다. 사상의 자유라 합니다.

이것이 싸다 만 x 같아서, 기분이 x 같아서, 더러워서, 그래서 제한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 우리는 그것을 야만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억압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어제였죠. 5월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프로축구 AS로마와 AS밀란의 경기 중 관중석에서 인종차별적인 노래가 나오자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AS로마의 팬들이 AS밀란의 흑인 선수인 케빈 프린스 보아텡과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인종차별적 야유를 퍼부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기가 있기 전에도, 흑인 선수들에 대한 백인들의 야유는 언제나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 흑인 선수가 경기 도중 자신을 야유하는 관중석을 향해 축구공을 날리고 경기장을 퇴장하고, 그 팀의 선수들이 동반 퇴장함에 따라 이탈리아 프로축구는, 관객이라 할지라도 인종차별적 응원을 할 경우 경기를 중단하고, 해당 팀에 벌금을 물리는 룰을 만들게 됩니다. AS로마는 자신들의 팬의 행동으로 인해 향후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되는 첫 번째 사례가 되었구요.

왜 이탈리아 프로축구는 관객들이 흑인을 조롱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들의 자유를 금지했을까요? 그것인 실은 그것이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고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향할 때, 그것은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xxx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대자보, 그런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동아리들, 싸고 몇주동안 치우지 않는 대자보를 보면, 정말 찢어버리고 내가 뜯어내버리고 싶은 그런 감정이 듭니다.
열람실에 어떤 개새끼가 내 자리에 커피 쏟아놓고 의자에 껌 뱉어 놓았을때 흥분감이죠.“

그 감정, 파토스를 이겨내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인류는 수 천년을 투자했습니다. 수 차례의 세계대전도 있었고, 노예제의 역사, 억압의 역사, 성차별의 역사, 반공의 역사, 학살의 역사들을 거치면서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인권을 만들었고, 사회를 구성했습니다. 당신이 그 앞에서 “왜 나에게 민주주의를 강요하는가”라고 물으셔도, 그것은 당신의 행동을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않아요. 그것은 당신이 탑을 갈지 미드를 갈지, 봇을 갈지 정글을 갈지 당신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기호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게임 자체를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누군가 당신만의 보금자리에 커피를 쏟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아무도 당신의 자리에 커피를 쏟지 않았어요.. 커피를 쏟은 건 당신입니다.

퍼온 출처 : 
http://m.clien.net/cs3/board?bo_style=view&bo_table=park&page=1&wr_id=2605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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