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군이었다"는 한 탈북자의 소리를 종합편성케이블 방송은 그대로 내보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라는 사이트에선 계엄군에 의해 학살당한 광주시민의 주검을 '홍어'로 빗대는 반인륜 글이 버젓이 올랐다. 이성을 잃은 극악한 5.18 폄훼 행태에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는 격노했다.
그런데 이들이 실성한 소리를 맘껏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한국 사회 어떤 구조가 국가기념일인 된 5.18과 그 희생자들의 주검을 방송과 인터넷 글을 통해 맘껏 폄훼할 수 있게 했을까.
장휘국 광주광역시 교육감은 "그래서 교육이 문제"라고 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면 상식 이하의 발언에 한 사회가 동요하거나 하는 피해가 적었을 텐데 교육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진단했다.
"교육부가 뉴라이트 학자들 요구 들어주는 건 문제"
<오마이뉴스>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장 교육감은 "광주 망월동에 있는 국립 5.18묘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13일 비가 내릴 것이란 일기예보에 장소를 광주광역시 교육청으로 옮기긴 했지만 그는 5.18폄훼와 왜곡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교과부가 검정한 일부 역사교과서에선 아예 5.18이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른 교과서에선 겨우 서너 줄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고요. 5.18에 대한 계기교육(공식적인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을 가르치는 수업)조차 광주를 빼면 경기도와 강원, 전북과 전남 교육청이 권고하고 있는 정도죠. 다른 지역에서 선생님들이 개별적으로 나서서 5.18계기교육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극우파들이 망언을 하거나 이번처럼 5.18폄훼방송 등이 불거지면 청소년 역사의식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에게 역사교육 하려하면 대학입시에도 안 나오는 공부 왜 하냐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사를 대학시험 과목과 채용시험 과목으로 채택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절박하고 중요합니다."
광주에선 '5.18의 세계화'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선 '518의 전국화'조차 되지 않은 상태고, 심지어 국가기념일에 대한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 장 교육감은 "정부, 특히 교육부가 5.18을 비롯한 민주주의 발전 역사를 왜곡하는 일련의 정책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통탄했다.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들이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근대화에 기여했다' '안중근 의사의 행위는 의거가 아닌 테러다' '5.16은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다'고 주장하는 토론회, 학술대회 등을 계속 해왔어요. 또 이미 검정 통과된 교과서를 '좌편향 교과서'라고 이념공세를 계속해서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엔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이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고, 심지어 교육부 검정 통과한 교과서를 강제로 집필자 동의 없이 수정한 예도 있었습니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요구를 하면 교육부가 슬그머니 들어주는 식입니다.
이 와중에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는 5.16이 쿠데타냐는 질문에 애매한 답변을 하더니 광주 일선 교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5.18관련 질문을 받고는 '국가기념일인 5.18이 정치적 이슈'라는 등 애매하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교육부가 올바른 역사교육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장 교육감은 '미네르바 사건'을 언급하며 "국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평에도 그렇게 강력하게 대처하던 정부가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훼손하는 역사왜곡과 폄훼 행위에 대해서는 희한하게 너그럽게 대한다"고 꼬집었다.
"5.18은 아직 헌법 전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3.1정신과 4.19민주혁명 정신을 계승하는 민주주의 정통성을 잇는 소중한 역사입니다. 이를 왜곡하고 경시하는 행태에 대해서 정부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특히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기준을 반드시 명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잘못된 주장들이 검정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수능 시험에 안 나온다고 외면하는 역사, 누가 알아주겠나"
장 교육감은 "우리 역사에 대해 알아야 우리 아이들이 자기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며 "심지어 광주 교육계 일부 인사들조차 아이들에게 역사 가르치는 일을 '공부는 안 하고 데모를 가르친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꺼려하는데 다른 지역은 오죽 하겠냐"고 안타까워했다.
장 교육감은 "5.18을 비롯한 우리나라 민주 발전 과정에 대한 계기교육을 일선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계속 권고하고 관련 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할 것"이라며 "특히 우리 역사의 정통성에 대한 인식을 초중등학교 교장들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취지에서 동북 3성과 연해주에서 연수를 진행하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5.18민주정신에 대한 연수 역시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장 교육감은 "학부모들에게 간곡한 호소의 말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의 '간곡한 호소'는 광주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절규' 같았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되라고 말합니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은 무고하게 사람을 죽이는 계엄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불의를 보고 잘못됐다며 싸운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계엄군에 의해 고립된 그 와중에도 부상당한 시민에게 헌혈해주고 주먹밥을 서로 나눠 먹었습니다. 이보다 착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교육은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수능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외면해버리는 우리 역사를 어느 나라 사람이 대신 알아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