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유머 눈팅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공포게시판에서 베오베로 이동한 게시글, '택시기사가 준 음식 먹지 마세요'란 글을 읽고 씁니다.
댓글 몇 개 달았던 것 제외하면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글을 남겨 봅니다.
전 음슴체란 것도 오유에서 처음 알았네요.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그냥 쓰던 대로 씁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앞서 언급한 게시글에서 얘기된 바로 그 지역, 대전에서
법인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성입니다.
더욱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 새벽 3시 즈음에 승객에게 껌을 건네 준 일이 있기도 합니다.
용문동 아이누리 아파트 앞 대로변에서 제 차를 세운 남성 1명, 여성 2명의 손님들.
여성 1명이 속이 안 좋아서 오바이트를 한다고, 죄송하다 다른 차를 이용하겠다고 남성 손님이 말했지만,
워낙 손님 구경하기 힘든 시간인지라 전 괜찮다, 잠시 대기하겠다 했습니다.
4-5분이 흐르고 곧 그 3명의 일행은 제 차에 탑승을 했습니다.
선화동 대전 세무서 네거리를 거쳐 용전동 전화국 쪽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동서로 네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속이 안 좋을 여성 손님 1명께
껌이라도 씹으면 속이 좀 진정될 겁니다 하면서 자일리톨 껌 1개를 건넸습니다.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그 여성 손님을 대신해서 남성 손님이 그럼 내가 씹을게 하며 받아드시더군요.
여성 손님 2명을 대전 세무서 네거리에 내려드리고 용전동 성당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남성 손님을 내려드렸습니다.
껌종이는 남겨 두고 내리셨습니다.
이 얘기를 왜 늘어놓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냥 대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마침 나도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저 스스로 깜짝 놀랐나 봐요.
아...며칠 전에는 2년 동안 수천 만원을 챙긴 보험사기꾼 택시기사 얘기가 나오던데
이번엔 또 납치 강도, 성폭행 미수범 얘기인가...
정말 이게 아닌데...또 이렇게 택시 기사는 도매급으로 욕 먹어야 하는구나...싶었습니다.
전 정말로 나름의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다고 해서 건넨 껌인데
어떤 손님들에게는 그 순간이 오히려 공포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전 가끔 마트에 가서 큰 사탕 봉지나 낱개 포장된 과자 같은 것을 삽니다.
왜 커피집에 가면 곁들이로 내주는 과자 있잖아요.
끼니를 놓쳤을 때 그런 거 한 입 먹으면 잠깐이라도 힘을 낼 수 있거든요.
그거 혼자 먹기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개 건네죠. 손님에게.
아이들이 차 안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며 시끌시끌할 때에도 하나씩 줍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까 조용히 앉아 있어주면 과자 하나씩 줄게 하면서요.
물론 포장지는 나중에 제가 치울 때가 많습니다. 그건 중요치 않아요.
시간이 갈수록 택시기사 일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요새는 임단협 시즌이라 노사간에도, 노노간에도 갈등이 심합니다.
오늘도 초저녁부터 일도 하지 못 하고 동료들과 함께 앉아 노사협상을 어찌 해야 성공하나 고민하다가
이제사 막 들어와 세수하고 자리에 누워 오유를 들여다 보니 그런 글이 있더군요.
도대체가 어디서 삶의 동력을 찾아야 할지 막막해지기만 합니다.
깊고 긴 터널 안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택시 관련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들, 그 분노 가득한 글을 읽을 때마다
누군가 바로 제 앞에서 저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것마냥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오늘은 그 이상입니다.
술도 한 잔 마셨더니 이래저래 힘들기만 하네요.
택시기사 노릇, 이제 그만 해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