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조선족은 누가 조선족이라는 거야, 새끼가. 귓구녕이 어떻게 됐나.”
녀석이 전화를 끊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가 불을 뿜고, 곧 매캐한 연기가 방에 가득 차기 시작한다. 나는 타들어가는 녀석의 손끝을 보았다. 오랜 흡연으로 인해 녀석의 손가락은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녀석은 저 손으로 코를 후비고, 쌈을 싸먹고, 오줌을 눈 다음에 아무렇지 않게 애인을 만나러 갈 것이다. 겨울엔 길거리 음식이 그만이라며 호떡이나 붕어빵을 사서는, 하나 꺼내 애인 손에 쥐어줄 테지. 그러곤 호색한답게 애인을 모텔로 데려가서 몸 이곳저곳을 탐색할 것이다. 저 손으로. 누렇고, 니코틴과 각종 세균에 찌든 손으로. 어쩐지 구역질이 치밀었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담배를 든 손으로 편의점 봉지를 툭 밀었다. 힘없이 주르륵 밀려난 봉지가 속에 든 것을 토해냈다. 삼각김밥, 샌드위치, 담배 두 갑, 생수병이 책상 위를 어수선하게 뒤덮었다. 나는 녀석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분명 저 손으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을 테지.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조선족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 좋지, 뭐. 정체가 들통 날 가능성도 줄어들고.”
“정체는 무슨. 네가 슈퍼악당이라도 되냐? 보이스피싱으로 등쳐먹는 주제에. 것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이번 달 실적도 네가 꼴찌인거 아냐? 너 그러다가 끽, 모가지 잘려, 임마.”
총 여섯 명이 한 팀이었는데, 그 중에 양심을 가진 인간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실적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보험 왕을 뽑는 것도, 영업 왕을 뽑는 것도 아닌데 실적 운운하다니 우습지만, 사기도 엄연한 일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경쟁심리를 자극해 사기를 독려한다나 뭐라나. 즉, 사기를 더 열심히 치게 하기 위해서 사기꾼들끼리 경쟁을 붙인단 뜻이었다.
나는 이곳이 한심하다 못해 진저리날 지경이었다. 다단계 회사에 얽혀서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오지만 않았다면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았을 인간들이다.
좁아터진 지하방에서 연달아 연기가 피어오르자, 기침이 쏟아졌다. 녀석은 나를 한심한 눈으로 보았다. 녀석의 입에선 몇 개비 째인지 모를 담배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앞에 놓인 재떨이는 비우지 않아 담배꽁초와 침이 한데 섞여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보지 마, 시팔. 쓰레기 주제에 누굴 쓰레기 취급하는 거야.
“너 아까부터 뭘 꼬라 보냐. 콱 뒈질라고.”
“그냥…… 그러니까 어떤 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좋을까……그 생각하던 중이었어.”
“변명하고는.”
나는 전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누르기 시작했다. 열자리의 숫자를 누르자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저…….”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누구시죠?!]
“…….”
“왜 그래?”
녀석이 소리를 낮추며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화기를 가리켰다. 전화 받은 사람 제정신이 아닌가봐. 우리가 속삭이는 도중에도 상대방은 목청이 터져라 ‘여보세요’를 연발하고 있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게, 그 집 아드님을 데리고 있습니다아…….”
타이밍 좋게 스피커에서 어린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이 파일을 재생시킨 것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까무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성하요?! 우리 성하?! 성하 너, 거기 있어?!]
내가 실적이 적다곤 해도, 이런 종류의 전화를 수없이 해본 경험으로 미뤄보아 이러한 반응은 정상적이지 않다.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중년 여자의 울음소리에, 녀석도 얼굴을 굳혔다.
요즘은 보이스피싱 예방법이 널리 퍼져있어서 그런지, 댁의 아드님을 납치 했다는 전화를 걸어도 당황하긴 커녕 오히려 맞받아쳤다. 제발 좀 데려가라는 둥, 휴가 나왔으면 집으로 기어들어올 것이지 어딜 싸돌아다니냐는 둥, 내가 그 아드님이라는 둥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당황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보이스피싱에도 엄연한 급이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임기응변에도 능수능란해서 주로 복잡한 은행 쪽 일을 맡았다. 서열이 제일 낮은 나는 가장 기초적인 ‘납치’ 설정을 도맡았는데, 걸려드는 사람은 드물어도 한번 물었다 하면 한몫 크게 잡는 방법이기도 했다. 성공률이 희박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거, 아무래도 진짜 사건이 터진 집에 전화를 건 모양이다.
아들이 실종됐거나,
진짜로 납치된 집에.
나는 녀석에게 눈으로 물었다. 어떡해? 녀석은 눈을 부라리며, 뭘 어떡해? 밀어 붙여야지, 라고 대답했다.
[저기요, 여보세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네?! 얼마가 필요해요. 달라는 대로 주겠으니 우리 애만큼은……!]
녀석이 손가락을 세 개 펴서 흔들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3억……. 내일까지 3억을 준비해놓으세요. 내일 이 시간에 전화하겠습니다. 끊습니다.”
전화를 끊자 정적이 찾아왔다.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설정되어 있는 전화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전화가 올 리 없음에도 곧 전화벨이 울릴 것 같아서였다.
녀석이 갑자기 내 뒤통수를 딱 소리가 나게 후려쳤다.
“3억? 와, 새끼 장난 아니네.”
“네가 3억이라며.”
“나는 삼천 말한 거지. 영화를 너무 본거 아니냐. 평범한 집구석에서 3억을 어떻게 끌어 써. 상식적으로 좀 생각해라.”
“그럼 다시 전화해서…….”
“모양 빠지게 “3억이 아니라 3천만원만 준비해주십쇼. 3억은 가계에 부담되는 액수지 않습니까. 하하” 그럴까? 줄 마음도 사라지겠다.”
“그럼 어떡해?”
“냅둬봐. 내일 전화해서 정말 줄 것 같으면 먹는 거고. 그리고…….”
“그리고?”
“이 생활도 당분간 관두는 거지.”
녀석이 눈을 빛내며, “3억을 반으로 나누면 1억 5천이다. 복권 1등 된 거랑 비슷해.”라고 말했다. 나는 머리나 식히겠다며 당구장으로 몰려간 나머지 녀석들이 언제 들이닥칠까 두려웠다. 녀석은 그런 내 걱정을 빤히 아는 듯이 말했다.
“이 일은 당연히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는 거다. 너는 실적 부족으로 잘리는 거고, 나는…… 시팔, 될 대로 되라지. 나도 대가리 클 만큼 컸다 이거야. 내가 내 발로 나가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안 그래? 너도 인생 새 출발 해야지. 듣기론 빚이 꽤 된다며?”
과연 실적 1위 다운 실력이었다. 녀석은 말로 나를 살살 녹였다.
학교도 다시 다녀야지.
집에도 내려가고.
곧 명절인데, 부모님 잘 지내시는지 봐야지.
암, 네가 장남인데.
액수만 좀 클 뿐이지, 어차피 똑같은 사기야.
저 새끼들 알면 6등분해야 되지, 나눈다고 해도 네 몫도 똑같이 나눠줄 것 같아?
나나 되니까 챙겨주는 거지…….
그야말로 뱀 같은 혀 놀림이었다. 혀를 낼름 거릴 때마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녀석이 아가리를 쫙 벌리고 달려들어 내 속의 양심까지 꿀꺽 집어 삼켰다.
그래, 로또 맞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급하게 아들의 이름을 부르던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똑같은 사기다. 납치범을 대신해 돈을 뜯어내는 것도 사기고, 코흘리개 꼬마를 속여서 푼돈 몇 푼 뜯어내는 것도 사기야. 시팔, 그래 나는 사기꾼이다. 사기꾼. 보이스피싱이나 해서 사람들 주머니 털어먹는 쓰레기. 아무리 고결한 척 녀석들을 욕해봤자, 나도 ‘사기꾼호’에 탄 선원인 건 똑같았다.
녀석은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아무것도 못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대박 터트리네.” 하며 히죽거렸다.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녀석은 나를 데리고 밤새 유흥가를 돌아다녔다. 고기, 그것도 한우를 사주고, 양주도 사주고, 마지막으론 안마방이란 곳에 가서, 아가씨가 해주는 서비스도 받아보았다. 돈은 물론 녀석이 지불했다. 나는 만취 상태여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이미 일이 끝난 후였다. 사실대로 고했다간 또 병신 취급이나 받을 것 같아서, 황홀한 척 연기하며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그놈의 담배를 줄기차게 피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까지 장사하는 집에서 한잔 더 하자는 말에는, 혼자 돈을 꿀꺽 하려고 나를 급성 알콜중독으로 죽이려는 속셈인가 의심해야했다. 다행히 나에겐 딱 두 잔을 권했을 뿐이다. 그러곤 혼자서 두병을 더 비웠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이미 해가 환하게 뜬 후였다. 늦은 오후에야 일어나 아지트로 향했다. 녀석은 멀쩡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술독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난 몰골이었는데 말이다. 다른 녀석들은 이 시간이면 점심밥을 먹고 당구장이나 피씨방으로 가서 몇 시간씩 있다가 왔다.
고로 어제처럼 다른 방해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이 신호를 보냈고, 나는 어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 번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돈은 준비했어요. 성하는 어떻게 지내고 있죠? 밤새 잘 있었나요? 우리 성하 목소리 좀 들려주세요!]
“애는 잘 있는데요. 그래요, 성하요. 걔는 잘 있어요. 돈만 받으면 돌려보내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구요.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니에요.”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드디어 사기꾼 인생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었던 건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녀석이 옆에서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공원옆에 주차장 아시죠. 거기로 혼자만 오세요.”
[저희 남편이]
“아뇨. 아줌마가 들고 오세요. 아저씨가 괜히 오버하면 일 틀어지니까. 아줌마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것 같으니까, 믿을 수 있겠죠? 괜히 쓸데없는 일 벌이지 말자구요. 아시겠죠. 앞으로 한 시간이에요. 한 시간에서 딱 십분 더 기다리고 갈 겁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배를 잡고 끅끅대며 웃고 있던 녀석이 나를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다. 정말이지 미친놈처럼 보였다. 영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악당 같았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나도 녀석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이에나처럼 낮게 킬킬대며 굴러다녔다. 인간망종이라도 되는 양.
*
아줌마는 정말로 혼자 나타났다. 007가방은 들고 있지 않았다. 배낭가방을 등에 메고,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여행용 캐리어를 하나 끌고 나왔다. 돈은 어디에 들어있는 거지? 3억이라는 돈이 등 가방에 다 들어갈 턱이 없고, 그렇다면 손에 들고 있는 캐리어에 들어있다는 건데 가방은 왜 가지고 온 거지?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녀석이 차에서 내리라고 눈짓했다. 그래도 자기가 서열이 높다고 나한테 위험한 일을 시키는 거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도청장치라도 있으면…… 경찰이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저 아줌마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생각해보면, 우리 경찰에 신고하지 말란 소리도 안했잖아.”
“이상하긴, 네가 더 이상하다. 우리는 저 가방만 뺏어가지고 튀면 끝이야.”
“그치만.”
“겁나면 같이 가던가.”
“누가……누가, 겁난다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그리고 역동적으로 뛰는 것이 느껴졌다. 새벽까지 퍼 마신 술의 영향인지, 녀석의 말대로 겁이 나서인지 모르겠다. 아스팔트가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하늘이 거꾸로 뒤집혔다. 주차장에 드문드문 세워진 차들이 일그러지고, 어떤 놈은 돼지로, 어떤 놈은 기린으로 변해서 어기적거리며 걸어 다녔다.
아, 정말 미쳐 가는가보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몇 발자국 떨어진 차 안에 녀석이 앉아서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녀석이 눈을 부라린다. 빨리 가지 않고 뭐하냐고. 나는 머리를 털며 망상도 함께 떨어져 나가기를 바랐다. 감았던 눈을 뜨고 앞을 보았을 때, 아줌마가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차장에 서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게 생긴 아줌마였다. 40대 초반, 퉁퉁한 몸매, 급하게 나오느라 화장기 하나 없는 칙칙하고 늘어진 피부. 원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 무서워서. 내가. 녀석이 아닌 내가 무서워서 말이다.
나는 느슨해진 마스크 끈을 바짝 잡아당겼다. 마스크 안이 뜨거운 입김으로 축축하게 젖어갔다. 뜨겁고 질척하다. 눈앞이 어지럽다. 팔 다리가 흐느적거린다.
손을 내밀자 아줌마가 캐리어를 건넸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채 가방을 주고받았다. 나는 정신없이 걸었다. 캐리어가 너무나 무거웠다. 3억의 돈이란 게 이렇게 무거웠단 말인가. 하기야, 살면서 현금 3억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게 맞는 무게인지 가늠도 할 수 없다. 정신없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 보았다. 아줌마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얼굴이 새하얗다.
이마를 뒤덮은 식은땀이 이곳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입술만은 새빨갛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축인다. 혀를 집어넣는 입모양이 기괴하다.
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서서 내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징그러운 여자다. 무서워. 전화 속의 그 여자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아들을 찾아 울부짖던 모성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공원을 빠져 나와 무작정 달렸다.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러서야 한숨 돌리고 차를 세웠다. 녀석은 이상하게 말이 없다. 녀석도 겁을 먹은 게 분명하다. 그동안 큰 사기를 몇 번 쳤다곤 해도, 모두 전화상으로 이뤄진 범죄였을 것이다. 직접 현장에서 돈을 뺏어온 적은 없었으니 긴장할 법도 하다.
결국 내가 먼저 안달이 나서, “열어볼까?”라고 물었다.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지나다니는 차가 너무 많아. 이 근처에 조용한 모텔이 있어. 차로 5분이면 돼. 그리로 가.”
애인을 데리고 전국을 떠돌며 모텔탐방을 했다더니, 직진해서 5분쯤 가자 녀석의 말대로 한적해 보이는 모텔이 나타났다. 데스크 직원은 여행가방을 든 나를 보곤 며칠 묵으실 건가요, 하고 사무적으로 물었다. 나는 하룻밤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질문 없이 열쇠를 내밀었다. 녀석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므로, 나 혼자 온 줄 안 모양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녀석한테 호수를 알려주었다. 이제 막 두 개비 째 담배에 불을 붙였으니, 니코틴을 충전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는 먼저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조금 지나자 노크 소리가 났다. 녀석이었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그 아줌마 아들이 어딨는지 찾지도 않더라. 돈을 주면, 아들을 내놓으라고 해야 되잖아. 전화했을 때는 그렇게 난리더니…….”
“그래서?”
“뭐?”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우리가 원하던 걸 손에 넣었으면 끝인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왠지 느낌이.”
“잔소리 말고 가방인 열어봐. 맞는지 봐야지.”
안에 신문지 뭉치나 벽돌 같은 걸 넣은 거 아니야? 경찰이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거고. 그래서 아줌마가 그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던 건가. 나는 캐리어를 열려다가 말고 이마를 쳤다.
“아! 비밀번호도 안 물어봤다.”
녀석은 한심스럽게 나를 보더니, “0000으로 해봐.”했다. 보통 무언가를 처음 샀을 때 설정되어 있는 비밀번호였다. 나는 숫자를 모두 0으로 맞추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어지는 소리가 났다.
“진짜네! 이것 봐, 열렸어!”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녀석을 돌아봤다. 그런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갔나? 하지만 화장실의 한쪽 면은 유리라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넓지도 않은 모텔 방에 숨을 장소가 어디 있다고. 아니, 숨을 장소보다는 숨을 이유가 없다.
“야. 장난치지 말고 나와.”
나는 캐리어의 손잡이를 쥔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득 굳게 닫힌 출입문이 보였다. 창문은 꽉 닫힌 채로 블라인드까지 쳐져 있었다. 나간 흔적은 없다. 애초에 나 혼자 있었던 것처럼.
소름이 오싹 돋는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살면서 처음 맡아보는 악취였다. 나는 시선을 내려서 내가 잡고 있는 캐리어의 손잡이, 빼꼼 열린 그 틈새를 보았다. 어두워서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것이 빳빳한 지폐가 아니라는 점이다. 짧고 검은 실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나는 가방 속을 유심히 보았다.
그것은 실이 아니라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흐익!!”
나는 가방을 내팽개치고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가방이 활짝 열려 속이 훤히 드러났다. 부패되기 시작한 사내아이의 머리통이었다. 기이하게 구겨진, 말 그대로 이리 접히고 저리 접혀서 구겨진 신체가 가방의 내부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가방 안에 고여 있던 썩은 피가 흘러나와 카펫을 적셨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가방을 건네던 아줌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친년……!!”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핸드폰을 꺼내 녀석의 번호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받질 않는다. 어딜 간 거야, 이 새끼! 차에서 낌새를 채고 혼자 튄 건 아니겠지?!
[여보세요]
“야!! 너 어디야?!!”
[뭔 소리냐 그게. 가만, 너 막내냐?]
“혀, 형님? 왜 형님이 그 녀석 전화를…… 그보다, 어디세요?”
[어디긴. 춘섭이 발인 마치고 오는 길이다. 넌 어떻게 된 새끼가 코빼기도 안 비치냐? 그렇다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문도 안 잠그고 어딜 싸돌아다녀? 건물 밖까지 벨소리가 쩌렁쩌렁 하기에 들어와봤더니 문은 열려있지, 춘섭이 핸드폰이 사무실에 있지. 녀석 핸드폰이 왜 사무실에 있는지 모르겠네…….]
“발……인이요? 춘섭이요?”
녀석의 이름이 춘섭이었던가?
어떻게 생겼었지? 목소리는 어땠지?
기억나는 거라곤 줄담배를 피우던 것과 누렇게 변색된 손가락뿐이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래. 실적 1위, 사기왕 김춘섭이. 불쌍한 새끼. 술 처먹고 찻길에 뛰어들긴 왜 뛰어들어. 쯔쯧]
“아까전만해도 같이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이상한 소리 말고 사무실로 와라. 모여서 한잔 해야지. 그래도 한 식구였는데.]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이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먹통이 된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방에는 썩은내가 진동하고, 카펫은 가방에서 흘러나온 피로 범벅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캐리어를 닫았다. 욕실로 뛰어 들어가 손에 묻은 피를 닦고 타월을 가져와 캐리어 손잡이며 겉을 문질렀다. 닦는 손이 덜덜 떨렸다.
“시발……이게 뭐야, 도대체! 뭐냐고!!”
귀신에 씐 것도 아니고.
캐리어 밑에 시트를 깔아놓고 피 범벅이 된 카펫을 내려다보았다. 와인이나 음료수 따위를 엎은 자국은 누가 봐도 아니었다. 몇 방울의 핏자국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법이다.
나는 주저앉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찰에 전화해서 사실대로 말하는 상상을 해본다. 경찰은 묻겠지. 어쩌다 그리로 전화하게 된 겁니까? 나는 대답할 것이다. 그게, 장난 전화 비슷한 건데요. 무슨 장난 전화요? 정확히 말씀해보세요. 아들이나 딸을 데리고 있다고 말해서……. 잠깐, 그거 보이스피싱 아닙니까?
여기까지 상상한 다음, 나는 머리를 감쌌다. 그 아줌마가 나와의 통화내용을 녹음했으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시발, 어쩌다가 재수 없게 그 번호로 전화를 건거야. 이제 좀 인생이 피나 했더니 시궁창도 이런 시궁창 길이 없었다.
“이건 어떻게 하지……?”
카펫은 뜯어낸다고 쳐도, 캐리어 속의 이 시체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 아줌마는 뭐고,
춘섭이 그 새낀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