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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시계태엽 오렌지
게시물ID : movie_699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술관소녀
추천 : 6
조회수 : 5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19 22:17:35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어울려 극악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여느 때처럼 밀크 바에서 우유와 약을 섞은 음료를 나눠 마시던 날, 알렉스 일당은 늙은 노숙자를 폭행하고 또래 갱단과 싸움판을 벌인다. 차를 훔쳐 드라이브를 즐기던 이들은 작가 알렉산더의 집을 습격해 그를 폭행하고, 그의 아내를 강간한다. 이튿날 알렉스는 불평을 늘어놓는 친구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자신이 무리의 리더임을 확인시킨다. 그날 밤 알렉스는 한 저택에 침입해 집주인을 죽이고 도망치던 도중 친구들의 배신으로 문 앞에 쓰러진다.
 
 경찰에 검거된 알렉스는 살인죄로 기소돼 14년형을 언도받는다. 그리고 2년 뒤, 알렉스는 좀 더 빨리 감옥 밖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에 내무부 장관이 주도하는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에 자원한다. 루도비코 실험은 재소자에게 약물과 충격요법으로 각종 범죄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교화 방법이다. 알렉스는 힘든 과정을 무사히 이수하고, 실험의 결과를 시연하는 무대에서 각종 폭력적 상황에 극심한 고통과 무기력 증상을 보여 프로그램의 성공을 입증한다.
 
 석방된 알렉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방은 이미 다른 세입자가 차지하고 있고 그는 알렉스의 부모에게 아들 노릇까지 하고 있다.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알렉스는 자신이 한때 못살게 굴던 주정뱅이 부랑자와 친구들 그리고 그에게 희생당했던 작가 알렉산더와 차례로 조우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알렉스에게 복수를 하고, 알렉스는 그들 앞에서 철저히 무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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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퓨즈가 나간다. 왜 이렇게 됐지?
 
승현이가 전화하기 전까지, 나는 불을 켜 놓은 채 내내 잠이 들어 있었다.
 
"어제 몇 시에 잤어~"
 
"어제, 12시50분."
 
"나 다음주에 일본 간다."
 
친구는, 해외에 자주 나간 나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구한다.
 
"나 그때 치킨 먹고 시펐어 ㅜㅜ"
 
"그래, 일본 갔다와서 치킨 먹자."
 
빈말이 아닌, 내가 말랐다며 항상 걱정해주는 친구는, 대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밥을 자주 사 주었다. 많이 좀 먹으라고 하고, 화장한 모습보다 수수한 내 모습을 더 좋아했다. 하긴 고등학생때부터 친구였으니까, 화장한 모습이 더 내모습같지 않아 보여서 싫었나 보다. 원래도 수수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주말이면 퓨즈가 나간다.
아니, 오늘은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오늘은 어디 나갈 개인 업무도 없고, 무언가 해야 할 업무가 있긴 하지만 왜인지 압박감도 가지지 않은 채로 잠시 미루어두었다.
'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느낌도 없이, 잠시 멈춘 채로 있는 것이었다. 오늘은.
 
술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을 잔다면, 그렇게 많이 피곤하지도 않지만 왠지 그때 승현이의 전화가 없었다면 하루를 꼬박 잘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 전엔, 일어나서 배가 고프니 밥을 거하게 차려서 나혼자 산다를 보며 2~3시간 동안의 식사를 마치고,
꾸역꾸역 화장을 해서, 개인 업무를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을 텐데,
 
딱히 화장을 하고 나가야겠다는 압박감도 없었고,
너무너무 술이 마시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차라리 이런 욕망이라도 있다면, 치킨과 함께 소주를 몇 잔 들어갈 때, 몸이 온천 물에 젖어들듯이 기분이 좋아지면서, 내가 이걸 위해 일주일을 일헀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오늘은 그렇게까지 압박감을 느끼는 욕망도 없었다.)
 
주말마다 맛있는 걸 먹으러 나갔었는데, 그런 욕망도 없고,
부모님 집에 가야 하는 일정도 없었다.
 
지난 한 달 간의 스케줄을 훑어보자,
나는 매 주 어디에 가거나,
아니면 너무 피곤해 잠을 자고, 집안일을 부지런히 해놓는 일상이었다.
 
말하자면, 항상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사실 오늘 내에 끝내야 하는 일들(오늘 내에 끝내면 더없이 좋을) 도 있지만,
퓨즈가 나간 것처럼 정신이 멈추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렇다고 이렇게 쉬는게 '개꿀이다'라는 생각이라거나, 인터넷이 재미있다거나 이런 생각도 없었다.
말 그대로 퓨즈가 나간 것. 무엇도 하지 않은 채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상태에서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고 불안감도 없다는 것 자체에서 신기함을 느끼며, 내 자신을 관찰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주말에 집에서 뭐해~ 집에만 있지말고 나가서 운동좀해."
라는 판에 박힌 잔소리를 하는 친구의 말도 이젠 스트레스 받지 않고 흘려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생각정리를 해야 다음 일주일을 새롭게 리프레시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건 내게 업무와도 같다. 사람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만일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 말을 이해하는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행인데
그 와중에 상대방이 내 말을 오해하거나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그것을 바로잡아주거나 다시 설명하기 위해 중간부터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물어보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삐딱한 눈빛으로 혼자 판단을 지어버리고 내 말을 끊어내려고 하는 사람이면
참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이 갑자기 열풍이 불어, 이미 태권도와 유도를 했음에도, 갑자기 무슨 헬스를 안 하면 세상 게으르고 사람도 아닌 것처럼 취급받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로써 힘을 얻는 사람이다, 라고 말을 해도
사람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
 
뭐 어쨌든, 지난 몇 달 간, 주말에도 꽤나 바빴다.
평일에 못다한 잠을 자고, 집안일을 하고, 여기저기 갈 데가 많았다.
 
이젠 거의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무리가 되어 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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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 책상에 꽂아 둔 DEAD POETS SOCIETY 원서 책 뒷면에, 시계태엽 오렌지 라고 포스트잇을 써붙여 놨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미 고등학교때 읽었던 적이 있다.
내 옆 자리 직원이 내 책상 위 책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길래,
한번은 복사본까지 전부 다 꺼내어 보여주었다. 이건 이런 책이고, 이런 내용이 있고, 등등.
 DEAD POETS SOCIETY 는 고등학교때 읽은 건데 다시 읽고 있다, 이건 활자도 크고 가장 얇다. 고등학생이 읽기에 충분한 책이다.
라며, 내가 가진 책들을 소개해주었는데, 막상 알려주고 나니 관심없어 하는 듯 했다.
저 책은 뭐예요? 저 커버 씌운 건 뭐예요? 등 많이 물어보고,
내가 휴가 내고 설명회나 전시회나 어디 가려고 하면, "그거 어디서 해요? 누가 나와요? 주제가 뭐예요?" 등등 너무 자세히 묻길래
또 자세히 알려주면 막상 흥미 있어 하지도 않는다.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뉴스 기사들을 보면서도, 그 사람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궁금해하면서, 막상 결론은 수저론으로 끝난다.
자신이 노력할 생각보다, 남이 뭘 하는지만 궁금해하는 직원이었다.
 
뭐 어쨌든 -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책을 읽으려고 메모해 두었었다.
 
그런데 오늘, 퓨즈가 나간 오늘
이 1971년에 개봉한, 자막도 없는 영국 영화를 보고 있다.
 
대학 시절 범죄학을 학부생 치고는 심도있게 공부했다.
논문을 찾아 읽어가며, 도서관에서 살았던 나는, 그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 관한 논문을 찾아 읽고,
OJ심슨의 판결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학부시절을 보낸 내가 다시금 눈여겨 볼 만한,
시계태엽 오렌지 속 범죄소년을 대상으로 한 신경정신의학적 실험.
심리학이기보다 이건 신경정신의학에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문학적으로, 인과응보니 사필귀정이니 이런 건 다 제쳐 두고 -
이 소년이 이렇게 변하도록 한 것, 정신적 외상을 주입함으로써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으로 효과를 본 것,
 
이것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인가?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이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인가, 합당한 일인가,
또한, 사람들은 형벌의 형태를 '사형', '태형' 등 물리적 방법만을 생각하는데,
정신적 외상을 주입하는 형태의 형벌은, 태형같은 외형적인 외상보다 더 효과가 있을 것인가?
 
왜 태형은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 있는 형벌이고
정신적 외상은 인권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 있지 못하는가?
 
왜 판결에서 정신적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보상 기준은 너무 높고 엄격한가 (성범죄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여 기초수급자임에도 정신과 진료를 매번 가야 해서 생활비가 부족한 경우, 우리나라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장애가 생기지 않는 한, 정신과적 진료비 보상에 대해서는 크게 보상해주지 않는다. 성폭행한 것은 맞지만 그 정신적인 후유증에 대해선 '무형의 상처','시간이 지나면 낫는 것','피해자가 단지 마음이 여려서일 뿐','그건 피해자가 의지를 갖고 살아야 하는 일.' 등으로 치부한다.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일단, 정신적 외상을 주입해 범죄를 더 이상 실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교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범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것을 교화의 효과로 볼 수 있는지,
똑같은 외상을 주입해도 범죄자마다 탄력성이나 반사회성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교화가 아니라 더욱 범죄성이 두드러지고 증폭될 수 있을 수 있진 않은지, 등
 
많은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영화는 잔인하기 때문에, 비실존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메스꺼울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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