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주현우 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한민국 사회의 돌풍을 넘어 각계각층의 의견을 표출하는 신드롬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현우 씨의 대자보는 1.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 사안과 밀양 송전탑, 부정선거 의혹에 대하여, 2. 88만원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의 안타까움을 적고 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전문
<안녕들 하십니까?>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한편,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은 개봉 3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7번방의 선물' 보다 빠른 속도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위키트리). 영화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길을 걷게 했던 부산의 학림 사건(부림 사건)을 모태로, 실존했던 한 고졸 변호사의 사회참여로 나아가는 성장기를 영화를 통해 그리고 있습니다.
송강호 씨는 부림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안보를 위한 도구로 쓰이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어 김광일 변호사의 권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문재인 변호사가 부림 사건의 변론을 맡았습니다(위키백과).
조민기 씨는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검사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실제 모델인 최병국 전 국회의원은 부림 사건의 피해자인 김 모 씨가 "사건의 수사책임자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일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판단해 총선 연대에 낙천명단에 포함시켜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울산광역시 남구에서 내리 3선에 연이어 당선됐습니다. 다른 한 피해자는 "최병국 검사가 대공분실로 찾아와 수사를 지휘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검사가 관련자들에게 3년에서 1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고 회상했는데, 이런 장본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을 생각하게 합니다(부산민주운동사).
이번 글에서는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 사건'과 이 영화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답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부산 학림 사건(부림 사건) 이란?
부림 사건(釜林事件)은 부산의 학림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부림이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며 신군부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사건입니다(위키백과).
'부림' 은 1980년 12월과 1981년 7월에 각각 있었던 '무림사건'과 '학림사건'의 이름을 본 따 당국에서 지은 이름으로 '부산의 학림'이란 뜻입니다. 영화 '변호인'에서와 마찬가지로 검사측은 '역사란 무엇인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등의 책으로 공부 모임을 하던 시민들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고문하여 기소했습니다. 부림 사건은 아무런 근거 없이 시민들을 정부 전복집단으로 매도한 5공화국의 용공조작의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부림 사건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두환 정권 초기 저항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조작된 사건’이란 정치적 면죄부를 받았으나, 법률적으로는 여전히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남아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1999년 한 차례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2006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재항고해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심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지법은 2009년 8월에 피해자들에 대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계엄법 등에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피해자들은 명예를 회복했습니다(연합뉴스).
한편, 부림 사건은 부산의 학림 사건의 준말입니다. 그렇다면 학림 사건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부림 사건은 학림 사건을 부산에서 재현한 것입니다. 학림 사건은 1981년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민주화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운동단체 등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처벌한 사건으로, 당시 전민학련이라는 대학생 단체가 첫 모임을 가진 대학로의 '학림다방'에서 유래한 말로 경찰이 숲처럼 무성한 학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위키백과).
부림 사건과 마찬가지로 학림 사건 역시 2009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신군부의 고문으로 날조된 사건임이 밝혀졌고, 피해자들은 2010년 서울고법은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받고, 2012년 대법원에서 재심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학림 사건 원심의 배석 판사였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책임 있는 사과는 아직까지도 없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진행형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부림 사건의 최병국 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 학림 사건의 황우여 판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책임 있는 자세와 반성을 바랍니다.
영화 변호인, '안녕들 하십니까'에 답하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역)는 고졸 출신으로 판사 임용까지 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부산의 변호사 길로 나섭니다. 다른 변호사들이 꺼리는 부동산 등기, 세금을 주 업무로 맡아 승승장구하고, 심지어 국내 손꼽히는 재계기업의 스카우트까지 받게 됩니다. 남부러울 것 없던 송우석 변호사는 부동산 업자들의 집단 항의, 서울대생들의 데모를 냉소하며 '예의 없는 행동',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행동'으로 폄하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처럼 여기던 국밥집 아줌마의 아들이 '부림 사건'에 연루되어, 사건을 맡게 되면서 부조리한 사회와 법체계에 직면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영화 변호인의 마지막 장면의 바탕이 된 사진입니다. 박종철 군 추모 시민대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홀로 자리를 지키는 사진입니다. 이 사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시법 위반으로 검사의 영장 청구를 받게 되었는데, 검찰은 기각된 영장을 청구하기 위해 하룻밤 새 한기춘, 윤우정, 조수봉, 홍일표 4명의 판사에게 돌아가며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습니다. 이 같은 엽기적인 행태는 법질서를 위해 존재해야 할 검찰이 법관의 권한을 무시하고 오히려 법질서를 어지럽힌 것입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문재인 변호사의 주도로 99명의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판사가 변호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호명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대우조선노조 사건'으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가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법률지원을 해주고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제3자 개입 및 장례식 방해 혐의로 몰아 구속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은 23일간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났지만 변호사업무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 정지됐습니다(뉴스원).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화 됐습니다.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받거나 사회문제에 침묵하던 대학생들이 대자보로 사회문제에 대해 안부를 물어 표현하는 현 상황과 시국과는 거리를 두던 한 변호사의 사회에 참여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시대는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국정원·사이버사·보훈처 등의 관권선거개입으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 경제민주화·복지공약 후퇴, 철도·의료·가스·전기·공항·수도·KAI 등 공공재의 민영화, 일제강점·독재를 미화·찬양하는 역사왜곡 등 상식이 침묵하는 시대에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송우석 변호사를 통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부당함에 맞서 표현하자, 행동하자, 절대 포기하지 말자"
Decisions are made by those who show up (표현하는 사람들만이 결정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5공화국 시절 신군부는 '죽음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무기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영화 속 부림 사건의 피해자 시완이 그 사례입니다. 반면,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지닌 송우석은 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은 스스로 그 사회가 정한 훈련을 받고 그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을 따라야 하는 '삶의 권력'을 두려워합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부와 앞으로 있을 재벌기업의 스카우트까지 잃어야 할지도 모릅니다(미셸 푸코). 이 영화는 시완을 죽음의 권력에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송우석을 삶의 권력에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을 살고 있는 우리는 '죽음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민주화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어 자유롭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삶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경쟁,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불행해하는 다른 사람을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한 걸음만 잘못 내딛어도, 틀에 박힌 규격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투명한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발등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딛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갑니다.
송우석 변호사가 그랬습니다. 돈 많이 벌고 자신만 행복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살아가는 사회가 행복하지 않으면 자신도 불행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송우석 변호사는 자신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고, 사회참여를 통해 '함께 행복해지기'를 선택합니다. 송우석 변호사의 선택이 옳건 그르건 자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표현하는 사람들만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표현하지 않고는 변화할 수도, 변화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매직을 들고 제 책 옆면에 영화 '변호인'의 가장 좋았던 문구를 새기려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고요. 어렵고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저는 대한민국 사회에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표현하고, 행동하고,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