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연, 그냥 좋은 것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원태연, 기다림
가장 고된 날을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전화를 걸지요
고된 날에는
망설임도 힘이 들어 쉬고 있을테니까요
가장 우울한 날을 기다렸다가
그대에게 편지를 쓰지요
우울한 날의 그리움은
기쁜 날의 그리움보다
더욱 짙게 묻어날테니까요
고된 일을 하고
우울한 영화를 보는 날이면
눈물보다 더 슬픈 보고픔을 달래며
그대의 회답을 기다리지요
김종원, 그 이름
밤새 끄적 거리다가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온 종일 불러는 보지만
찾아가지 못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워, 찾아가 보지만
고갤 들지 못하게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고갤 들어 그댈 보지만
한마디 못하게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사람 위해서라면
천년이고 만년이고 기다릴수 있는데
기다리겠다고
언제든지 나에게 오라는 그 말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나 그대 이름까지도 사랑합니다
비록 이렇게라도
정호승,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 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갈수록 외로와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와
외롭고 마음 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신진호, 얼마나 좋을까
내가 너를 생각하는 시간만큼
너도 나를 생각한다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시간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진 않더라도
가끔씩 나를 떠올린다면
신촌에서 공중전화 걸다가
문득 그 슬픈 까페를 떠올린다면
그래서, 그 날
너의 일기장 한 모서리에
내 이름 석 자 새겨진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깨끗한 찻잔 부딪치는 투명한 소리처럼
맑은 소리 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떨어진 꽃잎 보며
정말 거짓이 아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종달새 울음 같은 예쁜 울음 울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부셔
그 눈부신 햇살 받으며
초라한 껍질 벗고 죽을 수 있는 죽음
다 죽어가며 그래도 하나 남을 목숨 조차
사랑 보듬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뿐인 세상에서
현실뿐인 사람들이
비웃으며, 비웃으며 쳐다보는
또한 현실뿐인 눈동자를 씩씩하게 뿌리치는
재만 남은 가슴 끌어안고
내가 죽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아름답고 영원한 진실 증거하며
처마 밑 댓돌 위에 부서지는
은빛 물방울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부서질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