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가끔 오유 베오베 글만 보다가 처음으로 게시판에 글을 써 봅니다.
저는 30대 여자입니다. 저는 군대에 가본 적이 없지만, 군필한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10여년 전 동생을 군대에 보내고서야 '군대에 가는 입장'과 '군대에 가지 않는 입장' 사이에 '군대에 보내는 입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 동생이 군대에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맞기도 많이 맞고 집요하게 괴롭히는 상사도 있었고요. 그 때의 무력감이 지금도 기억나요. 동생이 언제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데, 무슨 일을 당해도 지켜 줄 데가 없고 평범한 우리 가정이 나라에 맞설 순 없는데. 그 시절부터 군대인권문제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었는데 '군대 가보지도 않은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고 스스로 검열하며 별 말을 잘 못했어요.
생각해 보면 그 무렵부터 '그렇지, 여자도 군대에 가야지, 안 갈 이유가 없지' 하고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라도 더 목소리를 냈더라면 남자분들의 울분이 조금 덜 쌓였을지도 모르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우리나라 남자였더라도 군대에 가지 않는 건강한 여성들을 보면서, 울분이 생겼을 것 같아요.
그 후로도 누군가 묻는다면 여자도 군대에 가든가 어떤식으로도 국방의 의무를 더 부담해야지 하고 사석에서 말하긴 했지만, 그 주장을 위해 뭔가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못했어요. 솔직히 논의에 끼어들기가 무서웠거든요. 어느 편이든 논의의 전면에 선 분들은 너무 격하게 말씀을 하셔서요.
20대로 돌아간다 해도 군대 가기 싫어요. 하지만 어느 남자분도 좋아서 가는 분은 없겠죠.
우리나라 군대 안의 범죄와 인권 문제가 겁나요. 하지만 성범죄는 남자에게도 일어나서는 결코 안되는 일이고, 나머지 범죄도 마찬가지겠죠.
요즘 뉴스 보면 전쟁날까봐 겁나요. 하지만 동생이 징집당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상황 자체에 죄책감이 들어요.
세금 내기 싫지만, 제대로 된 세법에 찬성하는 마음이랄까요. 저를 포함한 여성들도 군대 문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인들이 법을 잘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당장 여성용 시설을 확충하기가 곤란하다면 대체 복무를 나누어 하다가 차츰 동등한 징병으로 나아가든, 모병제로 바꾸면서도 기본교육은 나누어 받든 합리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이 게시판에서도 이미 많이 논의하셨을텐데 다 읽지도 않고 성급히 말씀드렸다면 송구스럽습니다.
요는, 여자들 중에도 군복무 평등에 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하지만 어떻게 논의를 시작하고 참여해야 할지 참으로 어렵다는 거예요.
다수의 여자분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국방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다수의 남자분들도 남녀가 평등하게 의무를 부담하길 바라는 것 뿐이지 여자에게 의무를 더 지워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실 거고요. 서로 바라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꺼낼 방법이 없을까요.
끝으로, 죄송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군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한 사람의 한국여성으로서 사과드리고 싶어요.
20대 때는 그 힘듦을 좀 더 공감해 주지 못해서, 30대가 되고 나서도 더 일찍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미안해요.
지금부터라도 상황을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 여자들이 먼저 노력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