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집권 초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진통 속에서 위기를 맞았던 것과 비슷하게 박 대통령도 국가정보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맞이한 위기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품고 있다.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맞이한 집권 초기의 위기는 권력의 정통성 문제로까지 번질 사안에서 출발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 직접 연결된 사안이 걸려 있어 지금 권력의 정통성 시비에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국면에서 펼쳐졌던 국정원 사건 자체는 애초 대선이 끝나면 야권의 ‘대선승복 과정’을 거치면서 종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가 이에 잘못 대처할 경우 5년 내내 이 사건이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돼 왔었다. 다만 잠재적 폭발성이 큰 만큼 잠복기도 존재했다. 경찰의 수사과정과 뒤이은 검찰의 최종 수사발표까지가 잠복기일 것으로 추정돼 왔다.
따라서 최근 검찰의 수사발표는 이러한 잠복기를 끝냈다는 신호였다. 그러면서 대선에 패배한 야권과 야권 지지세력은 박근혜 정권에 대해 본격적인 공세를 펼치면서 전열을 정비하는국면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 야권 지지세력은 잠복기간 중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사건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주시하며 박 대통령이 불법 정치개입의 당사자인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지켜봐 왔다.
실제 민주당 등 야권은 이 잠복기간 중 ‘국민 대통합’을 모토로 내건 박 대통령이 공정하게 국정원 사건을 처리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으나 경찰과 검찰의 수사결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적용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고 야권지지층 또한 이러한 움직임에 반응을 드러내는 단계이다.
서울대와 이화여대 등 대학가의 시국선언, 시민사회단체들의 시국 성명 확산 등은 이러한 가시적인 흐름의 한 단면이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문재인 의원도 ‘박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치적 기지개를 켜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정치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국정원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매개로 본격적인 정치 대립전선의 윤곽을 만드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러한 국면 전개를 박근혜 정부와 여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치권의 대립전선 형성에 이어 국민들도 여권 지지층과 야권 지지층간의 대치전선으로 나눠줘 치열한 갈등의 골을 만들어 낼 개연성이 큰 상황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그토록 주창한 ‘통합과 대화합’은 집권 4개월 만에 ‘식언(食言)’이 됨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향후 5년의 국정운영의 승패를 가르는 위기이자 최대 기로에 놓인 셈이다. 그가 대선 승리 직후부터 줄곧 예고돼 온 국정원 사태를 어떻게 돌파해내느냐가 시험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