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 첫 편지
떨리는 손으로
첫 편지를 쓰던 날
너의 이름을 차마 적을 수 없어
사랑한다는 말을 더더욱 못해
밤새 활활 태워버린 편지지
너무 신선하고 소중했던 충격
그 이름, 끝에 이름 이름부를 수 없었던
사랑이어, 홍보석의
그 발그레한 빛깔처럼
지울 수 없는 세월이 되었구나
항상 아침 해와 같이
밝은 환상의 이름이어
그날, 첫 편지의 두 글자에
한 시인이 탄생하였음이여
천양희, 비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김종원, 당신에게만 들키고 싶다
우리는 처음
얼마나 작게 시작했던가
날아 오르는
저 종이연을 지탱해주는
가느다란 실처럼
우리는 얼마나 가늘게 메달려 살아왔던가
얼마나 가늘게 시작했던가
맞 찌어낸 밥알이
맞붙어 있는 것처럼
서로 놓지 못한 손목을
저 종이연에 매달고
얼마나 함께하고 싶었던가
얼마나 영원하길 바랬던가
이제 당신은 나에겐 꺼지지 않는 허기진 사랑이요
차오르지 않는 공복이요
내 생애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뼛속의 문신이라지만
이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긴 시간
너에게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내 그리움
당신에게만 들키고 싶은 그 마음 때문에
내 그리움을
당신에게만 들키고 싶다
당신에게만 들키고 싶다
유미성, 천원짜리 러브레터
너에게 편지를 썼어..
조폐공사 아저씨들이 알면..
큰일나겠지만..
천원짜리 지폐에..
깨알같은 글씨로..
너의 안부와 나의 마음을 적었어..
그 돈으로 편의점에 가서..
담배 한갑을 샀어..
언젠가 그 돈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거쳐..
혹시나 네손에 들어가게 되면..
어느날 네가 카페에서..
헤이즐럿 커피를 마시고 받은
거스름돈 중에..
혹시나 그 돈이 섞여 있어..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그랬다면...
................
너 돌아와 줄래....?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 돈으로 영원히...
내 마음을 사지 않을래.....?
서주홍,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면
그것은 배신이다
사랑이 순수하여
거짓이 아니고 비밀이 아닌 담에야
마를 줄 모르고 샘물처럼 솟아나는
이 자유를 어찌하란 말인가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밖에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비밀이 순수가 아니고
사랑의 보람이 아닌 담에야
저 마음 한 구석 응어리처럼 박혀 있는
그 구속은 어찌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