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나가사키에서 19km 떨어진 하시마섬은
전체 면적 6.3 헥타르, 남북으로 480m, 동서로 160m, 해안선 길이가 1200m를 넘었다.
1890년 한 남자가 10만 엔이라는 거금을 주고 섬을 매입했다.
이후 그는 섬 주변을 돌과 흙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이 섬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고, 해안선이 곧게 뻗어 있다고 해 '하시마섬'으로 부르게 됐다.
이후, 그는 하시마 섬에 일본식 최초로 철근식 콘크리트 아파트를 지었다.
또, 4층에서 10층에 이르는 고층 건물 10여 동을 세워 올렸다.
해상에서 바라본 모습이 일본 해군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이 작은섬에 막대한 투자를 한 이유가 바로 석탄 때문이었다.
하시마섬 일대의 해저에는 다량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었고, 일본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채굴하게 되었다.
하시마는 다카시마 탄광과 함께 일본의 근대화를 지지해온 탄광 중 하나였다.
석탄 출탄량이 최전성기를 맞이한 1941년에는 약 41만톤을 출탄하였다.
1959년에는 헥타르 당 835명의 인구밀도를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당시 도쿄 23구 인구밀도의 9배 이상에 이르는 수치였다.
탄광 시설이나 주택 이외에도 학교, 점포, 병원, 영화관 등도 있어 섬내에 있어서 완전한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패망을 앞둔 1940년 이후 에는 본격적으로 한국인 수백명을 강제로 동원해 채탄 작업을 벌였었다.
1960년 이후, 주요 에너지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감에 따라 점차 쇠퇴해갔으며,
197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에 폐산했다.
폐산시에 약 2000명까지 줄어들고 있던 주민은 4월 20일까지 모두 섬을 떠나 무인도가 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의 끝에 맞닿아있다.)
이 섬은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 기괴한 섬, '유령섬'으로 알려져 있다.
- 전성기때의 하시마섬
- 30년이 지난 현재, 하시마섬의 모습
- 하시마섬에 50m 이내 접근한 사진
원래는 작은 암초에 불과 하였으나 주변을 지속적으로 매립하며 노동자의 숙소 등을 건설했다.
강제징용되어 섬에 머물렀던 조선인 등이 공식적으로 철수한 것은 1945년 10월.
일본의 인권모임이 하시마 탄광 사망자의 ‘매·화장 기록서’를 확인한 결과 당시 조선인 강제 징용자 122명이 이 섬에서 숨졌다
.또,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1939∼1945년 강제 징용된 조선인 500여 명은 하시마 탄광에서 일하며 생활했다고 하는데,
확인된 사인은 두개골 함몰, 익사, 압사 등이었다.
푸성귀만 무성한 폐허...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옛날 누군가가 썼었던 TV
죽어버린 수술대
그대로 방치된 죽은 학교
주민없는 아파트 복도
아무도 오지않는 신사
체육관
잊혀진 섬 , 하시마섬
“그 섬은 높은 방파제와 거센 파도로 탈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하시마 탄광에 강제 징용됐던 피해자 박준구(87)씨
제발 잊지말아주세요.
작성자 : 초강력소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