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저만치 와 있는 이별
하루에 한 시간씩 덜
생각하자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덜
떠올리자 합니다
당신은 모르십니다
그 한 번으로 인해
내 목줄이 얼마나 조여지는지를
그 한 시간으로 인해
내 목숨이 얼마나 단축되는가를
하루에 한 시간씩 덜
생각하자 합니다
당신이 내게 하루에 한 시간씩
덜 살으라 합니다
이해인, 슬픈 날의 편지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이용채, 그녀를 사랑하나보다
아주 조금씩 그대가 나에게 오면
아주 조금씩만 그대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왜 우리 사랑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지 못하고
그렇게 성큼성큼 다가와진 것일까요
쉽게 사랑에 빠지면
쉽게 헤어진다는 말을 나는 두려워합니다
무엇이든 쉽게 결정하는 사람은
이별도 쉽게 결정하기 때문이지요
계절이 채 오기도 전에 꽃이 피면
그 계절이 다 가기도 전에 꽃이 지기 때문입니다
채수영, 사랑 한 마디에 가슴 울렁이는
쏟아지는 햇볕으로 집을 짓고
킬킬 모여 앉았던 추억은 어딜 갔나
인생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해도
갈 곳 있어 어디 아득한가
사랑 한마디에 가슴 울렁이는
푸른 날들의 자취
살찐 이름에 매달려 끝내
고백을 미루었던
삶이여
이제 긴 그림자에 이끌리는
너의 손짓에 내 고백은
가락이 메마른데
흔들리는 마음에 실리워
어딘가를 찾아가는
솟아 오는 햇살에게 이름의
행선지를 묻노라
한소라, 비
갑자기
비는 왜 이렇게 쏟아지는지
내 눈물 감춰 주기는커녕
내 맘 깨끗이 씻어 주기는커녕
댐에 물 불어나듯
강물이 넘쳐나듯
그리움만 넘쳐나고 있어
내 작은 가슴 안에
홍수가 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