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키 파이의 이퀘스트리아 여행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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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름이 뭐에요?"
핑키는 가드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가드는 멈칫하더니 핑키를 보며 말했다.
"가드로 활동할 때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가드들은 전부 같은 모습을 해야하기 때문에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가드는 무서울정도로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핑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구분을 할 수 없다뇨? 아까 절 발견한 포니가 바로 당신이잖아요!"
가드는 멈칫하더니 놀란 얼굴을 하며 핑키를 보았다.
"성안의 다른 가드들을 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전부다 똑같은 투구를 쓰고 똑같은 갑옷을 입고 있잖아요."
"그... 그런데 대체 어떻게 구별하는건지..."
가드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가드들은 대부분이 똑같은 털로 염색을 하고 똑같은 투구와 똑같은 갑옷을 입는다. 털색도, 갈기도, 심지어 포니들마다 다르다는 큐티마크도 가려진 채 였기 때문에 포니들은 가드들을 따로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목소리로 구분을 할 순 있겠지만 일일이 가드들을 구분하는 포니들은 없었다. 가드들 본인들은 물론이고 명령을 내리는 공주들 조차도 구분없이 부르곤 한다.
그런데 그런 가드들을 핑키는 단 한번만 보고 누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분명 성안에 있었다면 다른 가드들을 많이 봐왔을건데 어떻게 알아차리는것일까. 그 대답은 핑키의 입에서 나왔다.
"저는 관찰력이 엄청 뛰어나거든요! 누가 누구인진 금방 알 수 있죠."
"그런... 공주님도 구별하기 힘든데..."
"그래도 제 눈엔 다 하나하나 특별해요! 그러니까 이름 알려주세요!"
가드에게 이름을 묻는 포니는 핑키가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알려준 적도 가드는 처음이었다. 가드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것이 어색한지 핑키의 시선을 피했다.
"토파즈... 입니다. 부모님이 제 갈기색을 보고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전 핑키파이에요! 그런데 이상한데요. 갈기색은 하얀색이잖아요. 토파즈는 노란색이나 파란색 아니에요?"
핑키는 토파즈의 갑옷사이에 보이는 털 색을 보며 말했다. 새하얀색으로 빛이 나고 있는 그의 털은 토파즈빛깔이라 보기 어려웠다.
"... 크리스탈 가드가 되려면 털 색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법으로 하얀빛으로 바꾼겁니다."
토파즈가 설명을 다 마칠때쯤에서야 둘은 성의 입구에 도착했다. 토파즈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드들과 얘기를 나누더니 문을 열었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가드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 웃지도 않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조차 똑같았다. 핑키가 아닌 다른 포니였다면 구분을 못했을 것이다.
가드가 문을 열고 토파즈가 핑키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신호를 주었다. 핑키는 가드들에게 인사를 하고 통통 뛰며 입구 밖으로 나갔다.
성 밖은 저녁시간이 지난 이후로 주황빛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메인하탄의 유명한 작가가 크리스탈 왕국을 여행하고 이렇게 서술한 적이 있다. '크리스탈 왕국은 아침, 점심, 저녁 마다 서로 다른 형태를 하고 있어 마치 서로 다른 세 곳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그 말대로 해가 곧 지려하는 크리스탈 왕국은 노을빛을 흡수해 그 광채를 더욱 더 빛나게 해주었다.
"그럼 우리 이제 된거지?"
핑키와 토파즈는 성의 정원을 지나가던 중 그녀가 뜸금없이 말을 꺼냈다.
"뭐가 말입니까...?"
"뭐긴 뭐야! 친구지! 서로 이름을 나눴으니 친구가 돼야지!"
"그런건......"
토파즈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핑키는 토파즈의 앞으로 오더니 뒷걸음질치며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토파즈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사적인 감정은 가드에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게 어딨어! 친구 사귀는데 막을 사... 포니가 누가 있어! 나랑 친구하자, 친구!"
핑키는 길을 멈추더니 토파즈의 앞길을 막았다. 핑키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자 토파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핑키는 소리를 지르며 백덤블링을 하더니 다시 토파즈의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어! 저기 포니들이 많이 있다!"
핑키 파이는 길거리에 포니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혼자 뛰어가기 시작했다. 토파즈가 따라가려고 하기도 전에 핑키는 이미 포니들이 모인곳 까지 멀어져갔다. 토파즈는 말도 안되는 핑키의 속도에 입이 벌어졌다.
"친구라......"
토파즈는 멀어져가는 핑키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급하게 핑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핑키 파이는 광장의 모습에 어느 곳 하나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성 뿐만 아니라 이곳 전체가 보석에 둘려쌓여있는듯 화려했다. 걷고 있는 길도, 건물들도, 벽도, 벤치도, 심지어 포니들까지 크리스탈처럼 빛나고 있었다. 핑키의 눈도 감탄에 젖으며 그들처럼 반짝였다.
포니들은 크리스탈 포니 외에도 다양했다. 크리스탈처럼 겉이 반짝이는 포니도 있었고, 자기 처럼 반짝이지 않는 포니도 있었다. 특히 반짝이지 않는 포니들은 여러종류가 있었는데 어떤 포니는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기도 하고 머리에 달린 뿔로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핑키 파이는 눈을 빛내면서 포니들을 하나하나씩 살폈다. 지나가던 페가수스의 날개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살짝 만져보기도 했다.
"이봐요!"
갑자기 날개를 만지는 핑키를 향해 페가수스가 불쾌함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핑키는 발굽을 떼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포니의 날개는 민감한 부위인 듯 싶었다.
늦게 따라온 토파즈는 핑키를 발견하더니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무표정이 깨지더니 경악이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지나가는 포니 날개는 왜 만지시는겁니까!"
"저 포니는 정말 날 수 있는거지? 신기해서 한 번 만져봤어."
"당연한 소릴... 그러다 추행으로 잡혀간다고요!"
"알았어. 안그럴게."
핑키는 소리내어 웃으며 대답했다. 진지함이라곤 없는 그녀의 웃음에 토파즈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여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포니였다. 성에 온 손님이 가드에 의해 끌려간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이 될까. 아니, 이미 한 번 경험하긴 했지만. 이제부터는 옆에 단단히 붙어있어야 겠다 다짐한 토파즈가 앞을 보자 핑키는 사라지고 없었다.
"뭐... 뭐야! 무슨 어스포니가 텔레포트라도 쓰는거야?!"
토파즈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소리쳤다. '한눈을 판 사이에' 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이 되었다. 해가 다 져가는 광장에는 포니들이 몰려있지 않아 쉽게 핑키를 찾을 수 있었다. 핑키를 발견한 그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그녀는 아까 날개를 만지려던 것에 모자라 이번에는 지나가던 포니의 엉덩이를 만지려 발굽을 뻗고 있었다. 게다가 그 포니는 방금 전 날개를 만지던 같은 페가수스였다. 토파즈는 죽을 힘을 다 해 뛰었다. 그리고는 뒤에서 핑키를 끌어 제압했다.
"어? 안녕, 토파즈!"
다행히 발굽은 페가수스의 엉덩이에 닿지 않았다. 토파즈는 숨을 고르며 핑키를 놓았다. 토파즈는 훨씬 더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솔직히 토파즈는 방금 핑키가 뭘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취미가 지나가는 사람 성추행 하는거라도 되는건가. 핑키는 또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신기해서 그랬어. 저기 봐봐. 다들 엉덩이에 그림들이 있잖아. 꽃도 있고 동물도 있고 무늬도 있고 물건도 있고 되게 다양해."
"당연하잖습니까... 당신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러게. 엉덩이에 그림 그리는게 엄청 유행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정체가 뭘까 궁금해서 말이야. 혹시라도 만지면 포니들이 빛이 나면서 변신하는거 아닐까 해서 만져보려던 건데."
"변신을 할 리가 없잖아!"
토파즈는 욱해서 핑키를 향해 소리쳤다. 소리가 너무 컸는지 주위의 포니들이 전부 핑키와 토파즈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가드가 소리를 친 것 이다보니 포니들은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토파즈는 포니들이 무슨일이 났다고 생각하기 전에 침착해 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어디 갈 때는 저랑 같이 가달라는 겁니다."
"어머나, 내가 걱정되는거야?"
핑키는 발굽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은 척을 했다. 토파즈는 속이 박박 긁히는것 같았다. 그는 '무슨 짓 할 지 모르니까 그렇지' 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지나가던 포니의 엉덩이를 만지는 황당한 짓을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유가 '변신을 할 것 같아서' 라니. 무슨 다른 세계에서 온 포니같았다. 포니 한마리를 경호하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몰랐다. 아직 관광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이 온몸에 무겁게 매달렸다. 지금이라도 성에 다시 돌아가자면 과연 이 분홍 포니는 말을 들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 그의 터져가는 속을 아는건지 핑키는 토파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소리없이 씨익 웃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토파즈는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표정이 좋아졌구나 토파즈!"
핑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지다니 무슨 소리죠 그게... 당신 때문에 얼굴에 주름만 늘어날 거 같은데."
토파즈는 입을 삐쭉 내민채 툴툴거렸다.
"모르겠어? 아까 토파즈는 표정도 없고 목소리도 완전 지루했다고! 무슨 로봇인줄 알았다니까. 근데 지금은 이렇게 나한테 화도내고 소리도 지르고 하잖아! 그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고!"
토파즈는 핑키의 말에 그제서야 잊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자기는 지금 근무중이라는 사실을. 이제까지 근무를 하면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감정대로 행동한 적은 없었다. 그저 기계적인 일의 반복. 명령 수행. 복종. 지루함이란 감정조차 잊게 만드는 고독. 포니와 이렇게 대화를 나눠본지도 가물가물했다.
토파즈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핑키를 보자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깊이 소용돌이 쳤다. 핑키는 여전히 토파즈를 보며 웃고있었다.
"그래도 역시 웃는 편이 훨씬 나아. 그러니까 웃어봐 토파즈. 스마일!"
핑키는 발굽으로 토파즈의 입꼬리를 잡더니 쭈욱 늘렸다.
"그... 그마하헤요."
토파즈는 입을 벌린채로 말을 했다. 발음이 이상한 탓인지 토파즈를 웃게하려던 핑키쪽이 오히려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핑키는 바닥을 뒹굴으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토파즈는 핑키를 내려다 보며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랐다.
핑키는 웃는 도중 문득 귀를 쫑긋 세우더니 고무공 처럼 다시 벌떡 일어섰다.
"소리! 방금 소리가 들렸어!"
"무슨 소리 말입니까?"
토파즈는 또 다시 핑키의 돌발행동에 당황해했다.
"저기 한번 가보자!"
핑키는 발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토파즈는 서둘러 그녀를 쫓아갔다.
"잠깐만요! 같이 가자니까요!"
핑키는 무작정 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방금전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났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왔던 곳에서 아주 익숙한, 이곳에 있을리 없는 소리에 핑키의 호기심은 극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소리는 두 번 나지는 않았다. 자기가 잘못들은걸까 생각한 핑키는 이내 방향을 잃고 멈춰섰다. 옆을 보니 어느새 따라온 토파즈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드라면서 왜 이렇게 체력이 없는거야?!"
핑키는 숨을 헐떡이는 토파즈를 향해 일침했다.
"당신이... 비정상적으로 빠른겁니다."
핑키는 이따금 학교에서 레인보우 대쉬와 경주를 하곤 하는데 레인보우 대쉬도 똑같은 말을 하곤 한다. 운동부인 대쉬를 이겨놓고 결승선에서 헉헉대는 대쉬를 향해 '운동부이면서 왜 이렇게 체력이 없어?' 라고 말하면 대쉬는 '니 새끼가 비정상인거야!'라고 받아치곤 했다. 핑키는 그 때의 기억이 생각났는지 토파즈를 보면서 웃었다.
그녀는 여전히 친구들과 여기에 같이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 곳은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플러터샤이는 포니들이 말을 하는 사실을 안다면 이곳에서 하루종일 동물들과 말을 하고 다닐것이다. 래러티는 성의 디자인을 보면서 호들갑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을 거고 보석으로 된 이곳에 평생 살겠다고 할 것이다. 대쉬는 예전 트와일라잇이 왔을 때 이후로 다시 한번 나는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곳에 온다면 하루종일 하늘을 날 것이다.
그녀는 머리갈기를 뒤적거리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까 확인하지 못한 것을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핑키는 전원을 키고 계속해서 화면을 밀어봤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역시 이 스마트폰은 발굽에는 인식이 안되는거야!"
"그건 뭐죠?"
옆에서 보고있던 토파즈가 물었다.
"이거? 비밀이야! 포니들이 알아선 안될 엄청난 물건이지!"
"무슨 말인지 잘...... 그냥 장난감 아닌가요."
"그래... 장난감이지.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야! 바로 인류을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 이것 때문에 소통은 단절되고 길거리에는 바닥만 쳐다보는 사람이 늘어났지."
"......?"
핑키는 얼버무리며 다시 휴대전화를 머리에 넣었다. 휴대전화같은 문명을 이 순수한 이퀘스트리아에 전달한다면 분명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테니까. 핑키는 충격에 빠졌다. 기껏 가져온 휴대전화가 무용지물 이라니. 사진을 찍지 못하면 여행에는 의미가 없어진다. 핑키는 절망에 빠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마 동화같은 이곳에 카메라 처럼 문명화된 물건이 있을리가 없겠지 라고 생각하던 찰나, 핑키는 찰칵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