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체념 할 수 없는 그리움
세월도 비켜 가는
잘못된 사랑이라 여기며
이제 그대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 봅니다
황량한 들
발목까지 베인 벼 밑동처럼
시린 발로 서서
얼마나 그대 기다려야 하는지
도무지 가닥이 잡히질 않습니다
예사롭게
무심히 스칠 수도 있겠지만
조갈 난 논배미 목을 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백로
눈빛 애처롭기만 합니다
사랑했던 기억만
간직 한채 살수 있다면
그대 기다림 체념할 수 있으련만
욕심처럼 끝없이 그리움 밀려와
추억 속에 그대 묻을 수 없었습니다
용혜원, 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당신은 무덤덤한 사람인듯 하지만
당신곁에 있으면 커다란 바위에
몸을 기댄듯 마음이 든든해 집니다
당신은 늘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지만
당신곁에 있으면
불안이나 걱정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당신은 내 마음 속속들이 채워주지
못한다지만 변화 많은 세상속에서
늘 푸른 소나무처럼 나를 지켜주는
그대가 있어 참 고맙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박만엽, 그대는 아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침이 되어 파고드는 실낱같은
햇살에 눈 비비며 깨어나
이슬 같은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숨은 쉬고 있다고 하여도
곁에 둘 수 없는 아픔과 그리움에
사무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살아있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 나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헤어짐이란 어떤 헤어짐도
아름다울 수가 없는 것
뇌(腦)와 가슴 사이에 삶과 사(死)의
다리 하나를 만들어 놓고
진종일 서성이는 자(者)가 있다면
바로 너 때문이라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원태연,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만큼의 눈물을 흘려낼 수 있는지
알려준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사진을 보지 않고도 그 순간 그 표정
모두를 떠올리게 해주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비오는 수요일 저녁, 비오는 수요일에는
별 추억이 없었는데도
장미 한다발에 눈여겨지게 하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사람
멀쩡한데도 잘 못살게 하고 있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신이 잠을 자라고 만드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보내게 만드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강아지도 아닌데
그 냄새 그리워 먼 산 바라보게 만드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우연히 들려오는 노래가사 한 구절 때문에
중요한 약속 망쳐버리게 만드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껌 종이에 쓰여진 혈액형 이성관계까지
누여겨지게 만드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스포츠 신문 오늘의 운세에 애정운이 좋다 하면
하루종일 호출기에 신경 쓰이게 만드는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썩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던 내 이름을
참 따뜻하게 불러주었던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날 그 순간의 징크스로
사람 반병신 만들어 놓은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담배연기는 먹어버리는순간 소화가 돼
아무리 태워도 배가 부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목선이 아름다우면
아무리 싸구려 목걸이를 걸어주어도
눈이 부시게 보인다는 걸 알려준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 여자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그저 모든 이유를 떠나
내 이름 참으로 따뜻하게 불러주었던
한 여자를 사랑하다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