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은 환멸감을 떨칠 수 없었다. 사장은 그 집에 귀신이 깃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뻔뻔하게 집을 팔아넘겼다. 아마도 상당한 중개 수수료를 대가로 받았으리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노인은 집을 산 후 귀신들린 집이라는 주위의 수군거림에 십중팔구 매우 당황해했을 것이다. 노후 대비 자금을 모두 털어 산 건물에 대한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 노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은정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노인이 불안한 표정으로 의논을 청해왔을 때 이 보잘 것 없는 소악당은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원은 어제 만난 집 주인의 걱정스러운 표정과, 그가 내민 봉투 안에 들어 있던 꾸깃꾸깃한 누런 지폐를 떠올렸다. 당분간 그 건물에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이번 의뢰에서조차도 부동산 사장이 손해를 본 건 하나도 없었다. 해원은 그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해원은 말했다.
“사장님. 사장님은 중개 때문에 그 집에 자주 드나드셨지요? 특히 102호에도 말입니다.”
사장이 미간으로 주름살을 모으며 수상쩍은 듯 물었다.
“뭐 그렇긴 합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죠?”
“귀신 들린 집이라 하면, 당연히 친구를 찾아 오만 잡귀들이 몰려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는 사람에게 잘 들러붙지요.”
해원은 피로한 입술을 억지로 잡아 늘려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무슨 뜻인가 되새기던 사장의 얼굴에 순간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해원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짐짓 장식용 도자기가 놓여 있는 부동산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이를테면 저기 있는...... 저런 존재들 말씀입니다.”
사장은 뭔가를 찾는 것처럼 정신없이 눈을 굴렸다. 해원은 뻐근한 몸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저런 존재들이 가게에 붙어 있으면 점차 매상이 떨어진다고들 합니다. 부동산 중개업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덤덤한 말투로 말한 해원은 미닫이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뒤에서 무언가 외침소리가 들려 왔지만 해원은 무시했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할 무렵의 길거리는 한산했다. 가볍게 하품을 한 후 지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품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순진한 얼굴을 하고선 사기꾼 다 됐네요. 거기 있긴 뭐가 있다고.”
“뭐, 괜찮잖아. 누구 말마따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법적인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야. 기껏해야 사장 이마에 주름이 한두 개쯤 늘어나는 정도겠지.”
“하기야 좀 고소하긴 하네요.”
바리는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요즘 여기 부동산이 장사가 안 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점심때 식당에서 들었잖아. 여기가 이삼 년 전까지 재개발 이야기가 있었는데 결국 안됐다고.”
해원은 대답했다.
“그러니 부동산 경기도 예전에 비하면 영 아니지 않겠어.”
“우와. 진짜 사기꾼.”
바리는 반쯤은 감탄하듯, 반쯤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해원은 대꾸하지 않고 경찰청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확인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정리했다.
“지독하지만 드문 사건은 아니야.”
자료 복사본을 건네주며 원순이 말했다.
“대학교 근처에는 혼자 자취하는 여학생이 많으니까. 이런 강간치사가 의외로 잦아.”
“무서운 세상이네.”
해원은 혀를 차며 자료를 펄럭펄럭 넘겨보았다. 급하다고 닦달을 했더니 자료를 팩스로 요청해 받은 모양이었다. 원순은 경찰청 감사계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일선 경찰서에 연락하면 어지간한 자료는 바로 사본이 날아오곤 했다. 여지없는 직권남용이었지만 원순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월급도둑놈. 자료를 요청하는 입장인 주제에 해원은 뻔뻔하게도 원순을 그렇게 불렀고 원순은 그럼 내가 잘리고 나면 네가 먹여 살리라며 받아치곤 했다.
“범인은 죽었네?”
“응. 좀 어이없게 죽었지. 하긴 인과응보겠지만”
원순이 어깨를 으쓱했다. 범인의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정확하게는 그 사건 이후 경찰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한 달 만에 또다시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다, 현장을 덮친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중 과속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었다. 해원은 원순의 평에 동감했다. 죽어도 싼 놈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듣고 있는 미성년자를 생각해서 해원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이 사진은 내가 가져가도 되지?”
몇몇 자료를 수첩에 베껴 쓰던 해원은 중간에 첨부된 피해자의 사진을 따로 지갑에 챙겨 넣었다. 원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빈 커피잔을 가리켰다.
“한 잔 더 사. 테이크아웃으로.”
“뭔 커피를 물마시듯 마시냐.”
해원이 툴툴대면서도 커피 한 잔을 추가 주문해 가져왔다. 원순은 자료를 누런 봉투에 되담아 옆구리에 낀 채 컵을 들고 일어섰다.
“얼른 들어가 봐야겠다. 조금만 안보이면 계장이 잔소리하니까. 바리에게도 안부 전해 주고.”
“오냐. 또 보자.”
원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한 발걸음으로 나갔다. 해원은 다시 자리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아. 어제 만나 뵈었던 이해원입니다. 실은 하나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택시와 버스, 지하철 사이에서 망설이던 해원은 결국 택시를 탔다. 슬슬 퇴근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던 데다 시외라서 택시요금이 바가지로 나올 게 뻔했지만, 도저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 있을 몸 상태가 아니었다. 택시 뒷자리에 몸을 던지다시피 앉은 해원은 메모해 두었던 주소를 불러주었다. 기사는 낯선 주소에 잠시 망설이다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했다.
잠깐 눈을 붙이던 해원은 기사가 부르는 소리에 깼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이었다. 해원은 택시비를 낸 후 내려서 몸매무세를 점검했다. 그리고 번지수를 찾아 확인한 후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전자음이 꼬리를 길게 끌며 사라지더니 곧 스피커가 지지직 소리를 냈다.
“누구세요?”
“이해원이라고 합니다. 아마 은정씨 어머님께서 연락을 주셨을 텐데요.”
대답 없이 스피커폰이 꺼졌다. 잠시 후 주택의 현관문이 열리더니 젊은 여성이 의심 어린 눈초리로 다가왔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선 그녀는 창살 너머로 조심스럽게 해원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바지, 검은 넥타이. 아마도 상갓집에서 막 빠져나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해원은 싱긋 웃어보였으나 그녀는 의심스러운 기색을 거두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간신히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당이라고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당은 아닙니다만, 그 비슷한 일은 합니다.”
그녀는 다시 한참 동안 침묵하다 눈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커피숍이 있어요. 이십 분 안에 그쪽으로 갈게요. 집에는 부모님이 계셔서.”
그녀는 냉랭하게 돌아서 집으로 들어갔다. 해원은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가자 조그마한 카페가 보였다.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아르바이트생이 꾸벅꾸벅 졸다가 해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황급히 일어났다. 해원은 일단 자신의 커피만 주문했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 바닐라 많이요.”
그 커피를 홀짝홀짝 절반이나 마신 후에야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입고 모자를 눌러쓴 상태였다. 그녀는 해원의 맞은편에 앉아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뭘로 드시겠습니까?”
“아무거나요.”
잠시 고민하던 해원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추가 주문했다. 그녀는 별 말 없이 받았으나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은정이 부모님까지 연락을 하시고.”
말투가 딱딱했지만, 적대적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 동안 경찰이나 기자들에게 워낙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해원은 원순에게 받아 두었던 사진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얼굴, 혹시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귀찮다는 듯 사진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 뒷걸음쳤다.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우당탕 소리가 났다. 사진이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지려는 것을 해원이 재빨리 낚아챘다.
“어, 어, 어떻게!”
그녀는 비명처럼 외쳤다. 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근래 현경 씨가 계속 악몽을 꾸셨다지요. 그래서 은정 씨에게 그날 함께 자자고 부탁한 것이었고요. 그 악몽 속에 나온 귀신이 바로 이 사람 아니었습니까?”
현경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원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자신의 추측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해원은 차분히 일어나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웠다.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요.”
조용한 현악기 연주가 카페 내부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에 기겁을 했던 아르바이트생은 잠시 고민 후 다시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 카운터 뒤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현경은 한참을 망설이다 간신히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해원을 응시했다.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어떻게 이 얼굴을 찾은 거죠?”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괜찮아요.”
“그럼...... 일단 현경 씨의 꿈속에 나왔던 이 얼굴에 대해 말씀드리면, 5년 전 그 집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살인사건이었지요.”
현경의 눈동자가 커졌다.
“살인이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대학생들은 졸업하면 학교를 떠납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사건이었더라도 몇 년이 지나면 직접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저 막연한 소문 정도만 남게 되지요. 물론 주민들이야 잘 기억하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대학생들에게 하지는 않습니다. 집값 문제도 있으니까요.”
“세상에.”
현경은 한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볼을 쓸어내렸다. 아마도 아무 말 없었던 부동산 사장을 속으로 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해원은 추측했다.
“그런데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그 집, 정확하게 말하자면 102호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귀신 들린 집이 맞습니다.”
현경은 침묵하다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의 사진을 가리켰다.
“저거 말인가요?”
“아마도요. 워낙 한이 깊은 모양입니다. 원래 영이 이승에 몇 년이나 머무르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이 경우에는 아무래도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그런지......”
실언이었다. 현경은 캐묻는 듯한 눈으로 해원을 올려다보았다. 해원은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가능한 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간 살인이었습니다.”
현경은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천천히 좌우로 도리질을 쳤다. 해원은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목소리가 더욱 낮아져 마치 쉰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아저씨는 왜 온 거예요? 그냥 나한테 뭘 알려주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저는 확인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확인한다고요?”
“마지막 퍼즐을 맞추려는 겁니다.”
해원은 대답했다.
“저는 거기 있는 영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령이 되었는지, 어떤 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요.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 영이 은정 씨를 해쳤는지? 그리고 사람을 해칠 정도로 위험한 영이라면, 그런 집에 1년이 넘게 살면서도 현경 씨와 룸메이트 두 분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 더군다나 지난 5년간 102호에 세 들어 산 사람들은 다들 귀신을 보았다며 하나같이 몇 달도 버티지 못한 채 도망치듯 방을 뺐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분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하나뿐입니다. 귀신이 두 분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지요. 적어도 현경 씨가 악몽을 꾸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