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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 변경
게시물ID : soccer_921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ma*
추천 : 13
조회수 : 3251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3/12/27 14:59:33
90년대에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와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내는 괴물들이 분명 존재했었죠. 대표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꼽히는 페르난도 레돈도. 90년대에 레알에서 뛰던 레돈도는 4-1-5에 가까운 포메이션이었던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허리를 책임졌던 인물이죠. 수비면 수비 전개면 전개 여기에 최후방에서 최전방까지 단독 드리블로 4~5명을 제쳐내면서 볼을 운반해냈던 드리블 실력까지...
 
하지만 이 당시에는 그러한 역할을 모두 수행해낼 수 있는 선수를 육성해낼 능력이 없었습니다. 전술적으로나 육성 프로그램상으로나...그렇기에 대부분의 팀들이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고 창의적인 선수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두는 형태를 취했고 수비적인 미드필더로는 둥가를 비롯해서 데샹 그리고 마우로 시우바같은 선수들이 있었고 그 마지막 정점을 찍어버린 마켈렐레가 있죠.

다만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조직적인 압박이라는 개념이 약했습니다. 압박이라는 것은 단순히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볼을 뺏어내는게 아니라 일부는 진행 경로를 막고 일부는 짧은 패스 루트를 차단하며 일부는 롱패스의 경로까지 차단하는 동시에 상대의 패스 루트를 국한시켜서 그 쪽으로 패스가 가면 즉각적으로 재차 압박을 가하는 복합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죠. 탈압박 능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달려드는 상대로부터 공을 지켜내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볼을 지켜내고 전방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죠. 공을 지키는 능력이 중요하면 그냥 메시 같은 선수를 중원에 배치하는게 싸비나 이니에스타, 알론소 이런 선수들보다 훨 낫죠. 아니면 엄청난 피지컬로 달려드는 선수들을 다 튕겨내버릴 수 있는 선수를 쓰던가. 결국에 수비력만 좋은 선수들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건 볼을 뺏어도 전방으로 보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전체적인 압박 능력의 향상으로 굳이 수비형 미드필더가 볼을 뺏어내지 않아도 되는 전술적 흐름 때문이죠.

과거에는 압박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볼을 빼앗고 공을 가진 선수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수준에 그쳤었기 때문에 (압박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할만큼 마라도나 영상을 보면 마라도나 개인은 막지만 마라도나의 패스에 주구장창 털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레돈도처럼 수비부터 공격까지 혼자서 다 해먹는 괴물이 등장했지만 압박의 개념이 점점 발전하면서부터 천재 한 명에게 의지하는 전술(레돈도의 사기적인 퍼포먼스와 비슷했던 혼자 다 해먹는 전술 형태는 독일의 리베로 시스템으로 역시나 동시기 인물인 잠머의 은퇴와 더불어 사장됩니다.)은 도태되기 시작합니다. 그 첫번째가 레돈도처럼 굳이 드리블로 전진하지 않아도 롱패스를 통해 전방에 볼을 배급할 수 있는 선수들의 등장이죠. 이건 레돈도와 동시대 선수였던 과르디올라나 알베르티니에게서도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포문을 열어제끼고 전술적인 개념으로 안착시킨건 수년 후의 피를로 그리고 조금 더 뒤의 알론소입니다. 상대적으로 압박이 적은 후방에서 정교한 패스를 통해서 공격을 전개한다는 개념이었죠. 이것은 당시 밀란의 전방에 포진한 선수들이 위치선정의 귀재였던 인자기라든가 완전체였던 쉐브첸코 그리고 모든걸 박살내버릴것 같았던 카카가 전방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고 피를로의 부족한 수비력과 연계 능력은 가투소와 시도르프가 나누어 부담하는 시스템이었지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피를로의 직속 선배와도 같았던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예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크게 유행하진 못했던 무지막지한 전방 압박에 피를로 타입의 선수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아 물론 피를로와 같은 유형의 선수를 무너뜨리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건 퍼거슨과 박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는 어마어마한 전방압박을 통해서 후방으로부터의 전개를 철저히 견제했고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2선 이하 지점에서의 패스 루트 차단과 공간 차단이라는 개념이 박혀있던 시기였습니다. 결국에는 후방에서 공을 돌리다가 어찌어찌 전방으로 가면 어설픈 크로스 혹은 되도 않는 스루패스를 남발하던 시기죠. 딱 이 시기에 등장한 개념이 바로 스위칭입니다. (또 퍼거슨이네요. 스위칭을 통해서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던 압박 전술을 무너뜨려버립니다.)
 
하지만 방패가 두꺼워질수록 창은 날카로워지기 마련이기에 이러한 효율적인 - 하지만 정형화되어 있던 형태를 유지하던 - 압박을 무너뜨리는데 주효한 역할을 한 것은 스위칭 전술과 더불어 전술적인 두뇌가 뛰어나면서 운동 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2~3선에 배치해서 허점을 파고드는 전술입니다. 전술적인 이해도가 뛰어나고 왕성한 활동량을 갖춘 선수들로 압박의 빈틈을 후벼파게끔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4-2-3-1이 갖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필드 플레이어들이 모두 압박에 능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압박 전술이 일상화되었기에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해서 수비력이 대단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그 부족한 부분을 공격진에 위치한 선수들로 메꾸는 대신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공격 가담을 통해서 촘촘한 압박의 틈을 뚫어내는 것이 현대 축구의 대세로 자리 잡은 4-2-3-1과 4-3-3의 핵심입니다. 두 전술 모두 측면 공격수에게 많은 공격 비중을 두고는 있지만 측면 공격수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들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후방에 있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갑자기 박스 안쪽까지 미친듯이 뛰어들어오는데 그거 안막을 수비수는 없을테고 자연스럽게 측면의 수비는 헐거워지게 됩니다. (물론 이 타이밍을 제대로 맞춰내는게 바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역량이겠지만...)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족한 수비력을 이러한 박스 투 박스 탑입의 선수들이 분담하기도 하구요.
 
이러한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선수를 개인적으로 꼽자면 레알 마드리드의 케디라입니다. 케디라의 경우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 잉여다 등의 저평가의 대상이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선수의 위치선정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적재적소에 있습니다. 물론 너무 적재적소에 있다보니 득점 찬스에서 홈련을 친다든가 하는 경우는 있지만...현대 축구 전술의 정점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바로 케디라입니다. 케디라의 롤을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한게 어떻게 보면 정말 딱히 하는게 없기 때문이고 어떻게 보면 필드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대 축구의 대세 가운데 하나인 4-2-3-1은 90년대부터 존재해왔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조합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물론 초창기에는 상대로부터 볼을 빼앗아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볼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했었고 이러한 역할을 극한으로 보여줬던게 20006년의 프랑스 대표팀의 마켈렐레-비에이라 라인이었죠. (공격형 미드필더가 지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을런지도...) 다만 이 전술, 즉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조합은 그 두 선수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수준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4-2-3-1이지만 실질적으로는 2명의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거나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를 두는게 일반적이고 그나마 나은게 알론소를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인 마스체라노가 보좌했던 리버풀이나 피를로를 보좌했던 가투소의 밀란정도?
 
물론 박스 투 박스 유형의 선수들이 최근에 등장한 유형은 아닙니다. 비에이라라든가 로이 킨, 다비즈 같은 선수들은 훌륭한 표본이죠. 하지만 그 선수들은 기본적으로는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롤을 수행하다가 공격시에 할게 없어서 올라오는 어떻게 보면 베켄바워-마테우스-잠머로 이어지는 리베로 계보의 연장선에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외의 대부분의 박스 투 박스 타입의 선수들은 머릿수를 채워주고 한 두명의 수비수를 붙잡아두거나 한 두명의 공격수를 붙잡아주는 역할에 국한되었을 뿐이고, 현대적인 4-2-3-1에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가져야할 핵심적인 역할은 앞 뒤의 '박스'가 아니라 가운데의 '투'기 때문이죠.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가 왠지 흔해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클래스에 도달한 선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정말 소수에 가깝습니다. 탈압박 능력과 패싱력을 겸비한 선수들부터가 드물고 여기에 수비력까지 겸비한 선수들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죠. 하지만 신개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들의 조연이 빛날수록 이 선수들의 역량은 빛을 발하게 됩니다. 아니면 그냥 그런 애들로 깔아버린 전관왕 시절의 바르셀로나가 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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