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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나의 독일유학...히틀러와 나의 투쟁...
게시물ID : humordata_7050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제노리모
추천 : 7
조회수 : 1074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01/01 14:57:17
벌써 20년 쯤 된 독일 유학중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베를린을 처음 밟았을 때는 1991년 새해, 바야흐로 서독과 동독이 통일하고 독일 각지에서 축제 분위기가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조금은 우울한 유학이었는데 거의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었다 싶이 온 독일행이었기 때문이다. 확실치 않는 미래였지만 나도 나름대로 행로를 정하고 열심히 공부하마라고 스스로 위로 삼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전공은 독어독문학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영어가 더 능통하고 편했다. 그래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설픈 내 독어 실력이 들통나버렸고 영어로 겨우겨우 하숙할 집에 다다르게되었다.
내가 3년여간 머문 그 하숙집은 베를린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교외에 있었다. 과거 독일에서 공부했던 고모부의 인맥에 추천과 추천을 거듭하여 연결된 집으로 76살의 노부부가 주인인 집이었다.

주인 어른은 야콥 어르신이었는데, 그의 정확한 키는 모르지만 176인 내 키에 가늠하기에 거의 180은 되어보였고 노인이지만 여전히 강골한 골격에 흔히 카이저 식이라 불리는 멋진 콧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늘상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며 주위 사물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곤 했는데, 녹안의 두눈은 깊고 또 바라보는 이를 왠지 주눅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처음 그와 악수했을 때, 둔직한 그의 손은 참 걸걸하신 양반이네 라고 느끼게 했다.
하숙집에서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나에게 여러모로 참 잘해주었고, 특히 사모님은 밤에 춥지 않았느냐 뭐 먹고 싶으냐 라고 지나칠 정도로 물으면서 나를 보살펴 주었다.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한국에서 온 음식들이 도착하면 꼭 맛보이게 해드렸는데, 부인은 싫어하셨지만 야콥 어르신은 김치가 상당히 끌렸는지 매일매일 먹더니 급기야는 치즈에 싸서 먹는 식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노부부는 하숙 집을 오랜기간 꾸렸지만 동양인은 처음이었고 또 여러가지로 궁금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오리엔탈리즘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동양적인 미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단정하고, 언제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동양인이 되어갔다. 그점만 빼면 하숙집 생활은 유학생으로서는 매우 좋았다.
6개월 정도 지나자 노부부와는 편하게 지내게 되었고, 가끔씩 찾아오는 그들 부부의 자식, 손자들과 함께 식사할 정도가 되었다. 언젠가 내가 '칠교놀이' 장난감을 손자들에게 선물하자, 왠지 야콥 어르신이 더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아 같은 것을 드렸더니 매일 밤마다 칠교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씨름하는 어르신을 볼 수 있었다. 야콥 어르신은 무뚝뚝하고 걸걸했지만 한편으론 호기심많고 아이다운 면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되었다.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하던 나는 한편으로 다른 분야의 영역에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것은 사회학이었는데, 사회 정치구조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건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 까닭은 굉장히 뜬금없는 나만의 경험으로, 베를린 시내에서 빠른 한국말로 떠들기에 한국인인가 하고 말을 걸면 북한 사람이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어색한 관계, 그리고 왠지 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총총 걸음으로 사라지는 북한 사람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레 무엇이 같은 민족인 그와 나를 가르는가에 생각이 들었고, 이윽고 그것은 곧 사회구조의 차이라고 결론내렸다.
부전공으로 사회학을 들으면서 나는 많은 양의 레포트에 파묻혀살게 되었는데, 그때 대다수 레포트의 주제가 독일의 나치즘이었다. 독일 통일 당시 브란트 총리의 '무릎꿇기' 이후로 독일 사회는 더욱 신랄하게 나치즘에 대해서 분석하고 비판하기 시작했고,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포트를 작성하면서 자연스레 나치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날 하숙집에 누워있다가 머리가 아파 아스피린을 찾을때 거실 한켠의 수납장 아랫단에 오래된 독일 군복이 가지런히 개져있고, 그 위에 루거 권총과 철십자훈장이 놓여있는 것을 보게되었다. 권총이야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유럽인들이라면 하나씩 기념으로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군복과 철십자훈장을 알아볼땐 조금 쇼크였다. 군복은 여러 서적들에서 본 사진으로 볼때 SS 친위대 군복임이 분명했고, 훈장은 정확히 알아보진 못했지만 공적이 상당히 높은 사람에게 주는 철십자훈장인것 같았다. 그때에는 나도 모르게 황급히 서랍문을 닫아버렸지만 그 이후로 여전히 내 머리속에는 군복과 훈장 생각으로 가득했고, 야콥 어르신을 볼때마다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크게 일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했다. 크게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야콥 어르신의 과거가 궁금했고 조심스레 흘러가는 말투로 물어봤던 적이 몇번인가가 있었다. 그럴때면 야콥 어르신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그래.. 그랬지'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계속 묻는 것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 나는 이윽고 물어보는것을 그만두었고 이대로 잊혀지는 듯 했다.


어느 날이었다. 한국인 유학생 모임때문에 평소 귀가하는 시간보다 2시간 가량 늦어서 하숙집에 들어갔다. 사모님은 이웃집으로 놀러가신듯했고, 야콥 어르신은 거실 쇼파에 몸을 편안히 기대어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마실 것을 따라 쇼파에 앉아 마시기 시작했고,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신문과 맥주를 즐겼다.
어색한 침묵이 10분 정도 흐를 때쯤, 야콥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네오 나치라니... 참!"
아마도 신문에서 네오나치에 관한 내용이 있는 듯했다. 이윽고 영감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하는줄 알아, 나도 네오나치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하겠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나는 빠르게 되받아쳤다.
"전혀 아닙니다."
"흥, 아니긴...."
어르신은 맥주를 들이키고 말했다.
"내가 나치 당원이었다는 건 어떻게 알게되었나?"
"서랍에서 군복과 철십자훈장을 보게되었습니다."
잠시 침묵에 흘렀다.
"스와스티카(철십자훈장)..."
영감님은 파이프 담배를 깊게 빨고 나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때 당시엔 나치 당원이 되는 것은 엘리트가 되는 길이었어. 법적 하자가 없고, 출중한 실력을 겸비해야 영광의 독일을 수호하는 당원이 될 수 있었지."
당시에 나는 대화를 어떻게든 끊었어야 했지만,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기회다 싶어 질문을 던졌다.

"SS 친위대셨나요?"
"그래, 나는 친위대였어. 원래는 청년돌격대였지만, 내 조국 독일을 보다 확실히 수호하고, 그분을 가까이서 모시고 싶었기 때문이지."
"그분이라면...."
"그래, 마인 퓨러(나의 총통). 제 3제국의 중심."
제 3제국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갑자기 어르신의 음성은 명랑해지고 빨라졌다. 담배연기 사이로 멍하니 응시하는 그의 눈은 과거를 헤메이고 있었다.
"그때에는 힘이 있었어. 힘의 시대! 규율과 엄격함! 퓨러와 함께라면 뭐든지 불가능한게 없어보였지. 지금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만, 나는 여전히 퓨러를 동경하고 있네. 영하 54도의 추위도, 빗발치는 적의 총탄도 두려운게 없었지."
잠시 목을 축인 영감은 나를 정면으로 보며 일갈했다.
"하지만 나는 신에 맹세코, 아우슈비츠의 사건들을 알지 못했네, 유태인들이 사라지는 것이 단지 거주지역이 바뀐 곳으로 이주했다고 생각했어. 나는 유태인을 한번도 죽인적이 없을 뿐만아니라. 죽일려고 생각 자체도 안해본 사람이네!"
높아가는 음성에 나는 이제 그만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평온해졌고, 오랜 시간이 지난뒤에야 나는 몇번이고 만류했던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히틀러는 어땠나요?"
"퓨러.. 퓨러는 말이지...."
"언젠가 퓨러를 실제로 본 적이 있었네, 실제로. 내 눈 앞에서. 그때가 아마도 1942년으로 기억하네. 내가 어떻게 부대의 대표자로 뽑히게 되어 그분과 독대를 하게 되었지..."
히틀러와 독대라니, 이 얼마나 역사의 산 증인인가. 나는 조금 긴장을 하고 물어보았다.
"히틀러.. 총통과 무엇을 했나요?"




 

 

 

 

 

 

 

 

 

 

 

 

 

 

 

 

 

 





"바로 이짓을 했지!"
야콥 어르신은 순식간에 일어섰고, 그와 동시에 바지를 벗었다.
나는 조금 놀랬지만, 그동안 끓어오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도 마시던 음료수를 던지고 바지를 벗었다.
나이는 들었지만 야들야들한 어르신의 애널은 어서 넣어달라고 말하는 듯 했고, 끓어오르는 욕정과 양놈 애널 한번 맛보고 싶었던 나의 육봉은 거침없이 어르신의 애널로 돌격했다.
"으... 흥... 으.. 흥.. sehr gut!!!! sehr gut!!!(아주좋다)"
독일놈 신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거침없이 흔들어댔고, 지크 하일을 외치며 야콥 어르신도 엉덩이를 털어댔다. 부드러운 애널 감촉과 쭈글쭈글한 노환 피부가 융합되어 이게 천국인가 싶었다.
돌격청년대처럼 거침없는 돌격을 마친 나는 우윳빛 정액을 거침없이 쏟아넣었다.
극렬의 쾌감을 맛본 야콥 어르신은 그 길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3달간의 애널 집중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다.

현재 야콥 어르신은 돌아가시고, 나도 한국에 있지만.
후장으로 엮어진 우리 관계는 히틀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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