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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에 '미안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란 글을 읽고.
게시물ID : sisa_4754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난좀그렇다
추천 : 15
조회수 : 445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12/29 15:28:23
닉언급해서 죄송하지만, adnoctum님의 글을 읽고 느낀바를 적어보려 합니다.
시사게엔 뭔가, 내공이 높으신 분들이 많은거 같아, 제 부족함이 드러날까봐 부끄러워 함부로 글을 쓰지 못했는데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제 의견을 써보고 싶습니다.

일단, 너무 늦었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맞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요.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막았어야 했다면 이미 이명박 정권부터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21세기라곤 믿기지 않는 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줄줄이 일어나고 있죠.

하지만, '그래서 바뀔 거였으면 진작에 바뀌었겠죠'란 말씀에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겠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시위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만으로도 정권이 쉽게 바뀌어 왔다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역사속의 피로 물든 민주화 항쟁들이 '마땅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런 움직임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리비아나 이집트 등등 우리가 '최악이다'라고 느끼는 나라같은 상황이 되어 있었을 지 모릅니다.
역사엔 가정이 의미가 없다지만, '일말의 민주화항쟁도 없었을' 우리나라가, 지금 결코 '사람 사는 세상'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각자 살 길을 알아서 찾아가라고 하셨는데요, 어찌보면 맞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살 길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민을 가라는 건지, 아니면 지금 정부가 만들려 하는 세상이 '소수 재벌들을 위한 세상'이기 때문에 
재벌이 될 때까지 부를 열심히 축적하라는 것인지, 그 의미가 조금 모호해서 잘 이해가 가진 않습니다만
이민을 가거나 다른 나라로의 도피를 말씀하신 거라면, 저는 반대하고 싶습니다.

유럽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독일을 포함, 짧게 또는 길게 총 네 개의 나라에서 거주를 했습니다. 
입고, 먹을 돈 모아모아 여행을 하도 많이 다녀서 유럽에서 그린란드랑 아이슬란드, 볼리비아 빼고는 안 가본 나라가 없구요.
그리고 중간에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살며 느낀 바가 있다면, 유럽의 나라들에 비해 확실히,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불편해지게 만드는 점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유럽이 우리나라 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그 곳에서 사는 것이 천국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라 비판하셔도 할 말은 없지만, 객관적인 수치나 자료들을 대고 따져봐도 
제 주장이 100% 엇나간 건 아닙니다.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만들어진 천국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기 위해 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살 맛 나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참 살기 좋은 나라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 가는 거죠.
아직 너무나도 부족한 대학원 준비생일 뿐이지만, 적어도 제가 해외경험을 쌓고 여행을 다니며 
'사람 사는 모습'을 봐 온 느낌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염세주의에 물드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이 도움이 된다는 게 아닙니다. 상황은 정확히 판단하고, 위로에 가려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겠지만
이미 연대되어 서로 힘을 모으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하고, 갈라서라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짧은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친구 중에 시위에 나가는 것을 조금 망설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건물이 공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침탈되었던 그 날, 저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대문으로 향했고
그 소식을 친구에게 전했지만 친구는 망설이다가 중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저는 내심 서운했던 마음을 친구에게 비춰버렸죠.
'니가 우물쭈물 했던 게 서운하다'고요. 그랬더니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나는 엄청난 용기를 내서 시위에 나온건데,
너는 그런 나를 비판하는 거냐고.. 그 말을 듣고, 저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친구도 마음이 풀렸지만
그 때 친구가 장난을 치며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진보가 왜 지는 줄 알아?"
"왜?"
"분열하니까."

분명히 친구는 이 말을 장난식으로 했으며 그 분위기 또한 장난스러웠지만,
저는 이 말 한 마디가 가슴 깊게 다가와, 그동안 '너는 왜 시위에 나오지 않느냐'라고,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을 일삼았던 제 모습을 많이 후회하고, 뉘우쳤습니다. 

adnoctum님, 저는 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그 결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미 연대되어 있는 사람들의 잔잔한 물 위에 돌을 던지지는 말아주세요. 우리가 언제 100도씨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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