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군에 입대한 사람들의 목표는 아무 사고 없이 몸 성히 전역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근무를 나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보면 크고작은 사고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찰과상이나 타박상 같은 외상부터
복통이나 두통같은 내상까지 다양한 부상들을 당하게 되고 심한 부상이 아니라면 보통 부대 안에서 해결을 하게 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의무실 안에는 전설의 명약이 존재한다. 진시황이 찾아헤매던 전설의 불로초를 제조해서
만들었는지 복통과 두통 치통을 비롯한 모든 내상을 치유할 수 있는 알약과 베이고 터지고 부러진 곳에 바르기만 해도
상처가 치유되고 새살이 돋고 부러진 뼈가 붙는 레드드래곤의 붉은 피로 만든 전설의 빨간약이 바로 그것이었다.
알약과 빨간약은 의약계의 혁명이었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수 있는 의약품계의 유상철이었다.
우린 아니었지만 의무병은 분명히 그렇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가 아픈 나와 머리가 아픈 후임에게
같은 알약을 줄리 없었으니까. 부대 내에서 당한 부상에 대한 처방은 저 두개가 전부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가끔씩 큰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부상들은 대개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군대의 관습중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자고있는 고참을 깨울 때 고참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것과
내무실에서 고참의 몸을 넘어다니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무슨 나병환자도 아니고 왜 그렇게 터치에 민감한지 알수가 없었다.
때문에 곤란한 일이 종종 발생하고는 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침상청소를 할 때였다. 한참 침상을 청소하다가
가운데 고참이 떡하니 누워있기라도 한다면 침상밑으로 내려가 이동한후 다시 침상위로 올라가 청소를 해야하는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사실 보통 고참들은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살짝 몸을 움직여 지나갈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주는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어딜가나 지랄맞은 고참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한번 자리를 잡고 누우면 눕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며
절대 비켜주지 않은 고참들도 있었다. 동래부사 같은 새끼들.. 자는가 싶어 살짝 지나갈라 치면 귀신같이 눈을 뜨고
나 안잔다. 라고 말하는 고참들이 있었다.
청소시간이었다. 후임 하나가 침상청소를 위해 침상을 쓸고 있는데 고참한명이 침상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후임은 그 고참을 피해서 침상 밑으로 내려가려 하자 왠일인지 그 고참은 그냥 지나가라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후임이 지나가려는 순간 그 고참은 잽싸게 침상위로 다시 몸을 뉘웠다. 그 후임을 괴롭힐 심산으로 저지른
행동인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빨리 드러눕고 말았다. 이미 하중이동이 시작된 후임의 몸뚱아리는 제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앞으로 전진했고 그대로 고참의 갈비뼈를 짓밟고 말았다. 그 고참은 숨을 쉴수 없다며 쉭쉭댔고 이거 큰일났구나
싶어 의무실로 그를 데려갔지만 의무병이 닥터K가 아닌 이상 그 열악한 상황에서 딱히 손쓸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 고참은 급히 후송되어 병원에서 몇달을 보내야 했다.
다음 희생양은 후임이었다. 갓 일병을 달았던 그 후임은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었다. 불침번이 어느정도 짬을 먹고나면 꿀빨수 있는
근무였지만 나같이 짬이 안되는 후임들은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깨지 않는 고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흔들어 깨울수도 없는 일이라 하염없이 고참의 이름을 부를수 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근무가 익숙해지니 후임도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참들마다 이름을 부를때 반응하는 음역대가 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돌고래 같은 인간들.. 어떤 고참은 높게 어떤 고참은 낮게 어떤 고참은 리드미컬하게...
그렇게 불침번 근무를 서다가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실로 들어갔다. 보통 부사수가 나보다 짬이 안되면 부사수만
깨우면 알아서 사수를 깨워 근무를 나가지만 그 후임보다 후임들은 별로 없었기에 부사수를 깨우고 다른 소대에 있는 사수를
깨우기 위해 옆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내무실에 들어서서 그 고참을 찾아내고 후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참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깊은 잠에 빠졌는지 고참은 쉽사리 잠에서 깨지 않았다. 거기다가 무슨 꿈까지 꾸는 모양인지 혼자서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쩔수 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조금씩 그 고참의 얼굴쪽으로 다가갔고 그 순간이었다. 계속 웅얼거리며 꿈틀대던 그 고참은
갑자기 김미파이브! 라고 외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후임의 한쪽 눈가엔 그 흔적이 선명하게 남게 되었다.
다음날 후임의 눈덩이는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후임은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참을 고심해야 했다.
그리고 난 아직도 그 김미파이브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