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서 충격적인 반전은 열차 주인이랑 꼬리칸 리더 할아버지랑 서로 연락하는 사이였고, 꼬리칸의 리더할아버지가 열차내의 개체수를 조절하기위해 젊은이들을 선동해 난동을 피우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는데.
문득 오늘은 그런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토요일에는 아버지한테 송년회하자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하지만 거절했어요, 집회에 한번도 가보지 않아서 평소에 죄책감이 좀 있었기에 28일에는 꼭 참석하려고 했었거든요,
그 죄책감이란 꽤나 오랫동안 쌓였던것이었습니다.
2011년 9월에 나꼼수를 접하면서부터 작년 이이제이를 듣고.. 지금까지 독립을 위해, 독재타도를 위해 희생해온분들 덕에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살고있구나.
그리고 지금 다시 반년가까이 시청앞에서 집회를 여는데 가까이 살고있는 나는 한번도 나가보지 못했구나.
여름에는 나가려고 했었습니다. 8월에요, 그런데 귀찮아서 안갔어요,
계속 미안하고 친구들에게나 다른사람들에게 정치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할 용기가 안났습니다.
나조차 방관자로만 남아있었기에 누구한테 이 사회는 좀 아닌것같다고 상세한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지만 할 수가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꼭나가야지 다짐하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가족끼리 만나자는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집회에 나가야해서 못간다고 말했죠,
집회참석에 반대는 안하셨지만 우선순위를 말씀하시더라고요, 가족들이 먼저가 아니냐면서요, 그래서 전 아닌것같다고 했어요
더 과거로 가보자면 저는 imf때 집이 좀 기울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잘못한게 없었지만 사회가 불안정해서 사업이 망했고,. 이혼을 하고, 좀 혼자가 되었죠,
그게 생각이 났어요, 아무리 가족끼리 화목하더라도, 사회가 무너지면 가정도 무너지는 구나...
그리고 요즘 살기 팍팍하잖아요, 헌법유린에 공권력이 격해지고 독재가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
그래서 한가하게 송년회하는 것보다 집회에 가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랬어요, 전두환의 독재를 반대하기 위해 시위도 해봤지만 누릴거 다 누리고 노태우한테 정권넘겨줬다고, 지금도 부정선거라지만 박근혜가 잘해먹고 있다고요,
철도노조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파업을 하는거라고.
막상 저는 조리있게 반론을 못했습니다. 그냥 가야된다고만 했지
정의를 위해 나서는거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어려서 좀 혼자오래 살아서그런지.제가 집에서 간들어지게 챙겨주고 그러지 못하거든요,그래서 욕을 좀 먹고,
어찌저찌 다행이 시청에서 집회를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가슴속의 짐을 내려놓았다 싶었는데
오늘 파업 철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배신감이 많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철회하는척하면서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 하면서,
아빠말이 맞았던걸까.
철도파업과 집회에 힘이 실려 나가고 있었는데 파업철회라면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시민들의 결집은 어디로 가야하나.
코레일 사장과 철도노조원장과는 커미션이 있는걸까. 그래서 드라마틱한 경찰의 민주노총사무실 침략도 만들어진것일까.
뭔가 허무하게 마무리 되버리는 상황에 대선이후의 멘탈붕괴였어요,
뭐 이제 다시 보니 없는 말이었다는 거였다는것에 마음이 좀 정리 되지만. 불안감이 좀 늘었어요,
불신감이겠죠, 정말 대의를 위해서가 아닌 본인의 단체, 사람들을 위해서 파업도하고 집회도 하는걸까
애국심이라고,딱 하나 가슴에 품고서 추운 길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은 그냥 들러리로 끝나는 걸까.
그게 대한민국이고 거기에 순응해야 하는건가, 머리가 복잡했어요,
그래도 믿습니다., 내가 길거리에 나가서 박근혜가 내목소릴 못듣더라도
나를 욕한 아버지가 나를 다시한번 더 생각할것이고, 집회에간다고 말해주었던 내 아는 동생. 친구도 실제로 주변사람들중 집회에 가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한번더 생각 해주겠죠.
티비에서 집회참석자들을 북한과 관련되었다고 보도해도 아들이며 친구인 내가 그곳에 있었기때문에 뉴스를 믿어주지 않겠죠.
직접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외치기보다는 주변사람들에게 피부에 와닿게 내가 먼저 행동하는게 우선인거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