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한국에서 딱 3년간 프로생활을 하고 다시 일본으로 간선수입니다 이선수는 어떤선수였나 검색하다보니 재미난 글을 찾아서 올려봅니다
[김일융이 84년에 한국에 왔을때는 일본의 퇴물 투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명부에 비해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84년 시즌이 끝나고 85년 스프링캠프를 LA다저스와 하게 되는데, 여기서 다저스의 에이스인 페르난도 발렌주엘라에게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구로 불리우는 스크류볼을 전수 받는다. 물론, 김일융이 구사하던 스크류볼은 짝퉁이었지만,,, 아무튼 85년에 김일융이 구사했던 짝퉁 스크류볼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구질은 현대 야구에서도 통할 수준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김일융 자신도 그것을 느겼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프로야구에 복귀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86년에 김일융은 당뇨에 의한 탈수증으로 무려 20kg 이상이 감량되는 고생을 한다. 선수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다음과 같은 성적을 기록했다. 86년 방어율 2.53, 19게임 13승 4패 0세이브 7완투 2완봉 138.2이닝 이게 말이 되는가? 탈수증으로 선수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노장이, 그것도 무려 20kg 이상이 감량된 상태에서 이런 성적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만약, 85년에 김일융이 기록 관리를 했다면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지 못했을까? 하고도 남는다. 남는 정도가 아니라 노장만 아니었으면 0.5 이하도 가능했다. 김일융은 일본에서 83년 퇴물로 퇴출될 때까지 447경기 80승 72패 36세이브 1443.2이닝에 3.16의 방어율을 기록했던 선수다. 페르난도 발렌주엘라에게 스크류볼을 전수받은 김일융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그 늦은 나이에 일본 프로야구에 복귀하는데, 87년부터 91년까지 5년간 세운 기록을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124게임 35승 47패 3세이브 680.2이닝에 3.87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당시에 일본과 한국의 수준 차이는, NPB >>> 죽었다 깨어나도 극복할 수 없는 수준 차이 >>> KBO 였다. 김일융은 일본에 복귀하자마자 10승 투수가 된다. 그 노장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