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장자연 리스트 건으로 이종걸 이정희 의원들을 고소한 모양인데, 저 얘기를 이종걸 이정희 두 의원에게 해 주고 싶어요.
마음보다 몸이, 생각보다 말이 앞서면 피곤해져요. 알 만한 사람들이 왜들 그랬을까요? 피의자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갈 것도 없죠. 당시 방씨 부자는 피의자도 아니었고, 단지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아 조사대상에 포함된 사람들일 뿐이었으니까요. 설사 두 방씨가 장자연씨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고, 그래서 나중에 검찰조사든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든 그게 사실임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두 의원이 그 시점에 두 방씨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건 실수에요. 조선 방가들에 대한 의혹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 두 의원은 그들의 조심성없는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할 거에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백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법의 이념이라죠. 근데 보통 사람들도 아니고 입법부에 있는 사람들이 저러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해져요. 그래도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서 봐 주고 싶지만 두 의원의 행위에 대한 반응들을 보고 있으려니 더욱 더 깝깝해져요. 절차는 엿 바꿔먹으라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 뭐더라, 공익? 그거나 가서 엿 바꿔먹으라고 해요.
그나저나 그 분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들 그런 걸까요? 물론 이유야 본인들만 알겠지만 개인적으론 차라리 '조선일보에 대한 적개심 + 언론권력이 검찰을 통제할 것이란 망상'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짜증이 복받친 나머지 아무 생각없이 툭 튀어나온 말이길 바래요. 그건 어쨌든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훈련만 하면 해결되니까(말은 쉽지). 근데 머릿속에 '조선일보에 대한 적개심 + 언론권력이 검찰을 통제할 것이란 망상'에다가 '세상은 썩었고, 내가 정의다!'란 생각이 더해져 확신에 차서 내뱉은 말이라면 이건 좀 심각해요. 답이 없거든요.
만화 데스노트에서 왜 결국 L이 라이토를 이기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좀 짜증날지도 모르겠지만 정의의 편에 서려면 지켜야 되는 게 있는 거에요.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나쁜 놈이지만(죽일 만큼은 아니고) 그 강호순이 그의 얼굴과 이름을 제일 먼저 공개한 모 신문을 고소하겠다면 난 강호순 편이 될 거에요. 마찬가지로 방씨 부자가 장자연씨한테 무슨 짓을 했든지간에 이번 두 의원 고소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편이 될 거에요. 잘못을 하면 잘못한 만큼만 벌을 받으면 되고, 오바질은 언제나 적절하지 않아요. 세상엔 수없이 많은 나쁜 놈들이 있지만, 그들보다 훨씬 위험한 건 정의와 도덕을 전세낸 사람들,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에요.
별로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다 보니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글도 쓰게 되네요. 조선일보는 놔두고 굳이 이종걸 이정희 의원만 까는 건 다 이쪽에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에요. 믿거나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