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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파즈는 그런 핑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피식 웃었다.
"핑키가 온 곳엔 인간들이 산다고했죠? 거기는 어떤 곳인가요?"
와인을 처음 마셔보는 핑키는 빨대를 물더니 펀치 마시듯 목으로 꿀꺽꿀꺽 넘겼다.
"음... 내가 온 곳은 마법같은게 없어. 용같은거도 없지."
토파즈는 눈을 굴리더니 천장 쪽을 보며 생각했다.
"마법이 없으면 굉장히 불편할 거 같은데..."
"음. 마법이 없어도 그렇게 불편하진 않아. 물론 마법이 있다면 더 굉장하겠지만 마법에 버금가는 것들도 많이 있어. 그리고 이곳과는 달리 인간 세계는 굉장히 험악한 곳이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항상 일을 해야해!"
"...... 별로 다를거 없는데요. 여기서도 먹고 살려면 돈은 벌어야해요."
핑키는 그 새 와인을 다 마셨는지 빨대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맞아, 그랬지. 그래서 아까 엄청 놀랐어. 여기에 돈이 있는지는 몰랐거든."
"뭐... 사는 곳이 다 똑같긴 하죠."
"그래도 진짜 다른건 하나 있어!"
"뭐죠, 그게?"
토파즈는 호기심에 차며 물었다. 핑키는 지나가는 포니에게 웃으며 발굽을 흔들며 인사했다.
"여기는 굉장히 평화롭다는거야. 물론 내가 있는곳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하긴 하지만 아주 가끔 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든. 그런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하지만 여기는 다르잖아. 모든 포니들이 화합하며 평화롭게 살잖아?"
핑키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토파즈는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 그건 아닙니다. 다른건 몰라도 이퀘스트리아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뭐?! 말도 안돼!"
핑키가 놀라며 소리쳤다. 토파즈의 표정은 점점 어두운 빛이 짙어진다. 그의 목소리는 농담이라고는 한점없는 진지한 목소리였다.
"가드란게 왜 생겨났겠어요? 이퀘스트리아는 여러모로 불안한 국가입니다. 바깥으로는 미지의 생물들이 위협을 가하고 있고 내부에서는 항상 잠재적 반역자가 언제 생겨날 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마법의 힘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뛰어난 마법을 가진 자가 흑심을 품게 된다면 이퀘스트리아는 큰 혼란을 겪습니다. 실제로도 이퀘스트리아는 여러번 위기를 겪었고요. 다른건 몰라도... 이퀘스트리아는 절대 평화로운 곳이 아닙니다."
"하... 하지만... 그건 옛날이고 지금은 다르잖아! 지금은 이렇게 축제도 즐기고 하잖아!"
핑키는 당황해하며 반박했다. 이퀘스트리아는 알면 알수록 핑키의 동심을 박살내버리는 곳이었다. 물론 트와일라잇이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어 자기 멋대로 상상한 것 뿐이지만 이렇게 자신의 상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뛰어넘는 곳인줄은 전혀몰랐다.
토파즈는 피식하고 웃었다. 비웃음은 마치 차가운 보석처럼 냉담했다.
"한가지 알려드릴까요? 여기 크리스탈 왕국은 불과 1년전만 해도 없었어요. 크리스탈 포니들은 솜브라 왕이라는 포니에 의해 무려 천년동안 눈보라속에서 갇혀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말이죠. 그 때의 기억은 없지만 모든 포니들 마음엔 그 시절에 대한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천년의 시간이 흘렀다는걸 적응하기 위해서도 큰 노력이 필요했죠."
"그런..."
핑키는 시무룩해진다. 토파즈의 눈은 불안한듯 미동하고 있었다. 그는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얘기는 핑키에게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크리스탈 포니들은 모두 잊고있는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부 알고있을겁니다. 솜브라왕이 사라져도... 우리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영원히 쫓아올거란걸..."
"토파즈...?"
핑키는 토파즈의 눈앞에서 발굽을 흔들어보지만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이제는 그의 말은 중얼거림으로 바뀌었고 그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핑키는 이제 더이상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머리속을 뒤적거렸다.
뿌우-!
"으악!"
갑자기 귀를 찢는 피리소리에 토파즈는 놀라며 소리쳤다. 토파즈는 상황판단이 안되는지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토파즈가 앞을 보자 보이는 건 카쥬 피리를 입에 물고있는 핑키였다.
"정신차려 토파즈!"
"아... 죄송합니다."
토파즈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토파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게다가 사실은 천살먹은 할아버지라니 충격인데?"
핑키가 깔깔 웃으며 말하자 토파즈는 얼굴을 붉히며 발끈했다.
"할아버지라뇨!"
핑키는 여전히 소리내어 웃었다. 토파즈는 그 웃음을 보더니 다시 피식 웃었다.
"방금 제가 한 얘기는 잊어주세요. 관광객으로 온 분한테 너무 어두운 얘기를 했네요. 원래 이런 얘기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데..."
"아냐 아냐.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털어놔야지. 난 토파즈의 친구잖아!"
"... 이렇게 얘기해본게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크리스탈 포니들도 외적으론 안전하다는 것과 내적으로 어딘가 불안해 괴리감을 겪고 있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이런 화제에 달가워하지 않을테니 입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걱정하지마. 내 친구 트와일라잇도 있고 케이덴스 공주님도 있잖아. 게다가 토파즈가 이렇게 지키는데 뭐가 걱정이야? 크리스탈 왕국은 앞으로도 평화로울걸?"
"물론 그렇긴 하지만......"
토파즈는 또다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핑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되겠어! 아무래도 내가 살아온 곳의 마법을 보여줄 때가 왔군!"
"네? 거기에 마법 없다면서요."
토파즈는 두발로 일어선 핑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핑키는 폴짝 두발로 뛰어가더니 맞은편 토파즈한테 걸어가 두팔로 꼭 껴앉았다.
"피.... 핑키?!"
당황한 토파즈가 몸이 굳어 꼼짝을 못했다. 핑키의 몸이 토파즈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토파즈는 핑키의 풍성한 갈기에 주둥이가 닿았다. 분홍색 갈기에는 왠지 솜사탕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 마법은 '허그'라는 거야. 내가 온 곳에는 이렇게 하면 상대가 편안해지는 마법에 걸리지. 어때?"
핑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그는 여기에도 있는데요..."
토파즈는 얼굴이 붉어진 채 핑키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때 좀 진정이 됐어?"
토파즈는 진정은 커녕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터질듯 붉어졌다. 그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핑키는 웃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난 크리스탈 와인 하나 더 마실래. 토파즈 너는?"
"전 괜찮......"
토파즈는 머뭇거렸다.
토파즈가 천년이나 갇혀있는 동안에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그 중 가장 변한것은 새로운 공주의 존재였다. 자신이 천년전에도 크리스탈가드였다는 사실 때문에 토파즈는 지금도 가드를 하고있었다. 너무 당연하게 그의 역할을 임하고 있지만 사실은 석연찮은 부분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케이덴스 공주는 자신이 크리스탈 왕국의 새 지배자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그 어느 크리스탈 포니도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포니를, 게다가 크리스탈 포니도 아닌 포니를 우리가 추앙해야 하는건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녀는 사랑을 상징하는 공주였지만 정작 크리스탈 포니들의 슬픔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물론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고 케이덴스는 훌륭한 지도자임을 인정받았기에 의문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토파즈는 그런 의문을 속으로 묻은채 그저 자기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핑키를 만나고나니 그의 의문이 다시 도화선처럼 불타기 시작했다. 케이덴스는 자기가 지키는 크리스탈 가드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적어도 눈앞의 핑키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특별하게 대해준다. 진심으로 가드로써의 규율이 더 중요한걸까.
"저도 하나 주세요."
토파즈는 생각을 마친 뒤 조용히 말했다.
"오! 왠일이야?"
핑키는 웃으며 말했다. 토파즈는 대답대신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두 포니가 나란히 주점에서 나오자 해는 완전히 저물어져 있었다. 크리스탈 왕국도 빛이 없는 밤에는 결국 다를바 없었다. 거리에 놓여진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토파즈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땅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에 비해 핑키는 신이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토파즈 저기 봐! 별들이 엄청 많아! 시골에 온 거같아!"
핑키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소리쳤다.
"핑키... 와인을 그렇게 먹으면 돈이 거덜난다고요... 무슨 음료수 먹듯이... 가뜩이나 비싼건데."
토파즈는 허리에 가벼워진 지갑의 무게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포니들은 그런 물질적인 것 없어도 살 수 있잖아? 내가 살던 곳은 돈이 전부였다고."
"여기서도 돈은 중요하다니까요!"
핑키는 별에 정신이 팔려 듣고있지 않은듯 했다.
"이퀘스트리아는 정말 신기해. 볼수록 새로운 곳이기도 하면서 익숙하거든. 마치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야. 내 상상과는 다른곳이지만 굉장히 좋은 곳 같아."
"자국민으로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네요."
핑키는 머릿속을 뒤적거리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화면은 인식이 안돼 사용은 못하지만 시간은 볼 수 있었다. 현재 시간은 9시 11분이었다. 혹시나 방학이 끝나고 돌아가는데 인간세계에선 몇년이 흘렀다 같은 일이 일어날까 핑키는 걱정했지만 다행히 시간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 할 거 같아."
"그래야 겠네요. 겨울이라 그런지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해를 빨리 내리네요. "
"무슨 소리야? 해는 저절로 지잖아."
순간 툭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지갑이 떨어졌다. 토파즈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린채 커진 눈으로 핑키를 바라봤다. 그는 말그대로 보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핑키는 그런 토파즈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토파즈는 헉하고 숨을 삼키더니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는 급하게 핑키의 입을 막았다.
"왜으애 오아즈?"
토파즈는 계속해서 불안한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핑키는 그 모습이 재밌는지 따라했다. 토파즈는 어두운 골목길을 몇번이나 살피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핑키의 입에서 발굽을 뗐다.
"핑키 파이. 이퀘스트리아에서 절대 해선 안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절대 절대 절대 셀레스티아 공주님에게 신성모독을 해선 안돼요. 여기선 셀레스티아 공주님이 해를 뜨고 지게 한다고요!"
토파즈는 핑키의 귀에 속삭였다.
"그런거였어? 여기선 마법으로 해를 지게 하는건지 몰랐거든."
"아무튼 조심해야합니다. 로얄 가드들한테 잘못걸리면 끌려가서 코로 바나나를 먹인다고요. 그들은 저처럼 무르지 않고 자비도 없는 것들이라고요!"
"코로 바나나를? 무서운게 아니라 웃길거 같은데 아하하!"
"웃을 일이 아니라고요!"
상황의 심각함을 전혀 모르는것 같은 핑키를 보며 토파즈는 걱정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포니가 크리스탈 왕국을 나가서도 무사할 수 있을까. 토파즈는 몇번이고 당부를 한 뒤 핑키의 대답을 받아냈다.
성으로 돌아온 핑키는 토파즈의 안내를 받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핑키는 방으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거 같지만 여행을 온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오늘 막 방학을 하고 이곳으로 여행오기를 정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결국 혼자 이곳에 오게됐다.
여러모로 급하게 온 여행이지만 핑키는 충분히 만족하고있다. 동화나 영화에서만 보던 성에서 머물고 공주님도 만나고 토파즈라는 친구도 사귀었다. 또 평화롭기만 하던 곳에도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여행기간이 방학 동안만이라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였다.
핑키는 아직도 궁금한 것이 천지이고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쉬기로 했다.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도 해서 피곤하기도 했다.
그 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 토파즈가 방에 들어왔다.
"그럼 전 밖에서 대기할테니 용무가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토파즈는 성으로 돌아오고 나서 다시 한 마리의 크리스탈 가드가 되어있었다. 핑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웃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다.
"토파즈!"
핑키는 문을 열고 나가려는 토파즈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토파즈는 놀랐는지 화들짝 소스라쳤다.
"서... 성안에선 제가 이름 부르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토파즈의 당황한 모습을 보자 핑키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인데요?"
"아냐. 아무것도 아냐! 다시 토파즈구나!"
토파즈는 실없는 말에 피식 웃었다.
"뭐에요. 그게."
토파즈는 다시 문을 열고 나가려다 머뭇거리더니 뒤를 돌아봤다.
"저기 핑키..."
토파즈는 말을 꺼내더니 망설이며 입을 오물거렸다.
"혹시 여기 언제까지 있는거죠?"
질문은 평범했지만 토파즈는 힘들게 말한 구석이 있었다. 질문을 꺼내고 나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핑키의 대답을 기다렸다. 핑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잠깐 생각에 잠겼다.
"글쎄. 일단 여기 개최식 파티 준비가 끝날 때 까진 있을거야. 아마 2~3일이면 끝나지 않을까? 그 다음엔 트와일라잇을 찾으러 갈거고."
핑키의 대답에 토파즈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바로 성을 떠나시는건가요...?"
"응. 트와일라잇을 찾아가고 이퀘스트리아를 여행할거야."
토파즈는 말없이 끄덕였다. 그는 다시 핑키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복도로 나온 토파즈는 한참동안이나 핑키의 방앞에 서있었다. 그는 천장의 크리스탈 조명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2,3일이라......."
토파즈가 중얼거렸다. 토파즈는 복잡한 심정을 속 안에 짓누른 후 복도를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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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가 끝이 났습니다! 여행기간이 총 3일이라 하루마다 1부, 2부, 3부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써왔던 분량도 다 바닥났습니다! 이제부터 실시간으로 분량을 맞춰야 하는데 과연 제 근성이 당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