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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눈물을 보이는 학생에게 하는 위로의 말
게시물ID : lovestory_709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ultra
추천 : 3
조회수 : 95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12/19 21:53:45
안녕하세요. 저는 재일교포 엄마입니다. 요즘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조금 힘들어요.








사춘기가 왔다는 기준이 뭔가요?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요즘은 말 안 들으면 무조건 사춘기라고 그래요. (청중들 웃음)

어떤 분이 “우리 애가 사춘기를 너무 일찍 시작했어요” 해서 

스님이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래요. 

이것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이고요.

“우리 애는 사춘기가 좀 늦어요” 해서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고등학교 1학년요” 그러면 고등학교 1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에요. 

사춘기가 아니고 엄마 말을 안 듣는다 이 말이지요?








네. 말을 안 들어요. (청중들 웃음) 요즘에는 제가 좀 많이 힘들어서요.








“애가 힘든 게 아니고 왜 어른이 힘들어요? (청중들 웃음)








저는 한국에서 결혼해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일본에 왔는데요,

재일교포로서 한국으로 시집을 가서 다른 엄마들보다 

교육같은 것이 부족해서 좀 자신이 없거든요.








질문자가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질문자는 개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청중들 웃음)

질문자가 생각할 때 한국말이 좀 부족해도 강아지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강아지보다는 낫구요. (청중들 웃음)








개도 새끼를 낳아서 키우는데 사람인데 왜 못 키우겠어요? 아무 문제없어요. 

부족한 것 없어요. 질문자가 그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 것은 한국말을 못하는 것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한국말을 못하면 그냥 일본말을 하시면 돼요. 

그러면 아이들은 한국말도 배우고 일본말도 배우고, 2개들 다 배우게 돼요.

(질문자가 눈물을 보이며 앉으려 하자, 청중들이 박수로 질문자를 격려해 줍니다.) 

앉지 말고요. 서서 계속 얘기해요. 벌써 그만 둘려고 그래요? 뭐가 어려워요?









저는 잘해주고 싶은데요, 다른 엄마들과 비교했을 때 저한테 불만이 많아요. 

밥 같은 것은 제가 잘 하는 데요. (청중들 웃음)








밥만 해주면 돼요. (청중들 웃음) 

옷도 빨래해서 입혀요? 빨래는 안 해줘요? 

질문자가 집안 청소는 해요?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살아요?








아니요. 깨끗하게 해놓고 살아요.








일본에서 살았으니 뭐든지 깔끔하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됐어요. 

그게 엄마가 해야 할 거 다에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려워요?








애들이 엄마한테 불만이 좀 많아서요. 

그게 좀... 제가 좀 많이 만만한 것 같아서요. 

애들이 남편은 좀 무서워하거든요.








아빠는 주먹이 있으니까 겁내는 것이고, 질문자는 주먹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것은 당연하지요.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힘드는 데요? 

남편하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아니면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요?








애들 때문에 그런 것 같애요.








남편하고는 문제가 없어요? 남편하고 문제가 없으면 애들하고 힘들 일이 없어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청중들 웃음)








특히 우리 딸이 자신감이 없습니다. 

저가 좀 많이 부족해서 딸이 그렇게 자신이 없나 싶어가지고요.








질문자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 그런 것을 자학이라고 그래요. 

자기를 학대한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또 뭐가 문제예요?








다른 것은 없습니다. (청중들 웃음) 








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을 안 들어요?








그냥 좀 많이 짜증을 내는 것 같애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얘기도 하고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엄마는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학교 보내주면 그것으로 다 했지, 

나머지는 엄마가 해 줄 의무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








알겠습니다.








강아지도 새끼 낳아서는 젖만 먹여주면 돼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요. 

학교 안 보내줘도 되고, 옷 안 입혀줘도 되고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학교도 보내주고, 옷도 입혀주는 것인데, 

그럴 때는 웃으면서 “아이고, 밥해주고 빨래해주면 됐지. 엄마가 뭘 더 해주냐?”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런데 ‘왜 나는 해주는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








저가 원래 자신이 없는 것 같애요.








질문자가 자신이 없으니 애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지금부터 “밥해주면 됐지? 뭐가 문제니?” 

이렇게 자신있게 답을 해주면 애도 자신이 있어져요.

















또 뭐가 문제예요? 얘기 꺼낸 김에 다 얘기해봐요. 

진짜 어려운 게 뭐에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일본 사람들은 자기 속내를 잘 안 밝힌다고 하더니 일본에 살아서 그래요?








우리 딸이 좀 아팠습니다. 몸이 아팠는데요,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는데요.








딸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면 되지요. 

의사가 할일이지, 질문자가 할일은 아니잖아요. 

진짜 뭐가 문제예요? 사는데 뭐가 힘들어요?








우리 딸이 저보고 “왜 태어나게 했냐?” 고 그런 얘기도 하고요.








너희 아버지하고 좋다가 보니 생겼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청중들 웃음) 

그러면 “나도 너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다. 

그럼 너는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청중들 웃음)

“왜 나를 낳았나?” 그러면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러면 비기잖아요. (청중들 웃음). 

뭐 그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고 그래요. 또 얘기해봐요. 스님이 다 답해 줄테니까요.









그냥 그런 것만 힘든 것 같애요.








그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힘든 것도 아니네요. 딸이 말을 어떻게 안 들어요?

그냥 얘기해요. 남 눈치 보지 말고요. 뒤에 계신 분이 누구에요? 시어머니요? 언니에요?








친구언니입니다.








친구언니인데 왜 자꾸 뒤를 쳐다보고 얘기를 해요. 스님을 보고 얘기를 해야지요.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통역을 해주고 있어요. 자기 표현을 못해서요.








그러면 천천히 얘기를 해보세요. 스님도 천천히 말 할게요. 자, 다시 물을게요.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뭐가 힘들어요?








애기 키우는 것이요.








애기는 밥만 주면 본인이 알아서 크는데 왜 힘이 들어요?








마음이 힘들어요. 짜증내면서 저한테 부족한 것을 많이 얘기할 때요. 

그냥 계속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해요








외모에 자신이 없을 때는 지체부자유 아이들이 있는 곳 있지요? 

거제도에 가면 애광원이 있는데, 그런 곳에 봉사를 시키면 돼요. 

그러면 ‘내가 건강한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내가 제대로 말하고 걷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이렇게 자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외모가 조금 열등의식이 있다는 것은 잘났다는 얘기에요.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못났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잘났기 때문에 외모에 열등의식이 있는 거예요. 

즉 딴 것은 다 괜찮은데 눈만 조금 크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눈에 열등의식이 생기고, 

눈을 수술하고 나면 코만 조금 높으면 미인인데 이렇게 해서 또 코가 문제고요. 

또 코를 고쳐놓으면 턱이 조금 문제인데 하면서 턱을 조금 깍아놓고, 

이러고 나면 볼이 조금 나와가지고 이렇게 해서 성형 병에 걸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스님같이 못난 사람은 

어디부터 뜯어 고쳐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문제가 안돼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얼굴에 흉터가 있다거나, 언청이라든지, 

아예 부상을 크게 입어서 그런 것은 예외이고요. 

얼굴에 열등의식이 있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어릴 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 소리를 들었는데 

본인보다 더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은 “괜찮아, 괜찮아. 너 잘났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엄마보다 잘났나? 못났나?”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 엄마보다 못 났으면,

“그것은 네 아버지 탓이야” 이러고요. (청중들 웃음) 

엄마보다 잘나도 “그건 네 아버지 공덕이다. 엄마하고는 관계가 없다. 

아버지한테 가서 감사하다고 얘기해라. 

네가 못생겼으면 아버지한테 가서 따지고, 칭찬을 해도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해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해요. 

애들 얘기에 무슨 어른이 그것을 듣고 상처를 입어가지고 질질 짜고 울고 그래요. 

그냥 애들이 하는 소리에요. 사춘기가 되면 온갖 것이 다 불만이에요. 

얼굴에도 불만이고, 옷 입는 것도 불만이고, 뭐도 해달라고 그러고 원래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나쁘냐?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시켜서 말을 잘 들으면 어린애이고요.

반항도 하고 불평불만도 하면 ‘우리 딸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렇게 지켜봐야지요. 그것을 힘들다고 하면 안돼요. 

애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애들이 커서 잘못돼요. 

왜 그럴까요? 조그만한 아이가 벌써 엄마를 괴롭히잖아요.

그러면 불효하는 거잖아요. 불효하는 아이는 크면 훌륭한 사람이 못돼요.

엄마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항상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아야 돼요. 

‘아이고,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엄마는 너 보는 낙으로 산다’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 애가 잘 돼요. 

그 이유는 아이가 엄마를 즐겁게 해준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가 효자라는 얘기거든요.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애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항상 즐거워야 해요.

아이가 그런 불만을 말하면 ‘아이고 그래그래. 그래도 잘났다. 

엄마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이렇게 웃고 넘어가야지 그것을 애들처럼 하나하나 다 가슴에 새기고 힘들어 하면 안돼요.

애를 둘이나 낳은 여자인데 지금 질문자는 애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청중들 웃음)








어른이 되세요. 

아이만 낳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하는 얘기를 그냥 웃어넘겨야 돼요.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그래’ 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요.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옆에 앉아 있는 딸에게 마이크 한번 줘봐요. 

스님하고 얘기하면 재미있어요.

학생은 뭐가 엄마한테 불만이에요? 그냥 얘기해봐요.

(지금부터는 딸과 스님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불만 없어요.








미인이지요? (청중들 “네” 하면서 웃음) 제가 얘기했잖아요. 

잘 생긴 사람이 성형한다구요. 스님같이 못생긴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할 여가도 없어요. 

학생은 지금 뭐가 힘들어요?








힘든 것 없고요. 그냥...








그런데 왜 엄마가 힘들다고 그래요?








(울음)








힘든 것 없는데 왜 울어요?








그냥 눈물이 막 나요.








엄마 눈물 닮았구나. 엄마 딸 아니라 그럴까 싶어서 그래요. (청중들 웃음)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요?








공부하는 게 힘든 게 아니고, 그냥 저보면 한심해요. 그냥 제가 싫어요.

그냥 다 불만이 많아요. 얼굴도 그렇고 그냥 다요. 그냥 못 생겼어요.

(청중들 “어머, 매력적으로 생겼는데…”) 








그냥 못 생겼어요? 

영화배우들을 너무 쳐다보다가 저래 생겨놓으니 그래요. (청중들 웃음) 

영화배우보다 못 생긴 것은 맞아요. 못 생겼어요. (청중들 웃음) 

자, 여기 스님 책상 앞을 봐요. 

여기 마이크 스탠드가 있고 여기 물병이 있고, 여기 물잔이 있어요.

자, 여기 물병을 들고 마이크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물병은 커요? 작아요?









작아요








물잔하고 비교하면 커요? 작아요?








커요.








그러면 이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








모르겠어요.








지금 본인이 한 번은 크다고 그러고 한번은 작다고 그랬는데 비교해서 얘기했잖아요. 

그러면 비교하지 말고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 물병 이것 자체는요?








몰라요.








그러니까 이 물병은 이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작다. 

이 물잔하고 비교하면 크다가 돼잖아요. 

그러면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것은 이 물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인식 상에 있어요. 

즉 스탠드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작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고, 

물잔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크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물병은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물병이 나한테 인식이 될 때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이 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인식이 된다 이말이에요. 

그러니까 큰 것하고 비교하면 작다고 인식이 되고, 

작은 것하고 비교하면 크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물병 자체를 두고 크냐 작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크냐 작냐고 묻는 그 용어를 빌려서 대답을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스님이 묻기를 ‘크냐? 작냐’고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스님이 묻기를 ‘무거우냐? 가벼우냐?’고 하면

‘가벼운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새것이냐? 헌것이냐?’ 라고 물으면 

‘새것도 아니고 헌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긴가? 짧은가?’ 라고 물으면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가 됩니다. 

즉 존재 그 자체는 존재 그 자체일뿐이지, 이것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이것을 한문으로 고쳐서 말하면, 

‘비대비소’,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것을 선적이 언어로 표현하면 ‘다만 그것이다’,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공이다” 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자네는 지금 이 물병을 가지고 작다고 얘기해요. 

작다고 얘기할 때는 스탠드하고 비교할 때 작다고 했는데, 

지금 본인이 못생겼다 라고 하는 말은 

지금 본인이 영화배우하고 본인의 얼굴을 비교해서 못생겼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말이에요. 

그러면 본인은 죽을 때까지 못생겨요. 

이 물명을 계속 스탠드하고만 비교하면 나는 영원히 작아요. 

그래서 내 존재 자체가 작은 줄 아는데 원래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비교를 스탠드하고 하기 때문에 작다고 인식되는 거예요.

이 물컵하고 비교를 하면 크다고 인식이 돼요.

자네가 2m 키의 사람과 비교를 하면 늘 작아요. 

그런데 150cm 키의 사람과 비교하면 늘 커요. 

그러면 자네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고 악한 사람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사함도 아니고,

‘나는 그냥 나다’ 이거예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자네는 꼴찌를 해요. 

그런데 본인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본인은 일등을 해요. 

그러면 비교해서 일등하고 비교해서 꼴찌를 하는 것이지, 

일등한다고 공부 잘 한다, 꼴찌한다고 공부 못 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본인보고 못 생겼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지 말고, 

본인이 못 생겼다 해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본인이 잘 생겼다 하고 우월감을 가져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본인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착한 아이도 아니고 악한 아이도 아니고, 

나는 다만 나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다 

존엄하다.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차별해서는 안 된다. 

피부 빛깔이 검다고 희다고 차별해도 안 되고,

남자 여자라고 해서 차별해도 안 되고, 

신체 장애 유무를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성적 지향을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태어남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것이 불교 철학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러면 지금 본인은 잘 생겼어요? 못 생겼어요?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에요. (청중들 박수)








그래요. 그럼 본인은 공부 잘 해요? 못 해요?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청중들 박수)








나는 나다, 아시겠어요? 

지금 자네 실력을 가지고 전국에서 꼴찌하는 학생들 모아놓고 

그 반에 자네가 들어가면 일등을 하겠지요.

전국에서 일등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자리에 자네가 들어가면 꼴찌 하겠지요. 

그러니 꼴찌했다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일등했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번 시험에 성적이 올라갔다고 내 실력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낮아졌다고 나빠진 것도 아니에요.

내가 공부 안하고 놀아도 다른 친구가 내보다 더 놀아버리면 내 성적이 올라가고, 

내가 죽어라고 공부해 갔는데 다른 애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버리면 성적이 못 나오고 그러는 것이지요.

시험은 다만 상대적 평가를 할 뿐이에요. 

그러니 본인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본인을 못났다든지, 

열등의식을 가져도 안 되고 거꾸로 잘났다 하는 우월의식을 가져도 안돼요. 

알았지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그래요. 딸이 엄마보다 훨씬 낫네요. (청중들 웃음) 

딸은 말귀를 알아듣는데 엄마는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청중들 웃음) 

한국말이 서툴다고 못난 여자도 아니고, 

본인은 뭘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애들이 좋은데

엄마가 저렇게 자신감이 없으니까 아이들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알았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자꾸 나는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그렇다고 나는 잘났다 이래도 안되고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고,

틀리면 ‘아이고 틀렸네요, 고치겠습니다’ 하고,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요. 

그런것을 가지고 우리가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 

스님이 지금 말을 쉽게 해도 이것은 굉장한 철학이에요. 

이것이 전부 반야심경, 금강경 교리의 요점이에요.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성인의 말씀은 성인의 말씀으로 따로 하고, 

생활은 생활대로 따로 하고 그래서 지금 문제예요. 

그래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녀봐야 삶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그것은 하늘의 얘기 따로 두고 땅의 얘기 따로 두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땅과 하늘이 둘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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