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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적 사랑의 순간
게시물ID : art_14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세된양말
추천 : 0
조회수 : 3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03 04:20:15
...

요나는 손으로 미간을 문지르더니 고개를 반쯤 들고 사제를 쳐다보았다. <이 수레바퀴는 틀림없이 치밀한 악의와 계획적인 조소로 구성되어있다.> 눈앞의 사제를 보면서 그는 확신했다. 요나가 맡겨진 고아원의 원장이 가톨릭교도였다는 것. 마르티노 신부와 만난 것. 서울로 올라온 것. 이 성당에서 몇 달 간을 살았었다는 것. 얀 사제와 만나게 된 것까지. 전부 다 틀림없이 어떤 초월적인 악의의 손길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향하는 끝에는 분명히 파멸, 파멸, 파멸만이 있겠지! 세상에 창조된 모든 존재를 파멸로 이끄는 것, 그것이 저 해골로 된 권태로운 왕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확실하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면서 어디에 신이 있느냐고 울부짖기도 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것아! 너의 그 경이로운 불행이야말로 신의 증거인 것이다! 저 위에 있는 주인, 모든 것의 주인이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가 분명히 있었다. 사실 그가 <>인지 <그녀>인지, 인격을 가졌는지, 혹은 목적이 있는지, 사고를 하는지 감정이 있는지, 모든 것이 불가지의 영역에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에게 존재들에 대한 지독한 악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신학자들이여, 어째서 모르는가? 말도로르가 발견한 하느님이야말로 신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의 세계에 떨어진 이 인간존재들의 고통과 비명은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는 내게 마리를 보낸 것이다. 내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붕괴를 위하여.>

성당 뜰로 가지 않으시겠습니까?요나가 사제에게 권했다.

좋습니다. 사실 목각을 하나 만들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그러면서 사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제는 요나와 함께 현관을 나서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성직자에게는 미사나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그들의 과제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사제는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요나와 같은 인간이야말로 하느님이 세상에 부여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박 원장이 한때 생각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요나는 항상 마주하는 이에게 존재로서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다듬고 세련된 슈트를 입어도, 영혼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눈동자는 마주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연극배우 같은 미소와 아무것도 믿지 않는 눈빛, 그런 것들 또한 불안의 씨앗이었다. , 분명히 마리는 요나와 정반대의 것을 갖고 있다. 틀림없이 그래서 요나의 인생에 마리가 나타난 것이겠지.

가을의 노을빛이 성당 뜰에 내리쬐고 있었다. 아니, <쬐다>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 그것은 부서진 파도조각처럼 가볍고 어딘가 억울한 느낌으로 사물들의 표면 위에 가라앉고 있었다. 붉은 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을 보면서 요나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도망쳐야만 했다. 그의 생활을 지키고 싶다면 이 모든 드라마틱한 필연으로부터 도망쳐야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연>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을 거부하면서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보다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운명 또한 하나가 아니었다. 거부할 수 있는 운명이 있는가하면 거부할 수 없이 직선으로 영혼의 한복판으로 꽂혀 들어오는 운명도 있었다. 그것을 숙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숙명들은 언제나 삶의 궤도를 크게 뒤흔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과거에 요나는 그 숙명 덕분에 인간의 자유를 깨닫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지금 그 어떤 <자유>도 눈앞의 숙명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매순간 시간이 흐르는 것이 머릿속에 울리듯이 느껴졌다. 일 초가 지날 때마다 두개골 안에서 무언가가 징을 쳐댔다. <그래, 나는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어떻게? 한 번 도망치기 시작하면 다시는 도망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또 다른 절벽으로 한 발 한 발 뛰어내리다보면,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로부터도 도망쳐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도주 끝에는 망할 놈의 <불가지>라는 것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자유의 박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 이 숙명에 순종하는 것만이 자유를 얻는 방법이라는 아이러니컬한 상황 때문에 그는 소리 내서 웃을 것 같았다.

죽음을 자유라고 믿는 자들은 참으로 순진하기도 하지. 이 세계가 어떤 악랄한 의도로 조정된 것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면, 이 세계 밖의 시간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의지가 사악한 조소와 함께 우주를 건축했는지, 그렇다면 그 속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의 끝에 어떠한 우습지도 않은 장난이 준비되어있는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연! 우연이라! 그러나 삶을 사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뿐이었다……. 그래, 모든 것이 쇠락해간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이 세계의 하나뿐인 진실이었고 열역학 제 2법칙이었다. 그렇다면 완벽한 소멸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마저도 실없는 인간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완벽>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있는지? 무한을 추구하던 자들은 모조리 미쳐버렸다. 그들은 광기의 아가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 높은 곳에서 끔찍한 눈동자로 우리를 관망하고 있는 하느님이여! 당신의 세계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돌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미치광이들이야말로 이 정신 나간 자유에, 이 정신 나간 세계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한 자들이 아니겠는가……. 잠자는 노예가 아니면 눈을 뜬 광인을! 극단에서 극단으로 달리며 병적인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 그대가 인간존재에게 바라는 것인가? 그렇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인자하신 하느님은, 그는 도대체 어떠한 신격인지? 분명 그것은 요나가 맛본 적도 없는 세계에 있었다. 온통 모독적이고 고통스러운 고함소리로만 가득한 그의 세계에서 <인자하신 하느님> 같은 것은 태어날 틈새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마리가 성당 안뜰로 걸어오고 있었다.

<왕이여! 팡파르를 울려라! 내 머리를 산산이 부숴버릴 그녀의 존재를 위하여.> 저 앞에서 걸어오는 마리의 녹색 안광을 보면서 요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제는 자신의 옆에 선 요나의 손이 경련하듯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가 그는 무슨 절망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사제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요나는 그의 감정을 남들처럼 그냥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사랑과는 다른,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감정인 것일까. 그 감정인지 충동인지 모를 무언가가 이상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사제가 보고 있는 요나의 눈동자 속에서는 공포가, 환희가 그리고 혐오와 희망이 우주의 혼돈처럼 뒤섞인 채 마구잡이로 명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요나의 기분은 어땠는가? 그는 어릴 적에 수도 없이 보았던 성모마리아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신격을 얻어 움직이고 말한다면 지금과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공포, 공포, 공포, 경외! 빌어먹을 운명이여, 왜 내가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시키고야 마는가? <우리는 발굽 밑의 구더기이다.> 아아, 그의 독초 같은 혀가 기도로 말려들어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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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집필중인 장편소설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카페인 500mg을 혈관에 꼴아박은 상태라서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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