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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한국 보수의 '국가 포기 선언'
게시물ID : humorbest_7093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lidaires
추천 : 107
조회수 : 4732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7/08 17:23:00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7/08 17:07:45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41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세 박자 설득전략’에 기초해 김정일 위원장과 협상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협상의 한 부분만 부각해 NLL 포기·굴욕 회담으로 몰아갔다. 드러난 한국 보수의 민낯.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속의 장면 하나. 서해 일대를 경제특구로 지정해 개발하자는 요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멈칫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압박한다. “위원장께서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됩니다.”(10쪽. 이하 페이지는 <시사IN> 특별부록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기준)

장면 둘. 회담의 최대 화두인 NLL 문제를 실무회담으로 미루고 서해 평화협력지대 조성에 합의한 직후, 김 위원장은 이렇게 묻는다. “남측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16쪽)

한 명은 결단을 압박하고, 다른 한 명은 상대편의 반대 여론을 묻는다. 상반된 이 두 장면은 2007년 정상회담의 성격과 특징을 압축해 보여준다. 또한 왜 이 장면이 상징적인지를 이해하면, 이 정상회담 전문에 대한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 등 보수 블록의 파상공세가 허망한 이유도 확인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중대한 국제협상을 할 때면 국내 여론은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민주국가의 협상단은 국내 여론이 허용하는 만큼만 재량권을 가진다. 예를 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무제한 허용했다가 여론이 악화되면 정부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므로, 협상단에게는 국내 여론이 제약하는 ‘한계선’이 있다.

‘공감대 형성→한계 설정→카드 제시’ 전략

역설적이게도, 이 ‘한계선’은 협상단에게 일종의 무기가 된다. “우리가 너희의 쇠고기를 무제한 수입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라는 논리로 상대의 요구를 막아낼 수 있다. 즉, 협상자는 협상 상대국과 국내 여론을 상대로 두 차원의 게임을 동시에 펼친다. 국내 여론에서 반대가 강력할수록 국제무대에서의 협상력은 오히려 올라간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이런 원리를 ‘양면 게임(Two Level Game)’ 이론으로 정리했다. 

   
 
개인이 전권을 쥐고, 반대가 제도로 보장되지 않는 독재국가는 이런 이점을 누릴 수 없다. 독재국가의 정상은 강력해 보이지만, 그만큼 국제협상에 취약하다. 그가 결심만 하면 내부의 반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대가 알기 때문이다. 호탕하지만, 공략당할 곳이 많다. 반면 민주국가의 정상은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약한 리더로 보인다. 외교적 수사도 많이 써야 하고 비굴해 보이는 장면도 연출한다. 하지만 본인의 결심만으로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상대도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고자세·저자세와 실제 협상력의 강약이 정반대가 된다. 2007년 10월3일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전 회담 중반쯤, 노무현 대통령이 NLL 문제를 슬며시 꺼내든다. 누구나 예상한 이 회담의 뜨거운 감자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정상회담 성공은 없다. 여기서부터 보수 언론이 파상공세를 퍼부은 ‘문제 발언’들이 쏟아진다.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14쪽) 

새누리당이 ‘NLL 포기 발언’ ‘여론 모독 발언’으로 낙인찍고 화력을 집중하는 그 대목이다. 6월25일자 조선·중앙·동아일보도 약속이나 한 듯 이 말을 1면 톱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전문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본 것이다(새누리당의 애초 주장과 달리, 직접적인 “NLL 포기” 발언은 전문에 없다).

하지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야말로, ‘양면 게임’의 전형이다. 국내 여론의 반발을 강조하며 NLL 문제를 양보할 권한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그 직후, 실제 요구사항이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지도 위에다가 평화경제지도를 크게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노무현 청와대가 정상회담의 성패가 달렸다고 보고 준비한 NLL 대응전략이다. 노무현 청와대는 서해 평화협력지대 구상을 실질적인 NLL 공고화 전략으로 입안했다(새누리당, 대선 두 달 전부터 ‘NLL 포기’ 쟁점화 기사 참조).

노 대통령의 전략을 일반화하면 이렇다. 우선은 공감대를 형성한다(“위원장과 의견이 같다”). 다음으로, 반대 여론을 들어 한계를 설정한다(“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마지막으로, 실제로 준비한 카드를 내민다(“서해 평화협력지대”). 회의록 전문을 보면, 이 세 박자의 설득 전략이 거의 모든 이슈에서 변주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임기가 끝나가는 인기 없는 대통령과 정권 교체로 야당이 될 것이 유력한 정치세력에게 큰 기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뭔가를 적극 요구하는 대목은, 즉각 효력이 발생하는 NLL 문제가 유일하다. 목표는 “남북 양쪽이 서로 주장하는 서해 경계선을 동시에 포기한다”라는 합의였다. NLL 파기다. 하지만 그때마다 노 대통령은 ‘내부의 반대’를 동원하며 빠져나간다. 

결정적인 장면은 오후 회담 때 있었다. 하다못한 김 위원장은 내부의 반대를 ‘창조’해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을 압박한다. “내가 (군사 요충지인 해주를 남한에 경제특구로 내놓도록) 결심하겠다 하니까, 군부가 담보가 하나 있어야 한다 (그래요). 뭐야 그러니까 서해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 거 하면…”(14쪽) 반대가 제도화되지 않은 독재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반대 블록’인 군부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재국가 수장에게는 이것이 ‘용단’의 문제임을 그는 무심결에 인정한다. 노 대통령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양측이 용단을 내려서 그 옛날 선들 다 포기한다”라고 다시 제안한다. 두 번 모두 노 대통령은 “서해 평화협력지대”만을 언급할 뿐 답을 피한다. 그에게 이것은 용단의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요구가 오히려 묵살돼


결국 김 위원장은 ‘포기’를 얻어낼 기회를 실무회담으로 미룬다. “실무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서해 경계선)을 포기한다,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평화협력지대)에 대해서는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예, 좋습니다.”(15쪽) 

이것이 회담의 핵심 결론이다. 회담 이후 발표된 10·4 공동선언에도, 김 위원장이 넣고 싶어했던 ‘서해 경계선 공동포기 선언’은 들어 있지 않다. “위원장과 의견이 같다”라는 발언은 실질적인 결과를 낳지 않았다. 

보수 블록은 노무현 대통령의 ‘친북·반미 발언’들도 도마에 올렸다. “외국 정상과 만날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을 했고”(2쪽)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오늘날에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12쪽) 등의 발언이 난타당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 발언들도 세 박자 설득전략의 변형이다. 먼저 공감대를 확보한다. 다음으로 남한이 미국에 반대할 여지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힘… 자주 하고 싶어도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8쪽)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박근혜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김무성 의원(맨 왼쪽)과 2012년 3월 부산시당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김무성 의원(맨 왼쪽)과 2012년 3월 부산시당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했다.
이제 미국이라는 ‘지렛대’가 생겼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 되지도 않으면서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의 현실에 북측도 함께 발을 들여야… 시장에는 발을 디뎌야지.”(8쪽) 

이른바 ‘친북·반미’ 공감대 형성은, 미국이라는 ‘지렛대’를 강조하는 하소연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북한의 개방을 은근히 요구하는 핵심 의제로 접근한다. “위원장과 의견이 같다”로 시작한 NLL 논의가, 포기 요구 회피로 끝난 것과 마찬가지 구조다.

즉, 이 세 박자 설득전략은 따로 떼어 평가할 수 없고 오직 한 덩어리로만 평가할 수 있다. 본심은 앞쪽보다는 뒤쪽에 배치한다. 이날 전략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별개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만의 전략도 아니다. 새누리당을 포함해,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습득하고 있을 법한 ‘기본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이를 짐짓 모른 척하고 두 가지 주장에 집중한다. 첫째, 사실상 NLL 포기 발언은 있었다. 둘째, 내내 저자세로 일관한 굴욕 회담이었다. 

세 박자의 첫 단계만을 떼어내 ‘사실상 NLL 포기 발언’으로 딱지붙이는 것은 쪼갤 수 없는 덩어리를 쪼개는 꼴이다. 굴욕 회담이라는 공세도 마찬가지로 취약하다. 계속해서 보았듯, 독재국가 수장에 대한 민주국가 수장의 저자세는 강한 협상력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무리한 공세, 원칙 없는 회의록 비밀해제, 더 불거지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회의록 논란은 NLL의 진실보다도, 한국 보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는 효과가 더 컸다. 보수 블록을 관통했던 핵심 키워드는 ‘아전인수’ ‘공익에 대한 사익 우선’ ‘국가의 사유화’였다. 새누리당·국정원·보수 언론,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자유롭지 않았다.

국가의 공정성 뿌리부터 흔들리는 스캔들

일급 기밀인 정상회의록은 지난해에는 박근혜 캠프의 ‘대선 아이템’ 취급을, 올해 들어서는 국정원 선거 개입 댓글 의혹을 차단하는 ‘이슈 바람막이’ 취급을 당했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대선 국면이던 지난해 10월부터 줄기차게 ‘NLL 포기 발언 의혹’을 제기했다. 

대선 캠프 핵심인 김무성 선대본부장(현 국회의원)과 권영세 상황실장(현 주중 대사)이 대선 당시부터 정상회의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았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김무성 본부장은 부산 유세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읽어 내렸는데, 이번에 공개된 회의록과 사소한 대목까지 거의 일치한다. 민주당은 권영세 상황실장이 회의록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지인들과의 대화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이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라진다. 국가의 정보기관이 최고 수준의 국가기밀을 특정 정치세력에게 넘겨 선거에 써먹도록 도왔다는 뜻이 된다. 국가기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6월25일 국회에 출석해 질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6월25일 국회에 출석해 질의를 받고 있다.
애초에 NLL 논란이 난데없이 재점화된 발단부터가, 선거 개입 의혹으로 위기에 몰린 국정원이 일종의 조직 보위 논리를 작동시켜 무리하게 회의록을 공개해버렸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국정원의 명예와 직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 공개했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국가의 비밀 유지가 생명인 정보기관은 앞장서서 정상회의록을 공개해 외신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보수 언론은 공개된 정상회의록에서 협상 과정과 맥락을 잘라내버린 ‘발췌 보도’를 쏟아냈다. 전체 회담 흐름에 관계없이 입맛에 맞는 발언 한두 개만 제목으로 뽑아 올리면, 김정일 위원장도 ‘북조선의 반역자’로 만들 수 있다.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가 납득이 될 땐 개성 아니라 해주를 달라고 해도 줘야지요”라는 말을 한다(7쪽). 이 말은 개성공단의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는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에 불과하지만, 보수 언론 잣대대로라면 돌연 ‘군사 요충지를 남측에 갖다 바친 중대 발언’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점을 찍었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의록이 공개된 6월25일 “NLL은 우리 젊은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지킨 것”이라고 말하며 ‘의도적 오독’ 대열에 동참했다. 

회의록 공개로 확인된 것은 ‘노무현의 NLL 포기 선언’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폭로된 것은, 분파 이익과 공익의 갈림길에서 분파 이익을 우선하고, 국가기구마저도 분파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어느 모로 보아도 ‘보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한국 보수 블록의 맨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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