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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이야, 벌써 10년이네,
게시물ID : animal_710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수없다,
추천 : 2
조회수 : 4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1/30 17:12:30
 
 
 
 
 
  쉐이야, 안녕?
  이맘 때 쯤에 하늘을 보면 네 털을 닮은 개털구름이 날린단다.
  새털구름이지만 내 눈에는 네가 하늘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듯해 기분이 좋으면서도 문득문득 울게 된단다.
 
  엄마가 조금만 일찍 너를 구해줬더라면 그 뜨거운 물에 고통 당하지도 않고, 화상도 덜 입었을 텐데...
  병원에 다닌 후에도 아물지 않아 껍질을 부쉈더니 등에서 고름이 잔뜩 나왔었지.
  밤에 병원으로 달려가 며칠을 맡겨놓고 있을 때에도 너는 울면서 안겼고, 의사 선생님에게는 그리도 짖었더랬지.
 
  마음은 아프지만, 너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겠지만 너를 낫게 해주느라 그랬던 거야.
  병원에 너를 두고 올 때마다 마음 아팠었는데,
 
  그해 겨울에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너를 빈 집에 데려다 놨었지.
  차갑고, 밥도 물도 잘 못 먹는 곳에서 또 너는 그렇게 여름에는 뜨겁게 고생하고, 겨울에는 춥게 고생했었지.
 
  잘 지내다 다음 해 설날 전에는 솜인형을 물어뜯고 놀다 막혀서 수술을 해야 했었지.
  밥도 못 먹고 날로 야위어 가고.
  엑스레이 상으로 보이는 네 꽉 막힌 식도.
  수술비 180만 원이 없어서 너를 그냥 데리고 돌아오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다행히 설날이라 고깃국이 있었고, 고깃국이라도 먹이면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먹고 운동 시키면 장운동도 하게 되니 혹시라도 배변으로 빠져나오지 않을까 하루 몇 번이나 밥을 먹이고,
  밥을 먹인 뒤 운동하면서 산책하고, 산책하다 배변을 하면 샅샅히 헤집어 보고.
 
  삼 일 뒤. 기적처럼 너는 솜뭉치들을 낳았지. 그래, 잘 낳았다. 정말 기뻤단다.
  그때 생래 처음으로 기뻐서 눈물 흘렸다는 사실을 넌 모르겠지?
 
  집에서 쉬아 하고 응아하면 배변도 잘 하는데 가끔 실수하면 무섭게 때리던 아빠 때문에 항상 밖에 나가서 배변을 봤던 네가
  비가 엄청 오던 어느 날, 어른 손바닥보다 큰 흉터가 있는 등에 비 맞는 느낌이 이상해 들어와서 한참을 참다 결국 화장실 문 앞에서 쉬아를 터트렸던 일. 지금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면서 많이 미안하기도 하단다.
 
  조금 전에 노라조라는 그룹의 강아지라는 노래를 듣다 괜히 눈물이 줄줄 흘러서 생각해 보니 네가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더라.
 
  2003년 11월 23일.
  그날은 엄마가 베프 소개팅 시켜주러 나갔던 날인데, 너를 할머니 집에서 데려오기로 했던 날이었는데
  엄마는 그러지 못했지.
  미안해. 네가 죽은 게 나 때문인 것만 같아서.
  그날 너를 데려다 놓고 나갔다 왔더라면 너는 아직 살아 있을 텐데.
 
  할머니도 가끔 네가 보고 싶다고 이모에게 전화해서 울곤 하셨다는 사실은 아마 너도 알고 있겠지?
 
  너를 뭍어준 곳이 개발되면서 네 무덤까지 손상된 게 아닐까 걱정 돼서 만날 산을 오를 때마다 한 번씩 네 이름을 불러보곤 하는데...
 
  쉐이야, 그곳에서 혹시 썅년은 만났니?
  엄마가 썅년이라고 하지만 참 좋은 이모야.
  그러니 잘 지내고 있어.
  올해 개새끼 한 놈도 갔는데, 그 삼촌은 좀 문제가 있어. 고집이 너무 세서 너를 조금 힘들게 할지도 몰라.
  두 사람 다 친천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들 아니고 좋은 사람들이니까 잘 지내봐. 네가 똘똘하니 그 두 인간들을 엄마가 부탁하는 게 맞겠지만 말이야.
 
  이름도 좋은 이름 못 지어주고 너를 이 새끼, 저 새끼라고 부르는 게 싫어서 순화시켜서 부르라 한 게 네 이름이 되게 한 것도 미안해.
 
  너를 보면서, 네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어쩜 이렇게 눈이 사람 눈처럼 표정이 많아요?"했던 말, 엄마는 아직도 잊지 않는단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 외출하고 돌아가던 날, 너를 떼어놓거나 버린 게 아닌데도 미친 듯이 뛰어오던 네 모습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남아 있어. 병원으로 오면서도 얼마나 울었던지.
 
  네가 네 짝꿍 만나서 잘 놀고 있는데 옆집 도베르만이 와서 너를 물고 뜯어도 참 용맹하게도 맞서고 물러서지 않았더랬지.
  한 번만 더 네게 상처 입히면 가만 안 있겠다고 집 앞에 자갈들을 모아놓기도 했었지. 빗자루도 갔다놓고.
 
  그놈, 잘 물리치고 있었어도 아무래도 장신인 그놈에게는 불리하기도 하고, 그동안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구나 내 집 앞에서 그러는 게 화가 나서 마구 때려주고, 도망가는 것도 쫓아가면서 자갈들 던졌던 게 기억난다.
  개들의 일에 사람이 끼어서는 안 되겠지만, 너 혼자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둘이 알콩달콩 잘 지내는데 훼방놓는 게 괘씸해서 그랬어.
 
  전날 밤, 엄마가 밤 늦게 집에 오는데 네가 어떤 이쁜 강아지하고 둘이 사이좋게 집을 나와 어딘가로 가더라.
  쫓아가봤지. 부르지도 않고 살금살금 미행하면서. 어휴, 얼마나 알콩달콩 연애질을 잘 하던지.
 
  여자애 네 집 앞 대문에서 여자애는 먼저 들어가고 너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때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면서 그래야 멋진 남자지, 하는데
  아주 재밌는 광경이 펼쳐지더라.
  여자애가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짖지도 않으면서 너를 기다리고, 네가 올라가기 시작하니까 천천히 올라가면서 너를 기다리고 결국 둘이 어깨 부비부비하면서 사이 좋게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까지 봤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 큰 아들이 연애질을 하다 결혼까지 잘하게 되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뿌듯하기도 하고 조금은 섭섭한 마음도 조금 들더라.
  그나저나 너 보는 눈이 높더라. 어떻게 그 애를 꼬셨나 몰라도 정말 예쁘던데.
 
  그날 사고가 나고 1분도 채 안 돼 눈을 감았다는 말이 가슴 아프면서도 다행이다 싶었어.
  오래 고생하지 않고 괴로워 하지도 않은 채 갔으니까.
 
  너를 뭍어주던 날, 네 감은 눈은 삼촌이 감겨주고 네 등을 쓰다듬어 줄 때 어쩜 그렇게 차고 딱딱하던지.
  왜 그렇게 차가웠니. 전날도 너무 추운 곳에 누워 있었지?
  미안해. 땅이 얼어 더 깊이 뭍어주지 못해 미안해.
  네 등을 그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엄마가 많이 못 놀아주고 네가 놀아달라고 떼를 써야만 놀아줬던 엄마가 미안해.
  삼 년 조금 넘게 함께 했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들이 더 많아서 미안해.
 
  병원에 있을 때,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침대 채로 로비 밖 주차장에 있을 때
  작은 목소리로 "어, 쉐이다."했을 뿐인데도 총총 걸음으로 할머니와 걸어가다 대번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 거리다 이내 엄마를 발견하고 뛰어와 침대 위로 뛰어오르려던 네가 엄마는 지금도 신기하고 정말 고마워.
  너도 그때 한창 여름이라 치와와처럼 털을 바짝 깎고 엄마도 머리를 박박 밀고 있었을 때였는데,
  주변에서 본 사람들은 많이 웃겼을 거야.
 
  외고정 장치를 하고 있어서 너를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었고, 더 만지고 싶어도 일어날 수조차 없어 네가 힘들게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어야 했지.
  그때 허리랑 다리 많이 아팠을 텐데, 엄마를 잊지 않고 그렇게 기뻐하고 반가워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엄마가 참 바보 같은 게 내년이면 마흔되는 데에도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봐.
  가끔 네 생각이 나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차를 타고 어느 국도나 고속도로를 지날 때, 혹은 거리를 걷다가도 눈물이 나.
 
  강아지들 참 이쁘고 귀여운 애들 많더라. 버림받은 애들도 정말 많아서 한 마리 데려다 키우고 싶지만 못하겠어.
  또 먼저 죽을 텐데 마음 아파서 어찌 살라고.
  내가 먼저 죽더라도 그애는 또 마음 아파서 어찌 살겠니.
 
  그것보다 엄마가 엄마 노릇 잘 못할 게 빤해서 하지를 못하겠어.
 
  언젠가, 정말 혹시라도 엄마가 다시 어느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면 잘 돌보고 잘 키우고 함께 잘 지낼 수 있도록 네가 좀 돌봐주겠니?
  아직은 정말 키울 자신이 없지만 말이야.
 
  쉐이야,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너를 그만 보내줘야 할 텐데
  강아지들과 같이 커오다시피 했어도 내가 데려와 내가 키운 애는 네가 처음인데, 그래서 그런가 아직은 다른 애를 키울 자신도 없고 여전히 너를 놔주지 못하고 있지만 노력할게.
  네가 더 자유롭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네 등에 저 하늘의 개털구름보다 더 복슬복슬한 털이 봄날 새잎보다 더 하뭇하게 피어 있어 어떤 거리낌도 없이,
  이 세상의 일도 다 잊고 지냈으면 좋겠어.
 
  그때 기술이 조금만 더 발전한 상태였다면 네 사진 많이 남겨뒀을 텐데
  늘 그게 너무 아쉬워.
  엄마 머릿속에는 네가 귀를 뒤로 젖히며 몽실몽실한 털을 휘날리며 잔디밭을 뛰어오고
  비가 와서 물이 찬 놀이터를 말보다 힘차게 달리던 모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 슬퍼.
  그래도 이젠 그만 해야겠지?
 
 
  쉐이야, 부디 편안하게 자궁 안에서보다 따뜻하고 편하하게 지내렴.
 
  안녕, 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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