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반지예요. 돌려드리는 거예요. 파혼이예요.”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수였어요. 당신 청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청혼을 받아들였는지 알고 싶으시죠?
요즘같이 피임약을 사용하는 세상에선 참 믿기 힘든 얘기죠. 당신은 피임약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예전 남자친구의 아기를 가졌어요.
하지만 나와 달리 그는 아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청혼을 했을 때 받아들였어요.
태어날 아기가 당신 아기인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런데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나는 그녀가 우리 집에 자주 들렀던 지난 몇 주 간을 기억했다.
거의 매일 저녁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일요일에 점심을 먹으러 우리 집에 오곤 했다.
나의 어머니는 뛰어난 요리 솜씨를 가지고 있었고, 특별히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에 우린 아주 멋진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늘 친절하게 대했지만, 나는 그 태도와 행동이 본심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 어머니는 자기의 어여쁜 아기를 잃고 싶지 않으신 거예요.
그리고 내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마다 개수를 세시더라구요.”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리를 할 때 마다 칭찬을 듣고 싶어 하세요. 나도 요리할 줄 알아요. 오늘 저녁은 내가 하겠어요.”
그녀는 실제로 저녁을 준비했고, 음식은 모두 화려하고 완벽했다. 사실 나는 어머니의 단순한 요리가 훨씬 좋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식사 후 우리는 소파에 앉았고, 나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섹스를 하자고 말했고, 실제로 그 행동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상냥하게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결혼 전에 그러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 뒤로 연락이 없다가 일주일이 지나서 그녀가 하는 말은 파혼, 이라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런 일이 없었던 게 더 나았겠지요. 하지만 이것 한가진 아셔야 해요.
나도 당신의 모든걸 좋아해요. 하지만 당신은 어머니 외에는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잖아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어머니께 약혼이 깨졌다고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잘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그녀가 없던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적당한 여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거라고 서로 얘기를 하며.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적당한 여자를 만나는 때가 자신이 돌아가신 후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와 헤어진지 거의 이 년이 다되던 무렵,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죽어있었다. 내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심장병이 있었던 것이다.
정신이 멍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모든 일에서 내가 얼마나 어머니에게 의존적이었던가를 깨달았다.
생활을 바꾸기로 결심하며 가구를 없애버리고, 집을 팔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직접 갖고 계시던 소지품들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의사는 내 상태를 걱정하며, 충격에서 회복되려면 집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따랐고, 거기서 헬렌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아주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서서히 이루어진 것들이다.
나는 전 여자친구의 배신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났다.
헬렌의 도움으로 나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으며, 이제 과거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워져버리게 되었다.
그 때 그 암소같은 여자가 내 삶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내게 관심을 가졌다.
회사 식당에서 나와 같은 탁자에 앉아 내가 너무 적게 먹는다고 불평했다.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여동생이 결혼하고 나면 나도 혼자 살아야 돼요.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여러 요리를 혼자 만들어 먹으면 되니까.
언제 꼭 놀러오세요. 정말 맛있는 슈니첼을 만들어줄게요. 한 번 먹고 나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녀가 자기의 말에 도취되어 웃자, 살찐 볼이 출렁거렸다.
어머니가 내게 항상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쳤으므로, 나는 그녀에게도 친절하게 대했다.
그 날 이후로 난 회사 식당을 이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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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줄리안 시몬스의 "꿈꾸는 것이 더 낫다" 라는 단편입니다.
매우 흥미로은 작품인데 글이 꽤 길어 내용을 요약해서 필요한 부분만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