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지침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문제로 생각한다.
-사실상, 우리 문화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경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는 인기와 성적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낭만적 사랑’, 곧 다음에는 결혼으로 이어지게 될 사랑의 개인적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새로운 자유 개념은 ‘능력’의 중요성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대상의 중요성을 몹시 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또는 그녀는)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본다. 남자에게 매력 있는 여자 그리고 여자에게는 매력 잇는 남자는 탐나는 경품이다. ‘매력’은 보통 인기 있고 퍼스낼리티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품질 좋고 멋진 포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껐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수십년간의 잉꼬부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러한 태도, 즉 사랑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반대의 경우에 대한 압도적 증거에도 아랑곳 없이 사랑에 대한 일반적 관념으로서 지속되고 있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열심히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려 하고 개선법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이 활동을 포기할 것이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자연과 결별하면 인간은 자연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일단 낙원-자연과의 본래의 합일 상태-에서 쫓겨나면, 다시 돌아가려고 노력해도, 불타는 칼을 가진 케루빔 천사가 길을 가로막는다. 인간은 철저하게 상실한 전인간적 조화 대신에, 이성을 발달시키고 새로운 조화, 곧 인간적 조화를 찾아내면서 오직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총체성?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개인으로서든 인류로서든 결정되어 잇는, 본능처럼 결정되어 있는 상황으로부터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쫓겨난다.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확실한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부여되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는 생명’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동포를,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짦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자신의 분리에 대한 인식,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 이러한 모든 인식은 인간의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밖으로 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과, 또한 외부 세계와 결합하지 않는 한 미쳐버릴 것이다. 분리 경험은 불안을 일으킨다. 분리는 정녕 모든 불안의 원천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인간적 힘을 사용할 능력을 상실한 채 단절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무력하다는 것, 세계-사물과 사람들-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나의 반응 능력 이상으로 세계가 나를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는 격렬한 불안의 원천이다. 게다가 분리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일으킨다. 분리 상태에서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심 경험은 성서에 아담과 이브 이야기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이 분리된 채 사랑에 의해 다시 결함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 이것이 수치심의 원천이다. 동시에 이것은 죄책감과 불안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불완전함 보다는 고독
-인간-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문제는 동일하다. 이 문제는 동일한 근원, 곧 인간의 상황, 인간읫 lfwhs 조건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취적 합일의 모든 형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강렬하고 심지어 난폭하다는 것, 둘째는 퍼스낼리티 전체에, 몸과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 둘째는 퍼스낼리티 전체에, 몸과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 셋째는 일시적이고 주기적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되는 것이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해결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합일의 형태, 곧 집단-그 관습, 관례, 신앙-과의 일치에 바탕을 둔 합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당한 발전을 볼 수 있다.
=그럼 종교에 독실한 사람들은 성관계를 하지 않는가?
-현대 서양 사회에서도 집단과의 합일은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개인의 자아 대부분이 사라지고 그 목적이 군중에 소속되어 있는 합일이다.
-평등은 인간이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면 만인은 각기 목적이고, 목적인 항에서만 동등하며, 서로 수단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정신에는 성이 없다’
=여성적인 생각, 남성적인 생각?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대집단 속에서 마찰 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량 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표준화를 ‘평등’이라고 한다. 일치에 의한 합일은 강렬하지도 않고 난폭하지도 않다. 이러한 합일은 냉장하고 관례에 따라 지시되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때로는 분리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진정시키기에 불충분하다. 현대 서양 사회의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강박적인 성애 중시, 자살 등의 사례는 군중과의 일치에 상대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 게다가 일치에 의한 합일은 주로 정신에만 관계되고 육체에는 관계되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도취적 해결책과 비교하면 결함이 있다. 군중과의 일치에는 단 한 가지 이점이 있을 분이다. 곧 이것은 발작적이지 않고 지속적이다. 개인은 서너 살 때 일치의 유형으로 유도되고 따라서 군중과의 접촉이 끊이지 않는다. 개인의 장례식조차도-개인은 그의 마지막 사회적 대사건으로서 장례식을 기대하고 있다-이러한 유형과 엄밀하게 일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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