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올해 첫 영화로 보았습니다. 저는 몇 번 더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코미디 SF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아마도 작년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이 “백악관 최후의 날”과 같은 영화라고 오해받는 것만큼이나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되네요.
원제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로, 평범하게 “월터 미티의 은밀한 삶”이라고 번역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재치있는 유머로 표현된 은유적인 드라마가 본작의 성격이기 때문에 자막의 직접적이고 거친 표현들은 적절히 자체 필터링해서 보시면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되실거라 믿습니다.
코미디 SF가 아닌 것은 이 영화가 월터의 풍부한 상상력이 무기처럼 활용되어 삶을 극적으로 바꾸는 내용과 관계없다는 점에서 바로 드러납니다. 월터의 상상은 극중에서 zoned out이라는 대사로 표현되는 만큼 전혀 다른 장소와 캐릭터를 눈앞으로 끌어와 줍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월터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지언정 월터의 눈앞에 펼쳐지는 삶이 되지는 않지요.
상상이나 꿈을 얘기할 때 따라오는 희망이라는 단어도 낙관적으로 남용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세심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어느 것 하나 심판자의 단호함으로 다루지 않는 “월터 미티의 은밀한 삶”은, 난데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삶의 어디에서도 닥쳐올 수 있는 폭력적인 피폐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선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제가 이 영화를 몇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 저를 감동시킨 것은 바로 이 작품의 시선-태도입니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만 표현하면 평범한 작품이 되어버립니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희망을 갖지 않으면 어떤 선택지가 있다는 말인가’ 하는 식으로 우악스럽지도, 성급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선택하기 위해서 극적인 계기와 인생에 기억될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이어질 문장이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가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은은하지만 분명하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끝나기 전까지는 끝일 수 없는 삶을 은밀하게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요구하지 않지.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라는 극중의 대사가 이런 삶의 가치를 드러내준다고 생각합니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삶”은 '태도부터 컨텐츠다'라는 명제의 영화적인 본보기로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를 보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고 살다보면 언젠가 인생은 나아진다’는 문장만 남았다면 나머지 반을 찾기 위해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즐거움을 누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 보시는 분들도 저의 설레발에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월터 미티의 은밀한 삶"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멋진 풍광과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까요.
자 저는 2회차 관람을 하러 가 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