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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남이섬, 알고 보니 '친일파 재산' 민영휘
게시물ID : sisa_4789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AA5
추천 : 11
조회수 : 664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1/05 17:54:23
춘천출신 친일파 갑부, 민영휘(閔泳徽, 1852-1935)
 
1852(철종 3)∼1935.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초명은 영준(泳駿). 자는 군팔(君八), 호는 하정(荷汀). 유수 두호(斗鎬)의 아들이다.
187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에 제수된 뒤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승진하면서, 당시 민씨 척족을 배경으로 정계에 등장하였다.
민씨 척당의 중심적 인물로서 1882년 임오군란 때는 난군의 습격에 가옥이 파괴당하기도 하였다. 1884년 김옥균(金玉均) 등의 갑신정변을 진압, 이듬해 이조참의에 임명되고, 1886년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1887년 5월 청나라의 간섭 아래 수교, 체결한 외국에 외교 사절을 파견할 때 주일변리대신(駐日辨理大臣)으로 일본에 파견되었고, 귀국 후 이듬해 평안도관찰사,1889년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에 올랐다.
이듬해 형조·예조·공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하고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 청나라를 비롯한 외교 관계에 있어 민영익(閔泳翊)의 역할을 대신 맡으면서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기울어졌다. 1891년 경리사(經理使)와 이조판서를 거쳐 연무공원판리(鍊武公院辦理)가 되었다.
 
그 뒤 민씨 세력의 수령으로 당대에 으뜸가는 탐관 오리로 꼽히면서, 1893년 내무부독판(內務府督辦)·
선혜아문당상(宣惠衙門堂上)을 겸직하고 이듬해 친군경리사(親軍經理使)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에게 지원을 요청, 혁명군 토벌을 기도하였다.
청일전쟁 후 선혜청당상을 사임하고 삼청동 별저에 칩거하였다. 그 뒤 갑오개혁으로 민씨 척족과 함께 실각, 탐학(貪虐)했다는 죄목으로 전라남도 영광군 임자도에 유배되었다.
이후 유배지에서 탈출, 몰래 평양으로 들어가 벽동(碧潼)의 청군부대에 숨어 있다 중국으로 도망하였다.
이듬해 일본측의 농간으로 대원군측의 이준용(李埈鎔)과 교환 조건 형식으로 대사령으로 귀국하였다.
중추원의장·헌병대사령관·표훈원총재(表勳院總裁)를 역임, 정부로부터 훈일등팔괘장(勳一等八卦章)·태극장·태극이화대수장(太極李花大綬章) 등을 받았다.
1909년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고, 거액을 투자해 천일은행(天一銀行)과 1906년 휘문학교(徽文學校)를 설립하였다.(네이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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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주식회사 전환으로 귀속 못해... 청와대 의전기능 '허점' 드러나
 
 
 
기사 관련 사진
 남이섬 모습
ⓒ 코레일관광개발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주재했다.

남이섬은 친일파 민영휘씨 후손의 재산인데, 이 대통령은 그동안 경영을 잘했다고 칭찬한 뒤 참석자들에게 섬 구경을 권유했다.

알립니다
주식회사 남이섬은 <오마이뉴스> 보도와 관련해 16일 "남이섬은 민영휘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민씨의 방손(傍孫)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초대총재가 퇴직한 후 1965년 퇴직금으로 구입한 땅"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남이섬은 "섬을 구입한 민 전 총재는 노후를 육림관광사업에 투신하여 300여 종의 나무를 심고 가꿔 오늘의 남이섬을 만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남이섬에서 열린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시작하며 "관광·레저산업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미래 산업"이라며 "아마 관광은 강원도하고 관련이 있는지 공무원들이 장소를 꼭 강원도로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963년 남이섬에 한 번 온 경험이 있다"며 "그땐 흙바닥이었는데, 그동안 경영자가 열심히 가꿨다"고 남이섬 경영자를 칭찬했다. "누가 경영하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 불모지를 명승지로 만들었다고 본다.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며 대통령의 칭찬은 계속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강원도 중에서도 오늘 남이섬에서 하는 회의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회의가 끝난 후 참석자분들은 남아서 구경 좀 하고 가라, 바쁜 척하지 말고 꼭 구경하라"고 말하자 회의장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친일파 민영휘씨의 후손이 남이섬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활동을 종료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친일재산조사위)에 따르면, 구한말 도승지(지금의 대통령실장)·평안감사 등을 지낸 민영휘는 일제 강점 직후 '병합의 공로자'로 인정받아 자작 작위와 함께 5만엔(10억원)의 은사금을 하사받은 인물이다.

일제시대의 민씨는 은사금과 자신의 권력(중추원 의장)을 바탕으로 거액의 재산을 모았는데, 민씨가 사들인 전국의 부동산에는 춘천의 남이섬도 포함되어 있다.

친일재산조사위는 민영휘의 땅 51필지(시가 73억원)를 찾아내 귀속 결정을 내렸지만, 남이섬은 여기에서 빠졌다. 2005년 12월 8일 국회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귀속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는 귀속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일재산조사위의 고상만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위원회 내부에서 남이섬 귀속에 대해 논의가 있었는데, 민씨 후손들이 1970년대에 남이섬을 주식회사로 전환한 터라 국가에 귀속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주식회사 남이섬의 대표이사는 강아무개씨이지만, 회사의 대주주는 민씨의 증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재산조사위는 활동이 종료되기 직전 청와대에 보고서를 전달하고자 했으나 청와대 측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냥 택배로 보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청와대의 이 같은 무관심이 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구설에 오를 수 있는 발언을 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의 외부행사는 부속실장·의전비서관을 포함해 주요 참모들이 상의해서 결정하게 마련인데, 청와대가 남이섬에 얽힌 배경지식을 살피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도 그런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인사이동을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라서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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