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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판 친일파, 홍다구
게시물ID : sisa_4789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AA5
추천 : 0
조회수 : 16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05 22:26:34
스스로 몽골인이 되어 조국과 동포를 핍박한 고려인, 홍다구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있었다면, 고려시대에는 친원파가 있었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하고 완전 일본인이 되어 일본의 앞잡이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도 창씨개명을 하여 몽골인이 되어 몽골의 앞잡이가 된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홍다구이다. 그는 고려, 조선조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홍문(洪門) 중에서 제1을 자랑하는 남양홍씨 가문 사람이었으며, 여름철 우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수박을 우리나라에 들여오기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홍다구(洪茶丘, 1244~1291)]
<홍다구, 몽골의 앞잡이가 되다>
본관 남양(). 본명 준기(). 몽골명 찰구이(). 원나라에 머무르며 전쟁에 종군하여 용맹을 떨쳤다. 1254년(고종 41) 몽골의 장수 차라다이[]가 고려에 침입할 때 모국에 해를 끼치고, 1261년(원종 2) 관령귀부고려군민총관()이 되었다. 1271년 재차 고려에 들어와 봉주(:)에 둔전총관부()를 설치, 이해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고려장군 김방경()과 함께 이를 토벌했다.
1274년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계획하자 소용대장군()으로 감독조선관군민총관()이 되어 조선공사()를 가혹하게 독촉, 고려인의 비난을 받았다. 이 해 충렬왕이 즉위하자 도원수 홀돈() 휘하에서 동정우부도원수()가 되어 대마도(島) ·이키섬[]을 공격하고, 1277년(충렬왕 3) 정동도원수()가 되어 고려에 주둔했다. 이듬해 위득유()가 김방경이 왕을 죽이려 한다고 무고하여 김방경이 투옥되자, 가혹하게 대했다. 그해 원나라 황제의 소환을 받고 돌아갔다. 1281년 제2차 일본정벌 때 우승() 실도()와 4만 군사를 이끌고 합포()를 떠나 범문호()의 10만 군사와 합세하여 이키섬 ·히라가섬[] 등지에서 싸우다가 태풍으로 군사를 잃고 돌아갔다.
<홍다구, 우리나라에 수박을 들여오다>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 1244~1291)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경향신문>)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 1244~1291)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경향신문>)
blog.naver.com/sebalkkamaki/522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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