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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 한 명이 추락사했다.
게시물ID : sisa_7119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당근매니아
추천 : 22
조회수 : 807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6/04/13 00:46:17
아파트 경비원 한 명이 추락사했다.

104동인가에 근무했던 양반이라고 하는데 나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이 단지에 산 지 20년이 되어가니 마주쳤을 가능성은 있으되 기억은 못하는 것이리라. 경비실 앞에는 위로금 모금함이 놓였다. 불투명하여 얼마나 모금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책에서 본 내용들을 짜깁기해 생각해보았다. 도시 일용근로자 가동연한은 만 60세까지이고,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는 이들의 나이는 그 숫자를 훌쩍 넘어보였으니, 산재로 인정 받는다고 해서 그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고작해야 장례비 정도일까. 그러니 위로금을 모으고 있는 것일 터이다.

엘리베이터에는 사고의 간단한 경위와 위로금 모금의 공지를 적은 A4가 붙어 있었다. '106동 주민의 민원으로 단지 내 가로수의 전지 작업을 하던 중'이라고 그 글은 시작했다. 그 문장은 분명히 누군가를 지칭하고 있었고, 거기에서는 한껏 억눌러 옆으로 튼 분노가 느껴졌다. 노동법 상 가동연한이 다 한 노인을 사다리 위로 올려 나무 가지를 치게 한 건 결국 맨큐의 경제학이 내내 물고 빨고 핥던 시장의 원리였다. 나는 이 일련의 상황 속에서 공급자 편익과 수요자 편익이 어떻게 형성되고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가만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그 죽음에는 나 또한 책임이 있다. 20년 전 이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될 적에 원래 살고 있었던 양반들이 큰 평수의 분양권을 손에 넣었고, 그 사람들이 팔순을 바라보도록 20년 간 부녀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10 여 년 전 어떤 송곳 같은 남자가 그 안의 비리를 캐다가, 부녀회 할매들의 시달림에 견디지 못하고 이사를 가버렸다는 것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 무지와 비참여는 존중 받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법은 법에 대한 무지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금언은 딱히 법정에서 법에 대해서만 통할 말은 아니다.

사람이 죽는다.

정치를 잘못하면 사람이 죽는다. 정치를 올바르게 만들지 못하면 사람이 죽는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다.

고작해야 아파트 반상회와 부녀회조차도 그렇다. 4월 13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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